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레바논 휴전, 중동 문제의 해결책 아닌 미봉책
대다수의 레바논 국민이 휴전을 고대했다. 로마에서 중동 관련 컨퍼런스에 참석한 레바논의 한 유명 분석가는 휴전 예정일이 가까워지면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맞이한 크리스마스이브 같았어요. 너무나도 기다려졌습니다.”
안도하는 이유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레바논 국민 3500명 이상이 숨졌다. 난민들은 새벽부터 차에 짐을 싣고 잔해라도 남아 있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중 100만 명 이상이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으로 인해 강제로 피난을 떠나야 했다. 수천 명이 부상을 입었고 수만 명의 집이 파괴됐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헤즈볼라를 더 제대로 무너뜨릴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 북부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을 만났다. 약 6만 명의 민간인이 남쪽으로 대피해 유령 도시로 변한 지역들이다.
이스라엘 매체 와이넷(Ynet) 보도에 따르면, 고성이 오가는 격렬한 회의가 이어졌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에 있는 적군에게는 군사 압박을 완화하면서도 민간인 귀환에는 미적거리는 것에 일부 지방 관리들이 불만을 품었기 때문이다.
국경과 가까운 키리야트 슈모나 지역의 시장은 신문 칼럼에서 휴전이 이행될지 의심스럽다고 말하며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에 완충지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채널12의 뉴스 방송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재 반응은 크게 휴전 지지자와 반대자로 나뉜다.
설문조사 참여자 중 절반은 헤즈볼라가 패배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30%는 휴전이 깨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9월 말,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는 합의가 임박한 것처럼 보였다. 미국과 영국의 외교관들은 현재 발효 중인 것과 매우 유사한 휴전 협정이 곧 성사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전쟁의 모든 당사자가 2006년 레바논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통과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701의 조항에 따라 휴전을 수용할 것처럼 보였다. 헤즈볼라가 국경에서 철수하면 유엔 평화유지군과 레바논군이 배치되고, 이스라엘군은 단계적으로 철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는 유엔 연단에 올라 이스라엘의 공세를 어떤 식으로든 중단하지 않겠다는 격렬한 연설을 펼쳤다.
뉴욕 호텔로 돌아온 네타냐후 총리의 공식 사진작가는 총리가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 암살을 명령하는 순간을 포착했다.
다른 고위급 지휘부 관계자도 동석한 상태였다. 네타냐후 총리실은 이 사진을 공개했다. 계산기를 두드린 다음 고의로 미국 외교를 무시한 전략이었다.
하산 나스랄라의 폭사는 헤즈볼라에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이후 몇 주 동안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 군사 조직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헤즈볼라는 여전히 국경 너머로 로켓을 발사할 수 있었고, 헤즈볼라의 전사들은 이스라엘의 침략군과 계속 교전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게 헤즈볼라의 위협은 더는 예전 같지 않았다.
네타냐후, '전력 보충'의 시간
네타냐후 총리가 지금이 휴전의 적기라고 납득하게 만든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이 군사적 성공이다.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이 가진 목적은 가자지구와 다른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가진 목적보다 제한적이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를 북부 국경에서 몰아내고 민간인을 국경 마을로 돌려보내길 원한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공격 준비가 의심될 경우 군사적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미국 측의 동의를 받았다.
네타냐후는 녹음된 성명을 발표해 지금이 휴전의 적기인 이유를 나열했다. 총리는 이스라엘이 베이루트의 기반을 흔들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제 ‘우리 군이 숨을 돌리고 전력을 보충할’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또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레바논 간의 연결을 끊었다. 작년 10월 7일 하마스가 전쟁에 돌입한 다음 날, 하산 나스랄라는 이스라엘 북부에 대한 공격을 명령한 뒤 가자에서 휴전이 이뤄질 때까지 계속 공격하겠다고 말했다.
네타냐후는 이제 가자지구의 하마스가 더 큰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세가 다시 확대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네타냐후가 말하는 ‘이란의 위협’에 집중해야 할 다른 이유도 있다.
헤즈볼라를 공격한다는 것은 곧 이란을 공격한다는 뜻이다. 이란은 이스라엘 국경에 위협을 조성하기 위해 헤즈볼라를 만들었다. 이란은 동맹국과 지원세력으로 구성된 전방 방어망에 헤즈볼라라는 이름을 붙였고, 헤즈볼라는 이란의 저항세력 가운데 가장 강력해졌다.
