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본 수천 개'...확산하는 화환 시위에 늘어가는 지자체 고민
윤석열 대통령 체포가 있던 15일 오전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선 영장 집행을 반대하는 집회 참가자들 옆에 놓인 수백 개의 화환이 눈에 띄었다.
지난 12월 대통령실 앞에 '탄핵 반대', '윤 대통령님 힘내세요' 등의 문구가 새겨진 화환 약 3000개가 놓인 이후, 비슷한 화환들이 한남동 관저, 헌법재판소, 서울서부지방법원, 서울구치소 인근까지 배달됐다.
이처럼 결혼식, 장례식 등에 쓰이는 화환을 이용한 '화환 시위'는 12.3 계엄 이후 그 규모와 빈도가 크게 늘었다.
이를 두고 개인의 의사를 표현하는 새로운 집회 문화가 등장했다는 평가도 있는 반면, 안전과 환경 문제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왜 화환일까?
"국민이 의사를 표현할 방법이 달리 없잖아. 우리가 돈이 많아서 신문에 광고를 내겠어, 뭘 하겠어."
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 12도를 기록한 9일 오전, 자신을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자라고 밝힌 70대 여성 A씨는 대통령실 인근에 넘어진 화환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날까지 벌써 9일째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A씨는 직접 구매한 끈으로 화환들을 넘어지지 않게 고정한 후 바닥에 떨어진 조각들을 청소했다.
A씨는 시민들이 화환을 배달시키는 이유에 대해 "간절함"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은 "인터넷 주문이 어려워 화환 주문을 하지 못했다"는 A씨는 "유튜브를 보고 봉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용산 대통령실 앞에 놓인 화환을 관리하는 유튜버도 등장했다. '킬문tv'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김모 씨는 "아스팔트 유튜버 중에서 화환을 관리할 만한 사람이 많지 않아" 자신이 관리를 맡게 됐다고 밝혔다.
김 씨는 현재 화환이 놓인 구역을 순찰하는 방송을 진행하기도 하며, 용산구청과 관리 및 처리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화환은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12월 14일을 전후한 시기에 급증했다.
당시 일부 유튜버들은 실시간 방송에서 화환이 배송되는 모습을 중계하며 시청자들에게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각종 보수 성향 커뮤니티에도 '윤석열 대통령 지키기 화환 보내기 운동' 관련 글들이 올라왔다. 게시물들은 화환의 가격, 보내는 주소, 업체 목록을 소개하며 참여를 독려했다.
서울 서초구에서 화환업체를 운영하는 B씨는 주문자들이 "대부분 어르신들"이라고 전했다.
"문구를 어떻게 해드릴지 여쭤보려고 전화하면 그렇게들 울먹이세요. 그러면 저도 같이 우는 거예요."
B씨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이었던 2020년부터 시위용 화환을 제작해왔다고 밝혔다.
야당 성향 지지자들도 지난 12월 7일 윤 대통령에 대한 1차 탄핵안 표결이 무산되자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의 사무실로 근조 화환을 보내기도 했다.
정치권 바깥에서도 화환은 의사표현의 수단으로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엔 아이돌그룹 라이즈의 팬들이 멤버 승한의 복귀를 반대하며 SM엔터테인먼트 앞에 1000여 개의 근조화환을 보내기도 했다. 동덕여대 남녀공학 전환 반대 시위에서도 근조화환이 등장했다.
화환이 시위 문화의 하나로 자리잡은 셈이다.
유튜브 타고 확산된 화환 시위
화환시위가 퍼지는 데는 유튜브도 큰 역할을 했다.
초창기 보수 진영 집회에 이용된 화환 대부분을 제작해 공급했다는 화환업체 대표 B씨는 2020년에 "유튜버들을 통해서" 제작 의뢰가 오기 시작했다고 기억했다.
"제가 스타트가 된 것 같아요. 저는 그때 유튜브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이분들(유튜버들)과 운 좋게 연결이 됐어요."
국민의힘의 책임당원인 B씨는 "당시 우파 유튜버들 사이에 '윤석열을 지키자'는 모임이 있었다"며 이들이 서울 서초구의 대검찰청 앞으로 화환을 보내달라고 의뢰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2020년 이전에도 시위에 화환을 활용한 사례는 기록은 있지만 이 방법이 본격적인 주목을 받게 된 시기는 바로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갈등을 빚었던 2020년 10월 무렵이다.
당시 이 둘은 언론사 고발사주 사건, 라임자산운용 로비 의혹 사건 등으로 갈등을 빚었고, 급기야 11월엔 추 전 장관은 윤 전 총장의 직무를 정지했다. 이 갈등은 두 사람을 넘어 여야간의 갈등으로 크게 번졌다.
당시 화환 시위를 가장 적극적으로 주도한 쪽은 일부 시민단체와 관련 유튜버들이다. 이들은 대검찰청 앞으로 윤 전 총장을 응원하는 화환을, 정부 과천청사 앞으로는 추 전 장관을 규탄하는 근조화환을 보내며 시위는 물론 철거과정도 실시간으로 방송했다.
윤 대통령은 당시 법무부 국정감사에서 이 화환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그분들 뜻을 생각해서 해야 될 일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B씨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직무가 정지됐을 때도 나갔고, 복귀했을 때도 기념으로 나갔고, 그리고 대통령 나오신다고 선언하셨을 때도 나갔고, 검찰에서 불합리한 판단을 내리면 이재명 대표 쪽에 근조화환이 나갔다"고 밝혔다.
