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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하려던 남성 혀 깨물어 징역형' 최말자 씨, 61년 만에 재심서 무죄 선고

1일 전
최말자 씨
News1
한국 법학 교과서에서는 최말자 씨의 사건을 성폭력 중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은 전형적인 판례로 언급한다

성폭행을 시도하는 남성의 혀를 물어뜯었다는 이유로 수십 년 전 유죄 판결을 받은 최말자 씨가 재심 끝에 10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18세였던 최 씨(78)는 중상해 혐의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가해자였던 당시 21세의 남성은 이보다 가벼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최 씨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고자 수년간 노력한 끝에 결국 올해 7월 부산지법에서 재심 첫 공판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검찰은 최 씨에게 사과하며 이례적으로 무죄를 구형했다.

이번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이후 최 씨는 "오늘의 이 영광은 여러분들의 힘과 노력 덕분이다"라고 울먹이며 "나와 같은 운명을 가진 피해자들을 위해 앞장설 수밖에 없었고, 그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61년 만에 다시 나온 이번 판결은 재심으로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가 인정된 최초의 사례가 됐다.

최 씨와 지지자들의 모습
News1
현재 78세인 최 씨는 선고 이후에도 자신과 같은 피해자들을 위해 인권운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 씨는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십 대였던 자신의 운명이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바뀌게" 되었다고 말한다.

"주변에서는 (재심 청구가)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만류했다. 하지만 나는 이 사건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무죄 선고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최 씨는 지지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권력을 남용해 약자를 짓밟고 법을 악용한" 이들이 문제였다고 규탄했다.

최 씨의 사건은 한국 형법학 교과서에서 성폭력 중 법원이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못한 전형적인 사례로 언급된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가해자 남성은 경남 김해의 한 마을에서 최 씨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강제로 성폭행을 시도했다. 이에 최 씨는 상대방의 혀 약 1.5cm를 물어뜯은 후에야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남성은 이후 자신의 부상에 대해 계속 보상을 요구했으며, 한번은 칼을 들고 최 씨의 집에 침입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성폭력 판결 중 하나로 손꼽히는 해당 사건의 가해자인 이 남성은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 혐의만 적용받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성폭행 시도 죄로는 한 번도 기소되지 않았다.

반면 최 씨는 상대방에게 중상을 입힌 혐의로 더 무거운 형량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그의 행동이 정당방위의 "합리적 범위"를 벗어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최 씨는 수사 과정에서 6개월간 구금되었으며, 이후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던 2018년, 최 씨는 전 세계는 물론 한국에서도 확산된 '미투 운동'에 용기를 얻어 한국여성의전화를 찾아 상담을 받았고, 약 2년간 증거를 모아 2020년 부산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무죄 입증 과정은 험난하기만 했다. 부산지방법원과 부산고등법원은 정당방위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며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최 씨는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싸움을 이어갔다.

과거 '코리아 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최 씨는 "(다른 피해자들은) 홀로 고통을 떠안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마침내 지난해 12월, 대법원은 최 씨의 주장이 맞다고 볼 정황이 충분하다고 판단, 사건을 파기환송 했다.

최 씨와 지지자들의 모습
한국여성의전화

10일 부산지법 밖에서 선 최 씨와 지지자들은 모두 환하게 웃었다. 일부는 '최말자가 해냈다!'와 같은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최 씨의 변호를 맡은 김수정 변호사는 과거 유죄 판결에 대해 "성 편견과 사회적 인식에서 비롯된 그릇된 판단"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싸워온 최말자 씨의 노력 덕분에 오늘 검찰과 사법부는 그 오류를 바로잡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고 말했다.

아울러 최 씨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최 씨의 여정을 지원해 온 단체 '한국여성의전화'는 이번 판결이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정의 실현의 길을 열어주리라 평가했다.

이 단체의 송란희 공동대표는 "앞으로는 여성들의 방어 행위가 정당한 것으로 인정될 것이다. 이로 인해 부당한 고통을 겪는 여성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은 "적어도 피해자들에게 메시지를 던진다"면서 "지금 겪고 계시는 그 과정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부당할지라도 '당신의 목소리는 중요하다. 목소리를 내라'라는 메시지"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2018년 미투운동을 촉발한 서지현 전 검사도 BBC에 "61년 만의 재심이 한 개인을 향한 선고가 아닌, 성폭력과 여성혐오의 역사를 멈추자는 이 사회를 향한 단호한 반성이자 응답이기를,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또 다른 출발이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에서는 여성이 성폭행 가해자의 혀를 깨문 사건이 최소 2차례 있었다. 1988년 안동에서 1건, 2020년 부산에서 1건이 발생했는데, 두 사건 모두 법원은 정당방위였다는 여성들의 주장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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