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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관세 혼란, 아시아 기업에 어떤 영향 있을까

2일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아시아 공급망에 의존하는 반도체 기업 글로벌파운드리스 등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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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아시아 공급망에 의존하는 반도체 기업 글로벌파운드리스 등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탄 유콩은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업체로 손꼽히는 글로벌파운드리스에서 일한다. 그는 자신의 회사를 맞춤 양복점에 비유한다. 고객의 요구에 맞춰 반도체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탄은 싱가포르 내 운영을 담당한다. 그는 "우리가 원단부터 소매 단추까지 모든 것을 제공한다.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을 듣고 그에 맞춰 제작한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글로벌파운드리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관세 정책을 고려해 자사의 미래 전략도 맞춤형으로 조정하고 있다.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해방의 날'을 선언하며 높은 관세를 책정했다. 시행 유예 기간 90일이 7월 9일 종료된다. 이를 앞두고 세계 각국 및 기업들이 미국을 달래기 위한 조치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다음 상황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4일 트럼프 대통령은 곧 미국 정부가 8월 1일부터 적용될 높은 관세의 세부 사항을 담아 서한을 발송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는 며칠 내에 최대 12개국에 서한이 발송될 것이며, 관세율은 "60% 또는 70%에서 10~20%"까지 다양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대상 국가는 명시하지 않았다.

반도체는 현재까지 관세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 관세 부과를 수차례 예고한 바 있다. 이에 기업들은 장기 계획 수립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난주 블룸버그는 미국이 인공지능(AI) 반도체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을 단속하기 위해 말레이시아·태국으로의 반도체 수출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미 상무부는 BBC의 의견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탄은 "한주 또는 하루 건너 정책을 뒤집으면 기업 입장에서 장기 계획을 수립하기가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파운드리스는 AMD·브로드컴·퀄컴 등 세계 주요 반도체 업체와 계약을 맺고 위탁생산을 담당한다.

공장은 전 세계에 위치하며, 인도부터 한국까지 아시아 지역에도 다수 세워졌다. 최근에는 AI 하드웨어의 수요 급증에 따라 투자 규모를 160억 달러(약 21조9000억원)로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또한, 글로벌 생산 기반을 보호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와 협력해 반도체 제조 및 공급망 일부를 미국으로 이전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반도체, 섬유, 자동차 부품 등 공급망이 아시아와 밀접하게 연결된 제조사들은 혼란스러운 시장에서 주문을 소화하고 비용을 줄이며 새로운 고객을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의 아파르나 바라드와즈는 "기업들이 변동성을 고려해 재고와 납기를 늘리는 방향으로 완충 전략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 변화가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도 있지만, 국가별 경쟁력과 시장점유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제는 불확실성이 새로운 표준입니다."

승자와 패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 관세 변경을 예고했다. 이 중에서도 아시아 경제권에 특히 높은 관세율을 부과했다. 오랜 동맹국인 일본은 24%, 한국은 25%, 주요 교역국인 베트남은 무려 46%에 달했다.

이후 곧바로 대부분 국가의 관세를 90일간 10%로 낮춘다는 유예 기간에 돌입했지만, 당장 9일 부터 더 높은 관세율이 다시 적용될 수도 있다.

트럼프는 ‘미국 해방의 날’ 관세 발표 직후 90일 내에 90건의 협상을 마무리하겠다고 공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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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미국 해방의 날' 관세 발표 직후 90일 내에 90건의 협상을 마무리하겠다고 공언했다

말레이시아 총리는 이 관세가 섬유, 가구, 고무, 플라스틱 등 자국 산업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싱가포르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지만 10% 관세 대상에 포함됐다. 싱가포르 총리는 "친구에게 할 행동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2024년 기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7.2%를 차지한 만큼, 관세로 인한 비용 증가가 장기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까지 미국과의 협상을 마무리한 동남아시아 국가는 베트남이 유일하다. 베트남산 수입품에는 20%의 관세가 부과되지만, 미국산 수출품에는 관세가 없다.

