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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투자 확대와 한국 기업 취업비자 문제 '엇박자', 이대로 괜찮나

7시간 전
미국이민세관단속국
Getty Images
지난 4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의 불시 단속 대상이 된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한국인 300여명이 구금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지난 주말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에서 벌어진 한국인 대규모 구금 사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미 투자 확대' 기조와는 다소 어긋난 모습을 보였다.

지난 4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은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을 불시에 단속했고 한국인 300여명이 구금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번 단속 대상이 된 배터리 공장은 미국 내에서도 기대가 큰 사업이었다. 조지아주 정부 또한 이 공장에 대해 "지역 최대 경제 개발 프로젝트"라며 호응한 바 있다.

구금된 한국인들의 비자는 대부분 단기상용비자(B-1)거나 전자여행허가(ESTA)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이들이 발급받은 비자와 이들이 현지에서 한 활동이 맞지 않는다며 단속을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B-1 비자를 발급받는 경우 최대 6개월 간 비즈니스 회의나 계약, 직원교육, 시장 조사, 세미나 등을 할 수 있다. ESTA는 단기 체류 무비자로 주로 단순 출장에 활용된다.

이 두 종류 모두 현지에서의 취업은 금지된다. 미국에서 급여를 받는 현장에서 직접 노동을 하거나 시공 등을 하는 행위도 엄격히 금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대미 투자'를 위해서는 사실상 전문직 취업 비자 확대가 절실하다. 매년 추첨을 통해 전문직 취업 비자를 받는 한국인은 수년째 2000여명에 그치는 실정이다.

투자와 이민 문제 '엇박자'

체포되고 있는 배터리공장 한국인 근로자들
Shutterstock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한국인 근로자들이 체포되는 영상이 공개됐다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에서 발생한 체포 및 구금 영상이 공개되면서 일각에서는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동맹국에 대한 결례'라는 비판도 잇따랐다.

김태형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는 BBC에 "단순히 외교적 문제만으로는 볼 수 없겠지만, 굉장히 갑작스럽게, 예고 없이 진행됐고, 체포 및 구금 영상이 외부에 공개된 이 상황에서 동맹국에 대한 결례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지난 달 관세 협상을 통해서 (미국이) 한국 측에 받아낸 거액의 투자도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건 상당히 당혹스럽고 실망스러운 면이 있죠."

미국으로의 투자는 늘리되, 이민 문제에는 강경하게 대응해 온 트럼프의 정책이 결과적으로 엇박자를 냈다는 것이다.

다만 김재천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 측이 "범법을 저지른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배터리 공장에서 구금된 직원들 다수가 가지고 있던 비자가 사실 취업 활동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만약 현지에서 이에 해당하는 업무를 했다면 불법으로 일했다고 볼 수 있긴 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교수는 기업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ESTA나 B-1비자를 발급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발급받을 수 있는 취업 비자는?

미국 공항 내 세관 안내 표지판
Getty Images
특히 공사기일을 맞춰야하는 건설 현장에서는 발급이 오래 걸리고 개수 제한이 있는 E1, E2 등 비자가 용이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비이민 비자 중 취업 관련 행위를 허용하는 비자는 크게 네 종류(E, H, J, L)로 나뉜다.

E1과 E2는 각각 상사 주재원과 무역 혹은 투자사 직원을 대상으로 발급한다.

H 비자는 임시근로자로, H-1B는 전문직, H-2A는 농업 근로자, H-2B는 비농업 근로자, H-3은 직업 연수자가 발급받을 수 있다.

이 외에도 J 비자는 교환 방문자, L은 일반 주재원에 해당된다.

한국 기업이 숙련된 인력을 미국으로 파견하기 위해서는 미국 정부로부터 전문직 취업비자나 주재원 비자 등을 발급받아야 한다.

다만 이 경우, 발급에 소요되는 기간이 수개월로 긴 편이고, 발급 가능한 개수도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표적인 전문직 취업비자인 H-1B는 추첨 방식 쿼터제(2026년부터 추첨제 폐지 예정)에 따라 미국에서 연간 8만5000여명으로 발급 대상을 제한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매년 2000명 내외만 승인을 받고 있다. 게다가 발급 대상은 주로 IT, 공학 등의 분야에 집중되어있다.

임시적 비농업·비전문직 근로자를 위한 H-2B 비자 역시 연간 6만6000명으로 인원 제한을 두고 있다.

