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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게양기부터 콘트리트 장벽까지...70년 동안 DMZ에 등장했던 것들

2024.06.27
게양대부터 콘트리트 장벽까지...70년 동안 DMZ에 등장했던 것들
Getty Images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74주년·정전협정 71주년이 되는 날이다.

전쟁이 멈췄지만 남북한의 관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공간이 있다. 최근까지도 남북이 오물풍선과 확성기로 대치하는 곳, 바로 비무장지대(DMZ)다. 지난 세월 이곳에는 무엇이 생겨나고 또 사라졌을까.

1953년, DMZ의 탄생

비무장지대(DMZ)는 전쟁이나 분쟁 등의 휴전 상태에서 군사 활동이 금지된 지역을 의미한다. 한반도에서는 1953년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 제1조 제1항에 의해 설정되었다. 남북을 가르는 군사분계선(MDL)으로부터 각각 2km 범위 내가 비무장지대로 설정되었으며, 서해의 임진강 하구에서 동해의 고성군 명호리에 이르기까지 약 248km에 달한다.

'비무장'이라는 말과는 달리, 남북은 지난 70년간 이곳에서 군사적으로 대치하며 약 42만 건의 정전협정 위반 사례를 만들었다. 북쪽의 북방한계선(NLL)과 남쪽의 남방한계선(SLL)에는 각각 북한과 한국의 군대가 무장하고 철책을 두르고 있다.

비무장지대
BBC

목책에서 철조망까지

1960년대 초반까지 DMZ에는 철책이 없었고, 경계도 명확하지 않았다. 군사분계선 구역 설정은 1962년에야 완료됐다. 그 이전에는 휴전선을 넘어 귀순하거나 반대로 월북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으며, 무장공비 침투도 빈번했다.

1964년, 한국의 한신 장군이 지휘하는 6군단 지역에서는 북한발 침투를 막겠다며 나무 울타리인 '목책'을 세웠다. 그러나 목책은 자주 갈아야 했고 시야를 가리는 단점이 있었다.

이후, 휴전선 일대를 중심으로 북한군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하려 한 1·21사태와 무장공비 120명이 침투한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 등이 일어난다.

한·미는 남방한계선을 따라 '철책선'을 세웠다. 당시 유엔군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인 찰스 H. 본스틸 3세 대장이 주도했다. 그는 1945년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에 38선을 그은 장본인 중 한 사람이다.

철조망은 쇠기둥을 박고 그 사이에 철망을 두르는 방식으로 설치됐다. 윗부분은 Y자 모양으로 벌려 놓고 철조망을 쳤다. 무장공비가 타고 넘어갈 수 없게 하려는 조치였다. 험한 산세 때문에 일부 구간은 1970년대에야 완공할 수 있었다.

서울까지 1시간, 남침 땅굴

연천에서 1970년대 발견된 북한의 제1땅굴 모습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연천에서 1970년대 발견된 북한의 제1땅굴 모습

1970년대 비무장지대를 휩쓴 것은 '땅굴'이었다.

1974년 한국 육군 25사단 소속 구정섭 중사 등 8명의 수색조는 경기도 연천군에서 땅굴 하나를 발견한다. 땅 밑에서 수증기가 올라오는 점을 이상하게 여긴 것이다. 해당 지역을 파던 도중 수색조는 북한 초소의 사격을 받기도 한다. 수색조 역시 대응 사격을 하며 충돌이 있었다.

이때 발견된 땅굴이 '제1땅굴'이다. 폭 91cm, 높이 1.2m로 남방한계선 1200m까지 뚫려 있는 규모다. 서울까지는 65km에 위치해 있어 1시간 정도면 이동가능한 거리다. 한국 국방부는 북한의 땅굴이 다른 곳에도 더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하고 땅굴 수색 작업을 실시했다.

이후 1975년에 강원도 철원군 근동면에서 제2땅굴이, 1978년 경기도 파주시에서 제3땅굴이 발견되었다. 이후 1990년에는 제4땅굴까지 발견됐다.

그러던 와중, 1976년 8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서쪽에 있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 부근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 중이던 미군 병사를 북한군이 도끼로 살해한 '도끼 만행 사건'이 일어나면서 DMZ에서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한국 군당국은 2000년대 이후까지도 시추 등 정밀 조사를 벌였으나 추가로 땅굴을 더 발견하지는 못했다. 발견된 땅굴 중 3곳은 현재 관광 및 안보 교육용으로 공개되고 있다.

하지만 이 당시에도 DMZ에서 반목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71년 6월에는 군사정전위원회에서 DMZ 평화적 이용이 최초로 제안되는 등의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다.

'내가 더 커' 게양대 싸움

파주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비무장지대(DMZ) 북한 기정동 마을의 인공기와 남한 대성동 마을의 태극기가 나란히 펄럭이고 있다
뉴스1
파주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비무장지대(DMZ) 북한 기정동 마을의 인공기와 남한 대성동 마을의 태극기가 나란히 펄럭이고 있다

남과 북 비무장지대에는 마을이 하나씩 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당시 남북이 비무장지대 안에 마을을 하나씩 두기로 한 합의에 따라 조성됐다. '대성동 마을'과 '기정동 마을'로 더 잘 알려진 남측 자유의 마을과 북측 평화의 마을이다. 분단 이전에는 모두 경기도 장단군에 속했던 마을들이다.

