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도 물건을 들고 다녀야 해요' 여성복 주머니, 왜 논란이 됐을까?

남성복에는 주머니가 많다. 그런데 왜 여성복에는 적을까? 오랫동안 이 별것 아닌 듯한 주머니는 패션계에 존재하는 성적 차이를 대표적으로 상징해왔다. 소셜미디어에서 #WeWantPockets (주머니를 원한다)라는 해시태그가 확산되고 있는 요즘, 앞으로 상황이 달라질까?
소셜미디어 유행 중에는 한두 번 보아서는 잘 이해가 안되는 것들이 있다. 여성들이 손으로 물건을 잡을 수 있는 최대한 잡고 있는 모습(클로 그립, the claw grip)을 틱톡에 올리는 현상 역시 처음에는 난해했다. 하지만 이 클로 그립은 생각보다 전략적인 유행이다. 우리 사회의 오래된 문제, 즉 여성복에 주머니가 더 적은 상황을 폭로하는 일종의 트로이 목마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하나의 밈으로 떠오른 영상이 있다. 영상 속에서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의 드레스를 칭찬하자, 상대방은 흥분한 듯 "주머니가 달려 있어요!"라고 외친다. 완벽한 핏의 청바지, 매력적인 흰색 티셔츠, 환상적인 리틀 블랙 드레스가 아니다. 소박하고 조그마한 주머니만큼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없다는 것이 이 영상이 주는 메시지다. 하지만 이 쾌활한 영상 뒤에는 깊은 좌절감이 놓여 있다. 패션계의 성적 차이가 오랫동안 옷에 달린 소박한 주머니에 응축되어 왔기 때문이다.
주머니 불평등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에 대한 불만은 수세기 동안 이어져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자주 주목받고 있다. 소셜미디어에는 해시태그 #WeWantPockets 이 자주 등장한다. 휴대전화의 크기가 커지면서 여성들이 옷에 달린 주머니가 쓸모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 듯하다. 여론조사기관 영국 '유고브'의 2020년 조사에 따르면 여성 10명 중 4명은 '선택하려던 옷에 주머니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다른 옷을 고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여성복의 주머니는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남성복 주머니보다 보통 짧거나 좁은 경우가 많다. 가장 짜증나는 사례는 주머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주머니가 아닌 경우다. 올해 초 여덟 살 여학생이 영국 슈퍼마켓 세인즈버리에 '여자 아이들 교복 바지에는 가짜 주머니가 달리고 남자 아이들 바지에는 진짜 주머니가 달린 이유'를 묻는 편지를 보냈다. 여학생은 편지에 "여자들도 물건을 휴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썼다. 해당 유통업체 대변인은 이에 대한 검토를 약속했다.

캐롤라인 스티븐슨 런던 예술대학 문화·역사 연구 프로그램 디렉터는 "남녀의 의복에서 주머니는 상징적 의미가 크고 매우 논쟁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올해 초 열린 2025-26 가을/겨울 패션쇼에서는 업계가 주머니를 향후 몇 달내 유행할 트렌드로 주목하고 있다는 신호가 포착되었다. 패션쇼에서는 많은 모델들이 양손을 주머니에 깊숙이 넣은 자세로 런웨이를 걸었는데, 팔을 자유롭게 휘두르는 자세에 비해 더 큰 자신감이 느껴졌다. 시몬 로샤 쇼에는 배우 피오나 쇼가 검은색 새틴 소재 달걀 모양 드레스 주머니에 손을 넣은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프라다와 루이비통 또한 다양한 디자인의 주머니를 선보였다. 이러한 흐름이 패션 업계에서 의미 있는 변화로 남을지, 일시적인 유행으로 그칠지, 아니면 여성들의 일상복으로 확산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주머니의 역사
주머니는 오랫동안 여성복에서 필수 요소는 아니었다. 스티븐슨은 "16~17세기에는 여성들도 일종의 주머니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당시 여성들은 몸에 묶는 '타이온 주머니'이라는 주머니를 사용했는데, 치마 옆쪽에 난 구멍으로 손을 넣어 주머니 속 물건을 꺼냈다"고 말했다.
화려하게 장식하기도 했던 타이온 주머니에는 열쇠, 돈, 손수건, 바느질 도구는 물론 시계, 코담배갑, 향수병과 같은 귀중품도 보관했다.

