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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판 오징어 게임'...배우 김새론의 죽음이 보여주는 한국 연예계 문화

2025.02.20
배우 김새론
EPA
배우 김새론 씨의 죽음을 계기로 연예인에게도 재기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배우 김새론 씨의 자살로 보이는 사망 소식이 전해지며 한국 연예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높아지고 있다. 한국의 스타들은 엄청난 압박에 시달리며 엄격한 잣대로 평가받는다.

지난 16일 서울 소재 자택에서 24세의 나이로 숨진 채 발견된 김 씨는 2022년 음주 운전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후 부정적인 언론 보도 및 온라인상의 혐오에 시달려왔다.

경찰은 김씨의 사망과 관련한 세부 사항은 밝히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씁쓸하지만 김 씨를 죽음으로 몰아간 상황이 낯설지 않다고 지적했다. 사실 온라인상의 괴롭힘으로 인해 커리어가 위태로워진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연예인은 김 씨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 19일 발인식과 함께 김 씨가 영면에 든 가운데, 분석가들은 그의 죽음이 유의미한 변화를 불러일으키리라 낙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국 연예계는 현재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 연예계 팬은 약 2억2000만 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전체 인구의 4배에 달하는 규모다.

그러나 동시에 그 어두운 이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 교육부터 취업에 이르기까지 삶의 대부분 영역에서 과도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문화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은 선진국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로, 전반적인 자살률은 감소하고 있으나 20대의 자살률은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연예인에게는 더 가혹한 압박이 가해진다. 이들은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물론 자신들의 커리어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극성 '슈퍼 팬'들의 요구에 시달린다.

그렇기 때문에 사소한 실수로도 이들의 커리어는 끝이 날 수 있다. 사건 이후 김 씨의 인기는 2023년 넷플릭스 드라마 '사냥개들' 등 출연했던 프로그램에서 통편집당할 정도로 떨어졌다.

한편 한국의 김헌식 문화 평론가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연예인이 법적인 처벌을 받는 것만으로는 만족해하지 않는다. 그들은 끊임없는 비판의 대상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법을 위반한 적이 없음에도 인터넷상에서 오랫동안 괴롭힘을 당하다 결국 2019년 스스로 생을 마감한 K팝 아티스트 설리, 구하라를 예로 들었다.

설리는 K팝의 일반적인 틀에 맞지 않는 행동으로 인해 불쾌하다는 공격을 받았고, 구하라는 전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문제 삼은 공격의 대상이 됐다.

거대한 '오징어 게임'

김헌식 평론가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사이버 괴롭힘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이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유튜버들은 조회수를 얻고, 웹사이트들은 참여를 유도하고, 뉴스 매체는 트래픽을 얻는 구조입니다. 이번 김 씨의 죽음으로 이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는 "악성 댓글 작성 행위를 법적으로 더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새론 씨의 부친은 한 유튜버가 올린 논란이 되는 영상으로 생전 딸이 정신적으로 많이 괴로워했다며, 죽음에 이르게 한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보도해 김 씨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더욱 부추긴 것으로 알려진 일부 국내 언론 매체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시민단체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18일 "언론의 인격살인으로 인한 죽음의 행렬을 이젠 멈춰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예일대 의대의 나종호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잇따른 연예인 자살 사건에 대해 빚더미에 허덕이던 사람들이 거액의 상금을 놓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 한국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현실판이라고 표현했다.

나 교수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실수하거나 낙오된 사람을 버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나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흡사 거대한 '오징어 게임' 같다"면서 얼마나 많은 생명을 잃어야 숨 쉴 틈도 없이 파괴적 수치심을 부여하는 것을 멈출까"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음주 운전은 아주 큰 잘못이고 만약 처벌이 약하다면 법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만 "잘못을 했다고 해서 재기의 기회도 없이 사람을 사회에서 매장시키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는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BBC는 K팝 업계의 악명 높은 '슈퍼 팬'들이 어떻게 아이돌의 연애부터 업무 외 일상까지 사생활을 통제하려 드는지, 무언가 수틀리는 일이 생기면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지 보도한 바 있다.

김새론 씨가 2023년 4월 벌금 2000만원을 선고받은 음주운전 유죄 판결 이후 대중의 시선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공인이 동일한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야당 지도자 이재명 대표를 포함한 정치인들 또한 음주운전 전과가 있음에도 재기에 성공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대표는 현재 가장 유력한 대선 주자로 꼽히고 있다.

K팝 칼럼니스트인 제프 벤자민은 한국에서는 아티스트가 '아이돌(우상)' 이미지에 금이 가는 일을 저지른 후 재기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논란과 스캔들이 때때로 연예인의 명성에 "록스타 같은 위상을 더하는" 서방 세계의 연예계와는 대조적이라는 설명이다.

"할리우드에서도 물론 연예인이 음주 운전이나 약물 복용으로 체포되거나, 중범죄 혐의로 투옥된다고 환호하지는 않는다. 다만 반드시 커리어가 끝이 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 연예계는 스타들의 정신 건강 문제를 개선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나, 그 효과가 얼마나 큰지는 불분명하다.

벤자민은 이렇듯 무분별한 보도가 이어지는 원동력인 금전적 동기나 대중의 관심이 사라져야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때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 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추가 보도: 제이크 권(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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