1970~1980년대에는 이 두 마을이 국기 게양대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대성동 당시 국민학교 옆에 48m 높이로 세운 태극기 게양대가 발단이었다. 얼마 뒤, 기정동 마을에 더 높은 인공기 게양대가 설치되었다.

이후 대성동 마을 게양대가 1982년 1월 99.8m로 높아지자 한 달 뒤 기정동에는 높이 165m의 게양대가 들어섰다. 각각 아파트 33층, 55층 높이 정도일 정도로 크다.

남측의 경쟁 포기로 게양대 높이 싸움은 끝났지만 지금도 2.5km 거리를 두고 태극기와 인공기가 텅 빈 하늘을 가르고 있다.

상자 속 폭탄 '목함지뢰'

2015년 일어났던 DMZ 목함지뢰 사건. 사진은 사고 당시 TOD영상 화면 캡쳐. (합참공보실)
뉴스1
2015년 일어났던 DMZ 목함지뢰 사건. 사진은 사고 당시 TOD영상 화면 캡쳐. (합참공보실)

목함지뢰는 1930년대 말에 소련에서 개발한 나무 상자 형태의 지뢰다. 2015년에는 이 목함지뢰를 두고 큰 갈등이 일었다.

그해 8월 4일 한국 육군 제1보병사단 예하 수색대대 부사관 2명이 DMZ의 한국 쪽 추진 철책 통로에서 북한군의 목함지뢰를 밟아 중상을 입은 것이다.

사건 초기에는 얼마 전 있었던 폭우로 인해 지뢰가 유실되어 사고로 이어졌다는 얘기가 나왔으나, 국방부와 유엔군사령부의 합동 조사 결과 북한이 몰래 DMZ를 침범하여 의도적으로 목함지뢰를 매설해 놓았다고 발표했다.

한국군은 DMZ 목함지뢰 도발에 대응해 당시 11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그러자 북한은 DMZ 남방한계선 이남에서 확성기를 향해 14.5mm 고사총과 76.2mm 평곡사포 3발을 발사했다.

이 사건으로 김정원 하사는 우측 다리를, 하재헌 하사는 두 다리를 잃었다.

서로를 향한 말싸움 '확성기'

한국 정부는 9일 2018년 철거했던 군사분계선 일대의 확성기를 다시 설치하고 방송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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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는 지난 9일 2018년 철거했던 군사분계선 일대의 확성기를 다시 설치하고 방송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남북 양측은 심리전의 일환으로 DMZ에 확성기를 설치하고 활용해왔다.

1960년대에 시작된 확성기는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에 대응하는 형식이었다. 이후 남북관계 상황에 따라 중단됐다가 재개되기를 반복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남 확성기 방송은 적극적으로 이용되지 않았다. 한국의 경제수준이 북한을 넘어선 이후, 북한의 방송이 한국을 상대로 실효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2000년대 이후에도 확성기 방송을 활용해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대북 확성기 방송을 이용한 심리전이 있었다.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이 벌어지자 한국은 북한 김정은 정권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방송을 했다.

북한 당국도 대남 확성기 방송을 시행했으나, 성능이 좋지 않아 민간인에게 명확한 내용이 전달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8년 4월 23일, 제1차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은 방송 송출을 중단하였고, 5월 1일 파주에 설치된 대북 확성기 시설을 철거했다. 이후 대남 확성기 철거도 확인됐다.

그러다 최근 북한의 대남 오물 풍선 살포 사건에 대응해, 지난 6월 9일부터 확성기를 이용한 대북 확성기 방송이 6년 만에 재개됐다.

재개 첫날에는 북한 전역의 상세한 일기예보와 더불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세계 38개국 출하량 1위 달성,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 정지 결정 발표 등의 내용이 전해졌다.

K-팝도 함께 송출되었는데, 방탄소년단(BTS)의 '다이너마이트(Dynamite)', '버터(Butter)', '봄날'과 볼빨간사춘기의 '우주를 줄게'가 방송됐다.

한편, 북한은 남북 대화 때마다 확성기 방송 중단을 요구했다. 2017년 6월 중부전선 군사분계선을 넘어온 북한군이 귀순을 결심한 이유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꼽은 것으로 알려졌다.

제2의 베를린 장벽?

DMZ 위성사진
BBC

1970년대 후반, 한국은 북한군의 남침에 대비한 대전차 장애물로 군사분계선 이남 2㎞ 지점인 남방한계선 상 서부·중부 전선에 높이 5~6m, 총길이 30㎞의 콘크리트 장벽을 설치했다.

1990년대, 북한은 이 장벽을 ‘분단의 상징’이라며 철거를 요구했다. 북한도 동·서부 전선 여러 곳에 장벽 형태의 대전차 방어용 진지를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북한이 군사분계선(MDL) 북쪽 1km 지점을 따라 콘크리트 벽을 세우는 듯한 모습이 포착됐다. DMZ 북방한계선과 MDL 사이에 새로운 벽을 만드는 것이다.

BBC 검증 탐사보도팀인 BBC Verify는 남북한 경계 7㎞ 구간에 대한 미 상업위성 업체 플래닛 PBC의 고해상도 위성 사진의 분석을 의뢰했다.

사진에서 DMZ 동쪽 끝 약 1㎞에 걸쳐 DMZ 근처에 최소 3개의 구간에서 장벽이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경계선을 따라 장벽이 추가로 건설됐을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유럽 및 국제학 연구를 책임지는 라몬 파체코 파르도 박사는 “한국의 공격을 막기 위한 장벽이 필요한 게 아니다."라며 "이러한 장벽 건설을 통해 북한은 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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