스티븐슨에 따르면, "이러한 주머니는 자율성을 상징했다". "하지만 18세기 말~19세기 초에 리젠시 스타일이 생겨나고 옷이 훨씬 더 몸에 밀착되면서 주머니가 사라졌습니다." 그러자 주머니가 상징하던 자율성도 사라졌다. 스티븐슨은 "여성이 공공장소에 귀중품을 가지고 갈 수 없는 상황은 여성들을 더 취약하게 만들고 남성이나 하인들에게 의존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주머니에 넣을 수 있던 것(돈, 열쇠, 메모)은 당시에는 재산, 권력, 사생활처럼 여성들과는 무관하다고 여겨졌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을 휴대할 수 있는 주머니가 여성복에서 사라지자, 작은 가방을 들고 다니는 여성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티븐슨은 "하지만 가방을 들면 손을 제대로 쓸 수 없다 보니, 또 다른 약점이 되었다"고 말했다.
옷에 주머니가 없다는 점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 여성들에게도 답답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사안이 정치적 쟁점이 된 것은 20세기 초의 일이었다. 스티븐슨은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은 여성의 투표권뿐만 아니라 주머니도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당시의 풍자 만화들은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을 남성처럼 큰 주머니에 손을 깊게 찔러넣은 모습으로 그리며 조롱했다. "주머니가 독립과 자유에 대한 여성의 열망을 억누르는 상징적 수단이 되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주머니 불평등을 해결하려 했던 미국 패션 디자이너 클레어 맥카델의 전기를 쓴 작가, 엘리자베스 에비츠 디킨슨의 말이다.
책 '클레어 맥카델: 여성을 해방시킨 디자이너'에서 디킨슨은 맥카델이 여성의 몸뿐만 아니라 삶에 맞는 옷을 디자인해 현대 미국의 스타일을 개척했다고 설명한다. 맥카델은 분명 크게 성공한 기성복 디자이너이자, 자신의 브랜드를 만든 초기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디킨슨은 BBC에 "맥카델의 근본 신념은 옷은 아름답고 실용적이며 편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며 "그는 주머니가 단순히 물건을 넣는 공간 그 이상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맥카델은 옷의 심리학과, 사람의 손은 무언가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몸을 뒤로 젖힌 동작은 주도권을 쥐고 있는 듯하기도 하고 자연스러우면서도 멋이 납니다. 그래서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는 것은 일종의 선언의 가시화입니다."
맥카델이 여성복에 주머니를 단 최초의 20세기 디자이너는 아니었다. 코코 샤넬도 이미 자신의 고객을 위해 옷에 주머니를 디자인했고, 오드리 헵번, 마릴린 먼로, 재키 케네디 같은 스타들이 샤넬의 옷을 입었다. 하지만 맥카델은 이와 다른 고객층을 갖고 있었다. "맥카델의 가장 중요한 점은 고급 디자인과 대량 생산을 결합한 초창기 디자이너 중 한 명이었다는 것입니다."
디킨슨은 맥카델이 옷을 여성의 사상, 정체성, 욕망을 물리적으로 구현한 대상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맥카델은 여성의 의복 활용을 다각도로 고찰해 주머니를 만들어냈습니다. 맥카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인 것 같습니다. 그는 커리어 우먼이었고, 40대까지 독신이었으며, 아주 부자도 아니었습니다."

