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5년 만에 4번째 총리 선출 예정...차기 총리의 과제는?
두 차례 총선에서 참패한 일본의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취임 1년도 채 되지 않아 지난 7일(현지시간) 결국 사임을 발표했다.
이번 사임은 여당인 자유민주당(자민당) 내 반대파가 조기 총재 선거 찬반 투표를 단행하기 불과 하루 전에 나온 결정이다.
이로써 일본 여당은 5년 만에 3번째 대표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그 사이 총선도 2차례 치렀다. 선출된 총리들은 모두 임기를 마치지 못했다.
차기 총리는 불안정한 미-일 관계를 조율하고, 고물가 및 생활비 위기에 대응하며, 양원에서 여당이 과반을 상실한 상태에서 내각을 운영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될 전망이다.
이시바 총리의 사임 이유는?

지난 2020년, 건강 문제로 아베 신조 당시 총리가 갑작스럽게 사임하자 스가 요시히데 당시 관방장관이 뒤를 이어 총리에 올랐다.
그러나 취임 1년 만에 지지율이 급락하며 스가 총리는 물러났고, 2021년 말 열린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한 기시다 후미오가 후임 총리로 취임하게 된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자민당을 둘러싼 비리 스캔들, 물가 상승, 엔화 약세 등으로 지지율이 곤두박질친 것이다.
그렇게 2024년, 기시다 총리가 물러나고 이시바 총리가 취임했다. 이시바 총리는 "새 정부가 가능한 한 빨리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며 선출된 지 불과 며칠 만에 중의원을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치르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리고 국민들은 실제로 그를 심판했다.
많은 유권자들은 자민당 고위 인사들이 연루된 부패 스캔들에 여전히 분노하는 한편 고물가와 생활비 위기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자민당은 10년 만에 최악의 선거 성적을 기록하며 중의원(하원)에서 단독 과반 지위를 상실했다. 일본에서 중의원은 참의원보다 더 강력한 권한을 지닌다.
그리고 올해 초 치러진 참의원(상원) 선거에서도 또다시 패배해 과반 지위를 상실했다.
선거 참패 이후에도 이시바 총리는 자신이 자민당의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수습해야 하며, 미국과의 무역 협상을 끝내야 한다며 사퇴 요구를 거부했다.
그러나 강제 퇴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당내 조기 총재 선거가 실시되기 하루 전인 지난 7일, 결국 사임 의사를 밝혔다.
쓰쿠바 대학의 특임교수이자 고 아베 전 총리의 특별보좌관을 지낸 다니구치 도모히코는 "당내 총리 책임론이 커지고 있었다 … (그리고) 사실 이렇게 될 조짐은 이미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래서 이시바 총리는 버티다가 공개적인 굴욕을 당하기보다는 스스로 물러서는 길을 선택했다"고 덧붙였다.
차기 총리 후보는 누구?