일본과 한국은 유예 기간 동안 무역 협상을 진행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종료 시한이 가까워지자 일본에 최대 35%의 더 높은 관세를 예고했다.

이로써 일본 자동차 제조사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마쓰다 등은 공급업체를 바꾸고 사업 구조를 조정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절차가 복잡하기 때문에 '생존 모드'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호주는 미국의 주요 안보 동맹국이자 미국 제품 수입량이 자국 수출량보다 많음에도 불구하고 관세 대상에 포함됐다. 이에, "호주에 대한 관세율이 0이어야 한다"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태국은 미국 제품 수입을 늘리고 미국 수입품에 대한 세율을 낮추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반면, 캄보디아 같은 저소득 국가는 협상력이 부족해 49%라는 높은 관세율을 받고도 미국산 제품을 추가 구매할 여력이 없다.

경영대학원 인시아드(INSEAD)의 경제·정치학 교수 푸샨 더트는 "아시아 경제는 중국과 미국 모두에 의존한다"며 "글로벌 공급망과 무역 패턴이 변하면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푸샨 더트 교수는 인구가 많은 인도처럼 내수 규모가 큰 국가는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겠지만, 싱가포르·베트남·중국처럼 수출에 더 의존하는 국가는 타격이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로운 세계 질서가 구축될까?

트럼프 대통령의 첫 당선 이후,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반도체 제조·데이터센터 등 성장 산업에 투자를 단행했다.

이른바 '프렌드쇼어링' 전략의 일환으로, 미국과 우호적 관계에 있는 국가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것이었다. 또 '차이나 플러스 원(+1)' 전략의 수혜를 입기도 했다. 중국·대만 이외의 동남아 지역으로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전략이었다.

이 모든 전략은 결국 미국 시장을 계속 공략하기 위한 조치였다. 바라드와즈는 미국이 "많은 아시아 기업에게 매우 중요한 시장"이라며 "관세 문제가 어떻게 되든, 미국은 계속해서 아시아 기업의 중요한 고객으로 남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세계 최대 경제국이며 역동적인 소비자 기반을 보유합니다."

나이키는 관세 조치로 인해 일부 제품 가격을 인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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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는 관세 조치로 인해 일부 제품 가격을 인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의 관세로 인해 피해를 입는 것은 동남아시아 생산업체만이 아니다. 수십 년간 해당 지역에서 운영해 온 미국 기업들도 비용이 증가한다.

특히 의류·신발 업계의 타격이 예상된다. 나이키와 같은 브랜드는 오랫동안 베트남·인도네시아 등지에 제조를 위탁해 왔다.

일부 미국 브랜드는 관세로 인해 수입품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그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투자도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등에서 필리핀·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처럼 관세가 낮은 국가로 이동할 수 있다고 본다.

일부 기업은 새로운 수출 시장을 모색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중동, 중남미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글로벌파운드리스의 탄은 "우리는 더 이상 세계화를 강조하지 않는다. 이제는 지역화를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을 찾아야 합니다. 공급이 지속될 것 같은 곳이죠. 그리고 예전처럼 저렴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시아의 무역 동맹이 재편되는 가운데, 미국은 점점 더 신뢰하기 어려운 파트너로 여겨지고 있다.

인시아드의 더트 교수는 "이런 상황은 중국이 세계 무역 질서의 수호자로 부상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를 창출했다"고 말한다.

현재까지 미국과 합의한 곳은 영국·중국·베트남뿐이다. 더 많은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지, 아시아 국가와 기업들은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할 수 있다.

바라드와즈는 "미국과 다른 국가들이 보호주의를 강화하는 동안 아시아는 친기업 기조의 정부가 무역 개방을 확대하며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관세는 두 가지 거시적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과 서방 간 무역은 둔화하고, 중국과 아시아 신흥국 간 무역은 확대되는 방향이다"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정책들이 초래하는 무역 혼란은 세계 경제 질서를 흔들 수 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반드시 미국이 승자일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더트 교수는 "왕에게 절하고 제 갈 길 간다"라는 속담을 인용해, 겉으로는 순응하되 자율적으로 길을 모색하는 현 상황을 요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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