진보 성향의 유튜브 채널 '제이컴퍼니 정치시사'를 운영하는 정병곤 씨도 이때부터 화환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장례식 분위기가 나면 효과적일 것 같아서 상징적인 의미로 근조 화환을 시도했죠."
그는 2020년 11월 20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검찰을 규탄하는 의미로 '삼가 검찰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화환을 가져다놓고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정 씨는 이후 다른 유튜버가 자신을 따라 화환시위를 하기도 했다며 "화환으로 보여주는 시위가 이때부터 유행처럼 번졌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로 엄격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적용되던 이때 유튜브를 타고 화환 시위는 빠르게 확산됐다.
커가는 지자체들의 고민
화환 시위가 확산될수록 이를 관리하는 지자체들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화환을 치워달라는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치기 때문이다.
용산구청 광고물관리과 관계자는 화환 관련 민원이 "지난 12월에만 100건이 넘었고 지금도 하루 3~4건씩 들어온다"고 밝혔다.
정병곤 씨는 본인은 "집회신고를 해서 화환시위를 진행한 후 끝나면 자진 철거"하지만 "집회신고도 하지 않고 화환을 보내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말했다.
화환시위 주최자들은 그동안 대부분 관할 경찰서에 집회신고를 한 후 신고된 기간 동안만 화환을 설치하는 식으로 시위를 해왔지만,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이번 대통령실 앞 화환 시위는 신고 없이 이뤄졌다.
하지만 용산구는 관련 규정이 모호한 탓에 함부로 철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행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집회신고를 하지 않고 이용자의 통행 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는 광고물을 설치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그런데 이 법 8조는 적법한 정치활동을 위한 행사나 집회 등에 광고물을 사용하는 경우엔 신고나 허가 없이도 최장 30일 동안 설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용산구 관계자는 "확실한 관련 근거가 없고 지지자들이 반발해 치울 수 없는 상태"라고 밝혔다. 현재 용산구청은 매일 자체 인력을 투입해 쓰러진 화환들을 정리하고 떨어진 조화들과 플라스틱 잎 등 잔재물을 청소하고 있다.
용산구는 지난 8일 '안전한 보행 환경 조성을 위해 자진 철거를 요청'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녹사평대로 인근에 내걸었다가 하루 만에 철거하기도 했다.
구청 관계자는 "보고 계통에 혼선이 있었고, (윤 대통령 지지자들을) 자극할 수 있다는 고민이 있어서 철거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녹사평역과 삼각지역 입구 주변은 보도가 좁아 화환들이 넘어지면 시민들한테 위험하므로 관리자인 유튜버와 일부 철거하기로 협의했다"고 덧붙였다.
인근 화환을 관리하는 유튜버 김 씨는 "화환 설치도 오래됐고 시민 편의도 생각해 폐기할 계획"이라며 "한꺼번에 폐기할 순 없고 조금씩 폐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국무총리 공관 일대에선 화환이 쓰러져 인근을 지나던 주민 안전을 위협한다는 민원이 제기돼 공관 직원들이 배달 업체를 통해 화환을 모두 치우기도 했다. 공관 관계자는 "화환 하나가 지나던 어르신 쪽으로 넘어졌다는 민원이 있었다"며 철거 이유를 밝혔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총리 공관은 다른 곳들에 비해 보도 폭이 좁고 오르막에 설치된 탓에 안전 우려가 커 철거했지만 헌법재판소나 정부청사 등은 철거하지 못하고 관리만 하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화환을 "단순 적치물로 봐야 되느냐, 광고물로 봐야 되냐 이런 부분도 애매하다"며 처리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자체들은 제작업체, 관련 유튜버 등을 통해 자진철거를 유도한다는 계획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자체적으로 폐기에 나서야 한다. 화환시위가 빈번한 여의도를 관할하는 영등포구 관계자는 "계고 조치를 하고 일정 기간 동안 철거가 되지 않으면 구에서 자체적으로 폐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비용이 발생해도 따로 (주최자 측에) 청구하지는 않는다"며 폐기에 발생하는 비용도 구에서 자체적으로 감당하고 있다고 전했다.
환경에 대한 우려도 상당하다. 집회문화의 일부가 되기 전부터 화환에 대한 문제제기는 늘 있어왔다. 나무로 된 받침대, 스티로폼, 미세플라스틱을 유발하는 플로랄폼, 플라스틱으로 된 조화와 잎, 연결에 쓰이는 철사 등 각종 폐기물을 양산하기 때문이다.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 등 실내에서 사용된 화환은 재사용되는 사례가 빈번하지만 집회 등에 사용되는 화환은 재사용이 어렵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국무총리 공관 앞에 배달된 화환을 수거한 배달기사 C씨는 "오래 방치돼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한 화환들은 재활용이 안 된다"며 "용산에 놓였던 화환을 받아가려는 업체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의사 표현의 수단이 될 수는 있지만 환경적인 관점에서는 결코 장려할 수 없다"고 전했다.
특히 최근 시위에 쓰이는 화환의 경우 사용되는 꽃들이 "대부분 플라스틱으로 된 조화"라며 "실내에서 사용할 경우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지만 길거리 화환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이론의 여지 없이 환경적으로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홍 소장은 이어 "길거리 쓰레기 투기의 관점에서 이 문제도 규제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각 지자체들은 현재 뚜렷한 대책을 갖고 있지 않으며 최근 발생한 화환들에 대해선 공고를 통해 자진 철거를 최대한 유도한 후 자체 처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