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GA: 'K-조선'의 도시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한국 조선업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선박 주문이 쌓이고,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국가들도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세계 최대 조선소를 품은 도시의 사정은 좋지만은 않다.
29일 APEC을 계기로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은 조선의 대가(master)"라며 "우리는 필라델피아 조선소 등 미국 내 여러 곳에서 협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7월 한국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3500억달러(약 500조원) 규모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이 중 1500억달러를 한미 간 조선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다시 미국 조선업을 위대하게)에 투자하기로 했다.
최근 수주량 증가로 인한 호황과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으로 한국 조선업이 다시 한번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가운데, BBC 코리아는 '조선업 1번지'라 불리는 울산 동구를 방문했다.
이 지역에는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의 대형 조선소가 있는데, 각각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선박과 중형 선박에 특화됐다. 최근 합병한 두 회사는 오는 12월 통합 법인으로 출범한다.
 
                'MASGA'를 바라보는 시선
이곳에 도착해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현대중공업 정문 근처에 걸려 있는 "트럼프 방한 반대한다", "관세 철회"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였다.
이곳에서 도보 10분 거리에는 조선업 호황기에 번화했던 상권인 명덕 거리가 위치해있다. 대다수 노동자가 퇴근하기 전인 오후 4시이긴 했지만, 이를 고려해도 중심가에는 공실 표시가 붙은 가게들이 많았다. 최근 한국 조선소에 쏟아지는 관심 뒤에 가려진 모습이다.
38년째 이 거리에서 휴대폰 가게와 감자탕집을 운영하고 있는 여종구 명덕마을 상인회장은 한 가게를 가리키며 "현대중공업이 활성화됐을 때는 한 달에도 담배 등을 거의 3000만원어치 팔았던 곳"이라며 "(지역에) 사람이 줄다 보니까 매출이 많이 줄었고, 결국 점포를 내놓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 씨는 마스가 프로젝트에 대해 "위기감을 갖고 있다"라고 했다.
"지금까지 동구가 발전된 게 현대중공업이 있었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현대중공업의 기술이 (미국으로) 이전되고, 기술자들이 외국으로 다 간다면 여기는 사실상 다 비게 되는 거잖아요."
 
                젊은 한국인이 떠난 자리
한국 조선업은 1970년대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책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해, 90년대부터는 세계 시장을 선도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세계 최대 규모 조선소로 알려진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가 있는 울산 동구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동구는 높은 지역내총생산을 자랑하며 '부자 도시'로 불렸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주가 취소되고 대금 지급이 연기되는 등 경영 상황이 악화했고, 중국 조선업체들과의 경쟁도 심화하면서 많은 조선소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지역을 떠났다.
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2022년 산업연구원은 이 지역을 '소멸 우려' 지역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외국인 주민 수는 지난 3년간 2배 이상 늘었다. 내국인이 떠난 자리를 외국인이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몇 년간 조선업 경기가 좋아지면서 지역 내 조선업 노동자 수도 증가하는 추세지만, 대부분이 이주 노동자들이다.
덕분에 울산 동구에는 베트남어, 태국어, 러시아어 등으로 된 간판이 달린 가게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천천히' 대신 영어로 'SLOW'가 적힌 도로도 있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인 텐 유리 씨는 8년여 전에 한국에 와 4년 넘게 조선소에서 커다란 배에서 작업하기 위한 족장(발판)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텐 씨는 "처음 조선소에 왔을 때랑 비교하면 (외국인 노동자가) 10배 정도 많아졌다"라고 했다.
"우리 회사만 보면, 지금 남아 계신 한국분은 보통 나이가 40이 넘습니다. 젊은 (한국) 애들이 잘 안 옵니다…반대로 외국에서 온 사람들은 보통 20대, 30대고요."
이달 HD현대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울산 HD현대중공업 직원 3만4200명 중 약 15%에 해당하는 5200명이 외국인이다. HD현대미포의 경우 외국인 비중이 22% 수준이다.
 
                도시, 노동자와의 상생 방법은
김성훈 씨는 25년간 울산 조선소에서 배가 부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도장 일을 하고 있다. 그는 하도급(하청)업체 소속으로는 흔치 않게 노조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조선업 경기가 좋아졌지만, 하청 노동자로서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새로운 인력으로는) 대부분 다 이주 노동자들이 와요. 기량자(숙련자)들은 이미 떠난 지 오래됐거든요…남아있는 분들은 대부분 40대에서 50대예요."
김 씨는 "도장 업무의 경우 한 조가 보통 7~8명으로 구성되는데, 2010년쯤에는 이주 노동자가 1명 정도밖에 없었다. 그런데 요새는 이 중에 한국인은 2명이고 나머지는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스리랑카 등 다양한 국가 출신"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제기하는 또 다른 구조적 문제는 하도급업체 소속 노동자에 대한 임금 차별이다. 경기 사이클에 민감한 조선업 특성상 근로자 상당수를 하청 형태로 채용하는데, 이들의 임금이 원청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것.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이 고용노동부 의뢰를 받아 발간한 '2024년도 노사관계 실태분석 및 평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 '빅3'인 HD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한화오션의 간접고용 비중은 각각 약 58%, 63%, 68% 수준이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박종식 연구위원은 "옛날에는 한국에서 조선업 임금이 다른 산업보다 높았지만, 위기 이후에는 높지 않다"라며 "원청과 하청 간 임금 격차도 있다 보니 더더욱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위원은 조선업체들이 빠져나간 젊은 한국인 노동자들을 대신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거 충원했지만 이는 "한시적인 조치"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 합법적으로는 (외국인 노동자를) 10년 이상 못 쓰거든요. 10년 이상 일해서 숙련된 조선소 기술자가 됐는데, 더 이상 한국에서 일을 못 하는 거죠."
김 씨는 임금 상황이 개선되면 젊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돌아올 것이라며, 그러기 전까지는 마스가 프로젝트나 조선업 호황을 마냥 기뻐할 수 없다고 했다.
"(마스가 프로젝트에) 우리 세금도 들어가잖아요. 나의 노동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데, 세금을 떼가면서 다른 나라에 투자한다는 소식을 어떻게 반기겠어요?"
영상: 최유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