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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구금 사태, '관행' 뒤 리스크에 놓인 직원들

1일 전
버스에 손을 대고 있는 남성들
Shutterstock

미국에서 한국 근로자 수백여 명이 비자 문제로 한꺼번에 구금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면서, 체포된 이들의 처우를 비롯해 근로자들의 해외 출장 문제 등과 관련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재웅 외교부 대변인은 9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한미 양국은 우리 국민 전원을 자진 출국 형태로 가장 빠른 시일 내 귀국시키기 위한 세부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오는 10일(현지시간) 전세기를 띄워 구금된 국민 300여 명을 데려온다는 계획이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이민세관단속국은 조지아주에 있는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300여 명을 포함한 475명을 체포·구금했다.

현지에 처남이 구금 중이라는 이한재 씨는 BBC에 "가족으로서는 추후 불이익보다는 지금 당장 빠른 석방이 절실하다"라면서 "(이후에는) 재입국 금지 등 불이익이 문제 될 수 있는데…이 모든 것이 협상 테이블에 올라가 있다고 알고 있어서, 잘 진행되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관행'에 가려진 리스크

이번 구금 사태로 일부 회사들이 근로자를 해외 출장 보낼 때 일종의 '관행'처럼 발급받은 비자로 허가된 범위 이상의 업무를 맡겨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정부가 10여 년 전부터 전문인력 대상 비자 쿼터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발급되지만 업무 범위가 매우 제한되는 B-1(단기상용) 비자나 단기 여행·단순 출장 목적인 ESTA(전자여행허가)를 활용해 업무를 해왔다는 것이다.

특히 해외에 법인이 없어 비자 발급이 더 까다로운 중·소규모 협력업체의 경우 이러한 사례가 더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번 체포 및 구금 인원 중 상당수는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 본사 직원이 아닌 협력업체 직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구금 사태에 연루된 한 국내 기업 근무자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는 비자 문제 해결에 미온적이었던 정부와 더불어 회사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회사가) ESTA나 B-1 비자의 현지 업무 제한성에 대한 리스크를 임직원에게 제대로 가이드하지 않았다"라며 "현지 설비 설치를 위해 (파견된) 하청 업체와 공동 대응하지 못한" 것도 구금 사태의 원인으로 손꼽았다.

그러면서 "(회사가) 강제 추방을 당하게 될 인원들에 대한 보상책을 마련해야 하고, 정부 대 정부 차원에서 대미 투자 합의를 했다면, 그에 상응해 민관 합동으로 제도적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한국 기업의 불법적 '관행'에 의한 것으로 섣불리 결론 내릴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비자에 따른 업무 범위 해석에 모호함이 남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 외교업무매뉴얼(FAM)에 따르면, B-1 비자 소지자는 미국 밖에서 제작 및 구매한 장비를 설치·작동·수리하거나 단기 교육을 진행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변호사인 이한재 씨는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채로 ICE(이민세관단속국)의 발표 내용과 소문만으로 상황에 대한 분석이 많이 이뤄지는 것 같아 유감"이라며 "특히 B-1비자를 받은 사람을 이민법 위반이라고 하려면 어떤 범위 외 활동을 했다는 것인지가 밝혀져야 하는데,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 씨는 구금된 처남이 B-1 비자를 소지 중이었다고 말했다.

"(미 이민당국이) 특정 공간에서 단시간에 400여 명을 한꺼번에 잡아들였는데, 현장에서 이들을 엄밀하게 구분하여 누가 어떤 활동을 하는 사람들인지 파악이 되었을지 의문입니다."

회사에 책임 물을 수 있나?

정부는 구금된 근로자들이 미국 입국 제한 등 추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아직 불확실성은 남는다.

그렇다면 만약 일반적으로 근로자들이 이러한 불이익을 당할 경우, 회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노동 전문 변호사이자 공인노무사인 유재원 씨는 "법에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 회사는 (근로자가) 어디에서 어떻게 근무할지에 대해서 근로 환경을 조성할 의무가 있다"라며 "회사가 (근로자를 파견할 때) 비자 문제는 선결적으로 해결하고 보내야 한다"라고 했다.

만약 회사가 불법적 요소가 있는 편법을 활용해 해외 파견 근로자들의 비자 문제를 처리했다면 이는 "(근로자의) 근로권을 침해한 행위"라는 것이다.

다만 비자로 인해 발생한 문제의 경우 해석상 애매한 부분이 많고, 외교적인 문제가 선행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근로자가 손해배상 청구를 하는 다른 사례들과 같은 선상에서 보긴 힘들다고 설명했다.

정봉수 노무사도 회사가 근로자에게 "정신적·신체적 위해"를 가한 사실이 명확하지 않은 이상 손해배상 청구를 하기는 힘들 것으로 봤다.

한편 노동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번 구금 과정의 비인권적 부분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날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인근에서는 노동·이주 인권단체들이 집회를 열어 미국 이민 당국의 비인권적 체포 방식을 비판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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