선수들이 ‘올림픽 후유증’에 시달리는 이유

“며칠간 그저 소파에 무감각하게 앉아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라는 생각만 되뇌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티스틱스위밍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했던 미리암 글레즈는 자신의 첫 올림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멍한 기분을 느꼈다.
“갑자기 현실로 돌아와 정상적인 삶에 재적응해야만 했습니다.”
올림픽 출전을 위해 경기장으로 향하고, 가장 큰 스포츠 무대에서 경쟁할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는 아드레날린이 치솟는다. 이에 놀라는 선수는 거의 없다.
그러나 오히려 올림픽이 끝나고 난 뒤,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기분에 충격을 받았다고 호소하는 선수들이 많다. 이러한 현상은 흔히 ‘올림픽 후유증’이라고 불린다.
글레즈는 자신이 공허함을 느끼게 된 이유 중 하나로 갑작스럽게 강도 높은 훈련이 끝이 나면서 극한의 운동과 훈련 중 맛보는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이 사라진 것에 자신의 몸이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울러 고립감도 찾아왔다. 가족들이 프랑스에서 시드니 올림픽 경기장까지 응원 차 찾아오긴 했으나, 글레즈가 다시 집에 돌아온 이후에도 가족들은 여전히 해외에 있었다.
파리에서 함께 훈련하던 코치진도 올림픽 이후 휴가를 떠난 사태였다.

글레즈는 “아무런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사실 글레즈만 이러한 경험을 한 건 아니다.
영국 카디프 메트로폴리탄 대학교에서 스포츠 심리학을 가르치는 카렌 하웰스 부교수는 올림픽 후유증에 대한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하웰스 박사는 올림픽 참가가 선수들에겐 매우 강렬한 경험이라고 설명했다.
“선수들은 올림픽 선수촌에서 자신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누립니다. 24시간 스태프들이 옆에 있고, 원하는 뭐든 먹을 수 있으며, 스포츠 마사지도 받을 수 있죠.”
또한 선수들은 엄청난 미디어의 관심을 받지만, 올림픽이 끝나면 이러한 관심도 거의 하룻밤 사이 증발한다.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마치 유명인들과 비슷한 대우를 받습니다.”
“그리고 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공허함이 찾아오게 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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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마치 결혼 준비와 비슷합니다. 약혼을 하고, 결혼식을 준비하죠. 늘 꿈꿔왔던 동화 같은 순간이 펼쳐지고, 꿈에 그리던 사람과 결혼식장에 들어섭니다.”
“그러나 다음 날 일어나보면 사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운동에만 몰입해 온 선수들에게 이는 큰 실망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
글레즈 또한 “나는 6살부터 아티스틱스위밍을 시작했다”고 한다.
“제 모든 결정과 행동은 아티스틱스위밍을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훈련을 위해 14살 때 파리로 이사 가기도 했죠.”
하웰스 박사는 “많은 선수들이 인생의 초기 단계부터 시작한다”면서 “인생 전체가 하나의 목표를 향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많은 선수들이 수년간 엄격한 식단을 유지하다 갑자기 자유롭게 먹고 마실 수 있게 될 때 후유증이 찾아온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하웰스 박사는 “(갑자기 바뀐 환경에) 이들은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대처하게 된다”면서 “많은 선수들이 열심히 파티에 다니고 과음하곤 하는데, 이러한 방법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수렁에 빠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놀랍게도 올림픽에서의 성과는 얼마나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는지와는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하웰스 박사는 “금메달을 땄든,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든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과는) 상관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3번의 올림픽에서 무려 금메달 3개, 은메달 3개를 목에 건 영국의 수영 선수 아담 피티를 예로 들었다. 피티 선수는 자신의 정신 건강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놓은 바 있다.
피티 선수는 인터뷰에서 “(금메달을 따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하웰스 박사는 연구를 통해 이러한 후유증이 선수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우울증과 같은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이와 관련한 연구가 부족해 사태의 심각성을 정확한 수치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대규모 스포츠 경기 이후 선수들의 건강을 더욱더 지원해야 한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번 2024 파리 올림픽 출전 선수 돌봄 증진 정책의 일환으로 76개국의 담당자 148명 훈련을 지원했다.
IOC ‘안전한 스포츠 부서’ 책임자인 커스티 버로우스는 “연속적인 선수 돌봄 및 지원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올림픽 이후에는 선수들을 지원해 주던 네트워크가 갑자기 끊길 수 있기에 이들을 지원할 인력 확보가 중요합니다.”

이번 파리 올림픽이 끝난 이후에도 참가 선수들을 위해 약 70여개 언어로 24시간 전화를 걸거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서비스가 최대 4년간 제공될 전망이다.
한편 아티스틱스위밍 선수 생활을 은퇴한 글레즈는 비즈니스 및 스포츠 행정 분야에서 종사하다 현재는 ‘애슬리트 소울(‘선수들의 영혼’이라는 뜻)’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한때 운동선수였던 이들이 운영하는 이 단체는 운동선수들이 은퇴 후 직면하는 어려움에 대한 인식 제고를 위해 노력한다.
글레즈는 “우리는 운동선수들에게 도움이 되는 여러 자료를 제공하고, 그룹 및 개인 멘토링 서비스도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하웰스 박사는 많은 운동선수들이 스포츠 심리학자에게 상담받을 수도 있지만, 이러한 상담 센터가 올림픽에 출전할 팀을 선발하는 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경우가 많기에 선수들이 솔직하게 모든 걸 털어놓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도움을 청하면 나약하다는 표시로 여겨져, 올림픽 출전 선발 가능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하웰스 박사는 선수들은 전직 올림픽 선수들이야말로 자신들에게 조언과 지원을 해줄 최적의 상대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직접 겪어본 이들이야말로 제일 잘 지원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올림픽 전후로 선수들을 향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높아져야 하며, 실제로 지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