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조사위원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서 집단학살 저질러'

유엔(UN) 조사위원회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집단학살(genocide)'을 자행했다고 밝혔다.
위원회가 지난 15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는 2023년 하마스와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스라엘 정부와 군이 국제법이 규정한 5가지 집단살해 행위 중 4가지를 저질렀다고 볼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판단했다.
여기에는 집단 구성원 살해, 구성원들에게 심각한 육체적·정신적 위해를 가하는 행위, 육체적 파멸을 의도한 생활 조건을 강제하는 행위, 집단 내 출생을 막는 행위 등이 포함된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발언, 이스라엘군의 행동 패턴 등을 집단학살의 의도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제시했다.
한편 이에 대해 이스라엘 외무부는 "왜곡되고 거짓된" 내용이라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아울러 이스라엘 외무부는 해당 위원회의 전문가 3명이 "하마스의 대리인"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보고서 내용은 "이미 철저히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으며, "다른 이들에 의해 세탁되고 반복된" 하마스의 "거짓 주장"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이어 "보고서 속 뻔한 거짓말과 달리, 하마스야말로 이스라엘에서 집단학살을 시도하고자 했다. 이들은 1200명을 살해하고, 여성을 강간하며, 가족들을 산채로 불태우고, 모든 유대인을 죽이겠다는 목표를 공개적으로 선언했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군 또한 "근거 없는" 내용이라고 일축하며 "이러한 조건에서 작전을 수행하면서 전장에서의 민간인 피해를 막고자 이렇게까지 노력한 나라도 없다"고 강조했다.
2023년 10월 7일 이스라엘 남부 지역을 노린 하마스의 전례 없는 공격으로 약1200명이 숨지고 251명이 인질로 잡혀가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서 군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마스가 운영하는 가자지구 내 보건부에 따르면 이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최소 6만4905명이 숨졌다.
가자지구 주민들은 대부분이 여러 차례 강제 이주를 겪었으며, 주택의 90% 이상이 파괴되거나 파손된 것으로 추정된다. 의료, 상하수도, 위생 및 보건 시스템은 붕괴했으며, UN이 지원하는 식량안보 전문가들은 가자시티에서 식량위기 최고 단계인 '기근'이 발생했다고 공식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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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된 팔레스타인 영토에 관한 독립 국제 조사위원회'는 국제인도주의법 및 인권법 위반 혐의 전부를 조사하고자 지난 2021년 UN 인권이사회(HRC)가 설립한 기관이다.
총 3명으로 구성된 전문가 패널의 의장은 전직 NU 인권최고대표이자, 르완다 대학살 국제형사재판소장을 지냈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나바네템 필라이가 맡고 있다. 나머지 두 전문가는 호주 출신 인권변호사 크리스 시도티와 인도 출신 주거·토지권 전문가 밀룬 코트하리이다.
과거 해당 위원회는 하마스와 다른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이 2023년 10월 7일에 전쟁범죄 및 국제법 중대한 위반 행위를 저질렀다고 밝힌 바 있다. 동시에 이스라엘 보안군 역시 가자지구에서 반인도적 범죄와 전쟁범죄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위원회는 이번에 공개한 72페이지 분량의 이번 보고서는 이번 "전쟁에 관해 현재까지 나온 가장 강력하고 권위 있는 UN의 조사 결과"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보고서가 공식적으로 UN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이 보고서는 이스라엘 당국과 군이 민족, 종족, 인종, 종교 집단에 대한 '집단학살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1948년)에서 규정한 5가지 집단학살 행위 중 4가지를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이번 경우에는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인 집단을 가리킨다.