현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다음 달 초 자민당은 총재 선거를 치를 예정이다. 보통 집권 여당의 총재가 총리직에 오른다.
공식적으로 출마 선언을 한 인물은 없으나, 현재 3명이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의 아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당선 시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 모두 2024년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와 맞붙은 경험이 있는데, 아베 전 총리의 측근으로 평가되는 다카이치는 당시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어진 결선 투표에서 결국 이시바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다카이치(64)는 동성애 등의 사회적 이슈에 반대하는 강경 보수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 관련 이슈에 대해서도 여성의 전통적 역할을 강조하는 자민당 방침과 일치하는 의견을 보인다.
고이즈미(44)는 2001~2006년 총리로 재임할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아들이다. 비교적 젊은 그는 미디어 친화적이며, 온라인에 고양이 사진을 올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야시(64)는 관방장관이라는 요직을 맡아 정부의 최고 대변인 역할을 맡고 있다
다니구치 교수는 "후보군이 극단적이다. 한 명은 극도로 보수적이고, 한 명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정치인"이라면서 "그리고 하야시 관방장관은 그리 화려하지는 않지만, 경험을 갖추었으며 검증된 인물"이라고 분석했다.
그 외 거론되는 인물로는 모테기 도시미쓰 전 외무대신,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담당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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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총리 앞에 놓인 과제는?
차기 총리는 약화된 여당을 결집하고, 이탈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다시 돌려야 한다는 과제를 떠안게 될 것이다.
최근 참의원 선거에서 국수주의 성향의 참정당이 최대 승자 중 하나로 부상하는 등 현재 일본 정치 지형은 점점 더 극우 성향으로 기울고 있다.
참정당 지지자 다수가 자민당에서 이탈한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이다.
과거 칸다외어대학의 제프리 홀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 지지자 다수가 현재의 이시바 총리는 충분히 보수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시바 총리의 경우 역사 인식에서 민족주의적 시각이 부족하고, 아베 전 총리만큼의 강경한 반중국적인 태도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참정당 같은 정당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다니구치 교수는 "이러한 정당들이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는 사실을 통해 평소라면 자민당을 지지했을 사람들이 얼마나 불만이 크면 아직 제대로 증명되지도 않은 신생 정당으로 옮겨가게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차기 자민당 지도자의 가장 큰 과제는 이러한 유권자들의 마음을 되돌리는 것입니다."

또한 일본에서는 엔화 약세 속 생활비 상승 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템플대학교 일본 캠퍼스의 제임스 브라운 교수는 "일본인들은 인플레이션에 익숙하지 않아 가격이 약간만 올라도 충격을 받는다. 일반적인 유권자들에게 일본은 점점 더 가난한 나라로 느껴진다. 가격은 오르는데 월급은 오르지 않고, 엔화도 너무 약해 해외로 나가면 모든 게 비싸게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차기 총리는 이웃 국가들과의 복잡한 관계도 잘 조율해야 한다.
지난주 초 중국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을 기념하는 일명 '전승절' 기념 열병식을 거행했는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여러 세계 정상이 참석했다.
이에 대해 브라운 교수는 "이들은 핵무기 국가를 포함해 위협적인 이웃 3국이다. (게다가 이 자리는) 일본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는 행사였다"고 설명했다.
한국 이화여자대학교의 레이프 에릭 이즐리 교수는 "다카이치처럼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지도자가 탄생하든, 고이즈미처럼 차세대 지향적인 지도자가 탄생하든 간에 … 시진핑, 푸틴, 김정은이 베이징에서 이토록 노골적으로 연대를 과시한 이후 일본, 미국, 한국 간 협력 지속 여부가 주목된다"고 평가했다.
오랜 동맹국이었던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에도 먹구름이 드리울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 초 주일미군 비용 증액을 요구하고 나섰다.
브라운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은 다소 절망감을 느끼고 있다"면서 "지도자가 바뀐다고 해서 큰 변화가 있으리라 기대하진 않는다. 많은 이들에게는 결국 자민당 지도자만 바뀌는 것일 뿐 결국 달라지는 건 없는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일본의 총리가 자주 바뀌는 이유는?
일본에서는 지난 20년간 10명이 넘는 총리가 등장했다.
브라운 교수는 "일당 민주주의" 구조를 그 원인 중 하나로 지적했다.
"정부를 보면 실질적으로 자민당만 존재해왔기에 일본 정치계의 주요 경쟁은 정당 간이 아닌 당 내부에서 벌어집니다."
"따라서 자민당 내에서는 각 파벌 간 치열한 다툼이 벌어집니다. 모든 파벌이 자신들 쪽에서 총재가 탄생하길 바라니까요."
"그래서 누군가 총리로 선출되더라도 취임 직후부터 그를 끌어내리고자 수십 명의 당내 인사들이 움직입니다."
이어 브라운 교수는 총리 당선은 사실상 "독배"를 마시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이시바 총리의 후임은 누구일지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과연 차기 지도자는 단명 총리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