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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 간 ‘냉전 이후 최대 규모의 포로 교환’ 무대는 어떻게 마련됐나

2024.08.02
블라디미르 푸틴
Getty Images

“이 일은 조용히 진행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서방 세계와의 포로 교환 가능성에 대해 묻는 질문에 언제나 러시아 관료들이 했던 말이다. 취재진은 지난 몇 달간 이런 말을 들었다.

바로 러시아 크렘린궁은 언론의 주목에서 멀리 떨어진 채 진행되는 ‘인질 외교’, 정보기관 대 정보기관, 정부 대 정부의 대화 등 막후에서 진행되는 대화를 좋아한다.

자신들이 원하는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얻게 될 때까지 말이다.

이렇듯 ‘조용히’ 진행하긴 했으나 몇 가지 신호는 있었다. 무언가 움직이고 있다는 낌새가 포착된 것이다.

지난 2월 전 미 ‘폭스 뉴스’ 진행자 터커 칼슨과의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돼 수감 중인 ‘월스트리트 저널’의 미국인 기자 에반 거슈코비치에 대해 언급했다.

“거슈코비치가 고국으로 돌아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발언이었다.

“우리는 미 특수 당국이 우리 측 특수 당국이 추구하는 목표 달성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길 바랍니다.”

이는 러시아는 협상에 열려 있다는 매우 공개적이고 분명한 힌트였다.

당시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은 구체적인 이름을 말하진 않았다. 그러나 거슈코비치를 풀어주는 대가로 크렘린궁이 누구를 원하는지는 분명히 했다. 바로 미국이 아닌 독일에서 살인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러시아 요원으로 추정되는 바딤 크라시코프였다.

해당 인터뷰가 공개된 지 며칠 뒤,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북극의 외딴 교도소에서 사망했다. 그가 사망하기 전, 러시아가 투옥시킨 나발니, 거슈코비치, 폴 웰란 (전 미국 해병대원)을 독일에 있는 크라시코프와 교환하는 협상이 진행 중이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독일 당국이 포로 교환 협상에 들어간 것일까.

알렉세이 나발니
Reuters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는 포로 교환 협상이 성사되기 전인 올해 2월에 교도소에서 숨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새 6월, 거슈코비치의 간첩 혐의에 대한 비공개 재판이 마침내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시작됐다(‘월스트리트 저널’과 미국 정부는 해당 재판에 대해 ‘엉터리’라며 일축했다). 그리고 이내 이 재판 일정은 8월 중순으로 미뤄졌다.

그러나 지난달, 뜻밖에도 러시아 법원은 2번째 심리 날짜를 3주 이상 앞당겼다. 그렇게 3일간 번개처럼 빨리 지나간 재판 끝에 거슈코비치는 유죄로 판단돼 징역 16년 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날, 미국계 러시아인으로 기자로 활동하다 체포된 알수 쿠르마셰바 또한 카잔의 한 법원에서 징역 6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쿠르마셰바의 재판 또한 단 2일간 초고속으로 진행됐다.

누군가 바삐 움직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는 거래가 성사됐으며, 곧 포로 교환이 이뤄지리라는 가장 확실한 신호였다. 러시아 당국은 보통 유죄 판결 여부를 포로 교환 전 전제 조건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이번 주 초엔 더 많은 신호가 포착됐다. 러시아의 여러 유명 정치범이 교도소, 구치소 등에서 이송됐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그렇게 추측은 커져만 갔다. 과연 이 반체제 인사들이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것 같은 포로 교환이 일부인 것일까.

에반 거슈코비치
EPA
수감 중이던 미국 언론인 에반 거슈코비치도 이번 포로 교환 대상자에 포함됐다

벨라루스에서도 뉴스가 전해졌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테러 등의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독일 시민권자 리코 크리거를 사면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렇다면 크리거도 교환 대상에 포함되는 것일까?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 답을 안다. 이는 냉전 이후 러시아와 서방 간 최대 규모의 포로 교환이다.

서방 정부는 러시아 교도소에서 풀려난 외국 국적자들과 러시아의 유명 정치범들의 자유를 축하할 것이다.

러시아는 자국 요원들의 귀환을 축하할 것이다.

양측 모두 좋은 거래였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도 그랬듯, 이번 일로 러시아가 ‘인질 외교’가 효과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면, 외국 국적자들과 러시아인들이 협상 카드로 사용되는 게 이번이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는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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