- 공습으로 사망한 나스랄라... 헤즈볼라, 이스라엘, 이란의 다음 행보는?
- '헤즈볼라'는 무엇이며,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공격하는 이유는?
- 2006년 이스라엘과의 전쟁 이후 오늘날 헤즈볼라는 어떻게 변했나?
이란이 휴전을 원했던 이유
아직 생존한 헤즈볼라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란의 지원세력들도 휴전을 원했다. 헤즈볼라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휴식이 필요하다. 이란은 지정학적 출혈을 막아야 한다. 이란의 저항세력은 더 이상 억지력을 갖지 못한다. 나스랄라 암살 이후 이란이 이스라엘에 가한 미사일 공격은 이란이 입은 피해를 복구시키지 못했다.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뿐만 아니라 이란 공격도 저지하도록 설계한 두 인물이 있다. 첫 번째 인물은 2020년 1월 바그다드 공항에서 미국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한 이란 혁명수비대 특수부대 쿠드스군 사령관 카셈 솔레이마니다.
이 명령은 도널드 트럼프가 첫 임기 말 백악관에서 마지막 몇 주 동안 내린 명령이었다. 다른 인물인 하산 나스랄라는 베이루트 남부 교외에서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으로 사망했다.
헤즈볼라와 이란의 억지력은 2006년 전쟁이 끝난 후 거의 20년 동안 이스라엘의 억지력과 균형을 이뤘다. 그러나 10월 7일 공격으로 인해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다.
이스라엘이 이후 진행될 반격에서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 미국도 계속 제공하던 무기 공급이나 사용을 거의 제한하지 않았다.
나스랄라와 이란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변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상대로 소모전을 벌이려 했고, 1년가량은 성공했다. 그러던 지난 9월 17일, 이스라엘은 소모전을 끝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헤즈볼라를 속여 소형 폭탄이 설치된 무선호출기·무전기를 팔아넘기고 폭탄을 터뜨린 것이다.
헤즈볼라는 균형대에서 떨어졌다. 헤즈볼라가 이란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받아 대응하기 전에, 이스라엘이 나스랄라와 핵심 간부 대부분을 살해했고 무기고를 파괴하는 등 대규모 공습을 가했다. 이후 남레바논을 침공해 레바논 국경 마을과 헤즈볼라의 지하 네트워크를 대대적으로 파괴했다.
트럼프, 가자지구, 미래
레바논 지역의 휴전이 반드시 가자지구 휴전의 전조는 아니다. 가자지구는 다르다. 가자지구의 전쟁은 국경 안보와 이스라엘 인질 문제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진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생존이 걸려있고 네타냐후 정권이 팔레스타인 독립을 절대적으로 거부하기 위한 설욕전인 것이다.
레바논 휴전은 견고하지 않다. 의도적으로 속도를 조절해 시간을 벌기 위한 용도다. 합의된 휴전 기간 60일이 끝나면,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집무실로 돌아온다. 트럼프 당선인은 레바논 휴전을 원한다고 밝혔지만, 아직 정확한 계획은 확인된 바 없다.
중동 지역은 트럼프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다리고 있다. 일부 낙관론자들은 1972년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깜짝 방문했던 것과 비슷하게 트럼프가 이란에 손을 내밀 수 있다고 기대한다.
비관론자들은 트럼프가 소위 ‘2국가 해법’(이스라엘과 독립한 팔레스타인이 공존하는 방안)이라는 미국의 공허한 구상마저 포기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이는 이스라엘이 원하는 일부 팔레스타인 점령지, 즉 서안지구와 북부 가자지구의 병합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중동 지역이 근본적인 정치적 균열을 직시하고 이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더 많은 세대가 전쟁과 폭력적인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가장 큰 균열은 역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이다.
베냐민 네타냐후와 그의 정부는 대부분의 이스라엘인과 마찬가지로 군사적 승리를 통해 적을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네타냐후는 미국의 제지 없이 무력을 적극 사용해 중동지역의 힘의 균형을 이스라엘에 유리하도록 바꾸고 있다.
아랍인과 유대인 모두 한 세기 이상 지속된 분쟁에서 군사적 승리를 통한 평화를 거듭 꿈꿔왔다. 모든 세대가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 공격의 참혹한 결과는, 팔레스타인의 자결권을 계속 부인하면서 갈등을 관리할 수 있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무너뜨렸다. 레바논 휴전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결코 해결책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