맥카델은 주머니에 대해 되풀이되는 비판(특히 실루엣을 망친다는 주장 등)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옷의 구조를 이해했고, 완벽하게 배치된 주머니로 조화를 이루어 냈습니다. 그가 만든 옷은 단순하면서도 우아하고, 기술적으로 매우 진보된 것이었습니다."
움직임의 자유
맥카델에게는 잡지 '하퍼스 바자'의 전설적인 편집장 다이애나 브릴랜드라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었다. 브릴랜드는 주머니에 대한 애정을 공개적으로 천명했고, 주머니를 주제로 한 특별판을 제안하기도 했다. 다만 브릴랜드는 잡지의 광고 수익 중 상당 부분이 핸드백에서 온다는 점을 신경 써야 했다.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요소다. 스티븐슨은 "패션 산업은 여성의 핸드백 사용을 바라기 때문에, 여성은 소지품을 의복과 완전히 분리된 별도의 가방에 넣어야 한다는 생각을 부추긴다"고 말했다.
훗날 브릴랜드는 맥카델에게 2차 세계대전 당시 여성들이 입을 만한 드레스를 디자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커다란 주머니가 달린 심플한 랩 드레스 "팝오버"가 탄생했다.
그러나 여성의 삶과 야망을 아우리는 패션을 만들려던 맥카델의 노력은 이내 새로운 스타에게 막혀버렸다. 전쟁 중에는 실용적인 옷이 필요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크리스찬 디올의 '뉴 룩'이 허리를 조이고 풍성한 스커트를 강조한 실루엣으로 패션을 주도했다. 환상이 실용성을 압도한 것이다. 1954년, 크리스찬 디올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남성복 주머니는 물건을 넣는 용도이고, 여성복 주머니는 장식용이다."
역설적으로 디올의 2025-26 가을/겨울 컬렉션(퇴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가 이끈 마지막 컬렉션)은 실용적 요소가 눈에 띄었다. 키우리는 쇼 노트에서 의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번 쇼에 선보인 실루엣은 현실에 확고히 뿌리를 내리고, 의류의 기능적 역할과 현대적 욕구에 부응하기 위한 역할을 모두 강조했다."
하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도 있다. 디올의 최초 여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치우리는 조너선 앤더슨으로 교체되었다. 샤넬, 베르사체, 셀린느, 알렉산더 맥퀸 등 많은 패션 하우스도 남성 디자이너가 이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머니는 여전히 우선순위를 지킬 수 있을까?

디킨슨은 "우리는 여성이 의류 디자인의 주류였던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옮겨왔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패션이 여성의 관점에서 멀어진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여성을 의복을 입는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자신의 생활에 맞는 옷을 입고 살아가는 자율적인 존재로서의 여성과는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스티븐슨도 옷의 우선순위는 실용성이 아니라는 점에 동의한다. 적어도 하이엔드 패션에서는 그럴 것이다. "패션 산업은 옷을 디자인을 할 때 여성의 자율성이나 독립성을 우선시하지 않습니다. 디자인은 결국 이상화된 여성의 실루엣으로 귀결됩니다."
하지만 요즘 럭셔리 패션계는 수익이 급감하면서 휘청거리고 있다. 어쩌면 여성이 무엇을 원하지는지 일방적으로 말하기보다는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가 온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하이스트리트 패션이나 패스트 패션 제조업체들은 최대한 제품을 저렴하게 생산하려 한다. 그러다보니 여분의 원단이나 (남성복에 주머니가 기본인 점을 고려하더라도) 복잡한 디자인 요소를 넣지 않으려 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나선 여성들도 있다. 줄리 시겔은 패션 업계의 답보 상태에 거듭 실망한 끝에, 2021년 의류 브랜드 '더 포켓 프로젝트'를 설립했다. 그는 BBC에 "내 불만은 주머니를 쉽게 달 수 있는 실루엣을 가진 옷에도 주머니가 없거나 아주 작은 주머니만 달린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커다란 주머니를 달 수 있는 여성복이 정말 많거든요. 변화를 원한다면 직접 나서서 큰 주머니가 달린, 내가 입고 싶은 드레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시겔은 한번 주머니 격차가 눈에 들어오자, 일상에서 그로 인한 영향을 계속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 환경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여성이 가방을 들고 회의실에 들어서면 마치 그 공간의 손님인 듯 보입니다. 반면 모든 소지품을 주머니에 넣고 들어오는 남성은 매우 편안해 보이죠. 그곳이 그의 영역인 것처럼요. 저도 멋진 핸드백을 좋아합니다. 많은 물건을 담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가방을 안 들고 다니는 것이 더 강력한 메시지가 낼 때가 있습니다."
그의 사업은 많은 제품이 품절될 정도로 큰 주목을 받았다. 다양한 디자인과 색상을 가진 제품이 추가로 만들어졌고, 많은 여성들은 그에게 주머니로 인한 불편함을 털어놓았다. "한 여성은 결혼할 때 웨딩용 점프수트에 주머니 좀 달아달라고 재단사에게 요청했는데, '적절하지 않다'며 거절당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어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