이같은 이유로 그동안 한국 기업들은 인력 운용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급한 대로 단기상용비자인 B-1이나 ESTA를 통해 현지로 인력을 파견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공사기일을 맞춰야 하는 건설 현장에서는 이 외의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 업계의 목소리다.

ESTA와 B-1 비자는 상업·산업 노동자들의 장비 및 기계의 설치·작동·보수 및 현지 직원 교육에 활용될 수는 있으나, 실제 건설 작업 수행은 불가하다. 또한 급여도 미국 내 사업체에서 지급할 수 없다.

그간 한국 기업뿐 아니라 다수의 해외 기업들이 미국 내에서 관행적으로 B-1이나 ESTA를 통해 인력을 파견해 왔다.

미국 정부 또한 이러한 현실을 묵인해왔으나 불법 이민자에 강경 대응하겠다는 트럼프 정부가 재집권하며 묵혀왔던 문제가 터진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이번에 구금된 이들 중 실제로 몇 명이 정말 '불법적인 취업 행위'를 했으며, 또 그 중 몇 명이 B-1 혹은 ESTA의 목적에 맞는 직원 교육 등의 활동만 했는지 등에 대해 미국 당국이 정확히 파악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아 의구심은 커지는 상황이다.

비자 문제, 어떻게 개선하나

조기중 주미대사관 총영사
EPA/Shutterstock
외교부는 조기중 주미대사관 총영사와 애틀랜타 총영사를 현장에 급파하고, 조기중 총영사를 반장으로 한 현장대책반을 설치해 대응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캐나다와 멕시코에 한해 학사 학위 이상 소지자를 대상으로 전문직 취업을 위한 무제한 비자를 쿼터 제한 없이 발급한다.

싱가포르와 칠레 또한 자유무역협정에 따라 전문직 비자인 H-1B1을 각각 연간 5400명, 1400명이, 호주는 E3 특별비자를 연간 1만500개 받고 있다.

이번 배터리공장 대거 구금 사태 발생 직후 한국 정부는 현장대책반을 가동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8일 "좋은 방향으로 E-4 비자와 (H-1B) 쿼터, 또는 두 개를 다 합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협상해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2012년부터 한국인 전문인력을 대상으로 별도 발급받을 수 있는 비자 쿼터인 E-4비자를 신설하는 '한국 동반자법(Partner with Korea Act)' 입법을 위해 미국 정부 및 의회를 대상으로 설득을 지속해 왔다.

E-4비자가 신설되면 미국 정부가 전문 교육과 기술을 보유한 한국 국적자에게 연간 최대 1만5000개의 전문직 취업비자를 발급할 수 있게 된다.

매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으나, 올해도 역시 한국계 영 김 하원의원과 캄라거-도브 하원의원을 통해 관련 법이 발의된 상태다.

또한 H-1B 비자의 한국인 쿼터를 배정받는 방향으로 협의할 수도 있다. 칠레와 싱가포르의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 8월 트럼프 정부가 한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대규모 투자' 약속을 받아낸만큼 H-1B 비자 쿼터 배정에 대해 협상해 볼 여지가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김태형 교수는 "이번을 계기로 협상이 된다면 좋겠지만, 현재 미국 행정부에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이 막강한 상황에서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이 자국 내 일자리 창출보다 이민 허용을 막는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면, 비자 협상은 아마 어렵겠죠. 하지만 트럼프 정부 내에서도 다른 시각을 가진 세력도 분명 있을 테니 지켜 봐야할 문제로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간 7일 한국인 구금 사태와 관련해 미국 내 배터리 산업 등에서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해당 분야에 능숙한 사람을 불러들여 일정기간 머물게 하고 도움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한국과 매우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전날 "구금된 한국인들이 불법체류자였고, 이민세관단속국은 제 역할을 한 것일 뿐"이라고 말한 것과는 사뭇 달라진 태도다.

김재천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 기업을 유치해 (미국의) 제조업을 다시 회생하게끔 해야 하는 어젠다가 있다"고 평가했다.

"결국 트럼프는 외국인들이 미국에 우르르 입국해 일을 하기를 원한다기 보다, 외국인들이 미국의 노동 인력을 훈련시켜 자국민들이 직접 일을 할 수 있게끔 하고자 하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그게 트럼프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훨씬 더 적합할 것이고요."

김 교수는 또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대규모 구금에 대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지만 한미 관계를 망가뜨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한국인 구금 사태에 대해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7일 "이번 이민 단속이 더 많은 아시아계 노동자들로 확산되거나, 외국계 기업의 공장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며 "일본을 포함해 미국에 거점을 둔 외국계 기업들의 경계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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