- 집단 구성원 살해 행위: 보호 대상 시설에 대한 공격, 민간인 및 기타 보호 대상자에 대한 공격, 사망을 초래할 조건을 의도적으로 조성
- 구성원들에게 심각한 육체적·정신적 위해를 가하는 행위: 민간인과 보호 대상 시설에 대한 직접적 공격, 가혹한 구금 대우, 강제 이주, 환경 파괴
- 집단의 전부 또는 일부를 파괴할 의도의 생활 조건을 강제하는 행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필수적인 시설과 토지 파괴, 의료 서비스의 파괴 및 접근 차단, 강제 이주, 필수 구호품·물·전기·연료의 차단, 생식 폭력, 아동에게 영향을 미치는 특정 조건 조성
- 집단 내 출생을 막는 행위: 2023년 12월 가자지구 내 최대의 불임 치료 클리닉에 대한 공격으로 배아 약 4000개와 정자 및 미수정 난자 1000개가 파괴된 것으로 보고됨

한편 국제 협약상 '집단학살'의 법적 정의를 충족하려면 가해 세력이 표적이 된 집단을 전체 또는 일부 파괴할 구체적인 의도를 가지고 이러한 행위를 저질렀음이 입증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위원회는 이스라엘 지도부의 발언을 분석했다. 그 결과 이츠하크 헤르초그 대통령,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요아브 갈란트 전 국방장관이 "집단학살 자행을 선동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또한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당국과 보안군이 보여주는 행위 패턴으로부터 "합리적으로 도출할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집단학살의 의도"라고 지적했다.
위원회가 지적한 행위 패턴에는 중화기를 동원하여 전례 없는 수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의도적으로 살해하고 중상을 입힌 행위, 종교·문화·교육 시설에 대한 체계적이고 광범위한 공격,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주민을 굶주리게 한 행위가 포함된다.
이스라엘 정치 및 군사 지도부는 줄곧 가자지구 내 자국 군의 작전이 자위적 성격으로, 하마스와 기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를 무찌르고 자국 인질들을 석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또한 자국군은 국제법을 준수하며 작전을 수행하고 있으며, 민간인 피해를 줄이고자 가능한 모든 조치를 다 하고 있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필라이 위원장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미 2023년 10월 7일 초부터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가 배치되어 있고, 숨어 있고, 활동하는 모든 장소, 모든 그 사악한 도시를 우리는 폐허로 만들겠다'고 발언하며 '강력한 복수'를 가하겠다고 … 공언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해당 성명서에 네타냐후 총리가 사용한 '사악한 도시'라는 표현은 그가 가자(가자시티) 전체를 책임을 물어야 할 대상, 복수의 표적으로 삼았음을 암시합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우리는 어디서든 강력하게 작전을 펼칠 것이다. 지금 당장 (도시를) 떠나라'고 말했습니다."
갈란트 전 국방장관의 경우 2023년 10월 7일 이후 며칠 뒤, 이스라엘은 "인간이 아닌 동물과 싸우고 있다. 우리는 그에 맞게 행동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헤르초그 대통령의 발언에서는 하마스가 주도한 10월 7일 공격에 대해 "그곳의 민족 전체가 책임이 있다"는 표현을 지적했다.
필라이 위원장은 "모든 행위 사례를 수집하고, 사실에 기반하여 결과를 내리고, 또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데 … 2년이 걸렸다"면서 "오직 사실에만 의존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가 실제 의도를 갖고 행해졌을 때만 '집단학살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에 따라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이스라엘 정치 및 군 지도자의 행위는 곧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책임"이라며, 고로 이스라엘은 "집단학살 방지 실패, 집단학살 실행, 집단학살 처벌 실패"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집단학살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에 따라 다른 국가들도 가용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집단학살을 예방하고 처벌할 즉각적인 의무"가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공범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필라이 위원장은 "아직 특정 국가를 공범 또는 공모 세력으로 지목하지는 않았으나, 위원회는 현재 … 이를 작업 중이며, 결국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7월, 위원 3명은 전원 사임 의사를 밝혔다. 현재 83세인 필라이 위원장은 "나이와 건강 문제 및 기타 업무적 부담"을 사임 이유로 들었으며, 시도티 위원은 필라이 위원장의 사임이 "위원회를 재구성하기에 적절한 시기"라고 설명했다.
지난 16일 이스라엘 외무부는 위원회 교체를 반대하며,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수의 국제 및 이스라엘 인권 단체, 유엔 독립 전문가, 학자들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집단학살을 저질렀다고 비판하고 있다.
한편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이스라엘군이 집단학살을 저질렀다고 주장하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제기한 소송을 심리 중이다. 이스라엘은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으로 "편향된 허위 주장에 기반한 것"이라고 반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