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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부터 옷 색깔까지...한국에서 '정치적 중립'이란?

8시간 전
스타벅스 앞을 걸어가는 남성
SeongJoon Cho/Bloomberg via Getty Images

내 이름이 대선 후보와 이름이 같다면? 선거가 끝날 때까지 스타벅스에서 바리스타에게 이름을 불러달라고 요청할 수 없다.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중립'이 강조되는 한국 사회의 또다른 모습으로도 보여진다.

한국 스타벅스는 고객이 앱을 통해 자신의 닉네임을 설정할 수 있는 '콜 마이 네임(Call My Name)'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음료가 준비되면 직원이 번호 대신 고객의 닉네임을 불러주는 서비스다. 하지만 다음달 3일 선거가 끝날 때까지 이재명, 김문수, 이준석 등 대선 후보의 이름을 닉네임으로 설정할 수 없다.

이번 결정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부터 탄핵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갈등이 점점 심화하는 가운데 내려졌다. 계엄 사태 이후 정치가 많은 사회적 관심을 받으면서, 일상적으로 방문하는 카페에서도 '윤석열 체포', '간첩 이재명' 등 정치적 성향이 짙은 닉네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스타벅스 닉네임이 떠 있는 전광판
이선욱/BBC코리아
스타벅스에서 음료를 주문하면 닉네임이 전광판에 등록된다

스타벅스는 이전부터 욕설이나 음란·혐오성 표현을 비롯해 고객과 직원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표현이 담긴 닉네임 사용을 제한해왔다.

스타벅스는 19대 대선 때부터 일부 대선 후보의 이름 사용을 차단해 왔지만, 윤 전 대통령의 이름에 더해 대선에 출마하는 모든 후보의 이름 사용을 금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파악된다.

스타벅스 아시아 태평양 지역 홍보 책임자인 써린 탄은 BBC에 "우리는 파트너(직원)나 고객이 오해할 수 있는 특정 표현을 차단하기도 한다"라며 "선거 기간에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지지 또는 반대 메시지를 담은 후보의 이름"을 막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직원들은 정치인 이름을 입에 올릴 필요가 없고, 고객들도 조용히 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가 불필요하거나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선 후보와 동명이인이면 어떻게 하나요?" 대구에 거주하는 장혜미(33) 씨는 BBC에 조치가 불필요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사람들이 너무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요."

인터뷰 참여 중인 지석빈 씨
이선욱/BBC코리아
지석빈 씨는 탄핵 사건 이후 정치적 의견을 남들 앞에서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평소 카페를 자주 이용한다는 파주 시민 지석빈(27) 씨는 해당 조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며 "기업이 굳이 너무 사사로이 신경을 쓰는 것 같다"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최근 들어 남들에게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게 꺼려진다며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회사의 결정 배경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이번 (윤 전 대통령) 탄핵 사건 이후로 솔직히 (내 정치적 의견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아요. 이념 차이가 많이 심해진 것 같아요. 생각 차이가 커져서 논쟁이 되니까…"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24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8명 정도가 다양한 사회갈등 중 '보수와 진보' 간 갈등을 가장 심각한 유형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앞서 탄핵 정국에서 여러 전문가들도 BBC에 정치·사회적 분열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특히 기업이나 대중 노출이 많은 연예인 등 공인의 경우 정치적 의견이 분열된 상황에서 한쪽의 편을 드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반대편 진영을 지지하는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사례가 많았다. 결국 정치에 관해서는 침묵하는 것이 그나마 '안전한 선택'이 되는 것이다.

국내 주요 검색 포털인 네이버도 이번 선거 운동 기간 동안 후보자 이름에 대한 자동 완성 및 연관 검색 기능을 제한하고 있다.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들은 선거 당일에 어떤 색의 옷을 입는지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다. 한국에서 파란색과 빨간색이 각각 진보와 보수를 상징하는 색이 된 만큼, 야구 모자나 넥타이 같은 작은 패션 아이템의 색깔도 관심의 대상이다.

지난해 가수 신지는 총선을 하루 앞두고 인스타그램에 운동을 마친 자신의 모습을 흑백 사진으로 올리며 "오늘 운동복 색깔이…웃프지만(웃기면서도 슬프지만) 흑백 처리"라고 썼다. "경험에 의한 논란 차단"이라는 해시태그도 덧붙였다.

배우 고준희가 검은 옷을 입고 투표소를 방문한 사진
NEWS1
배우 고준희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일에 투표소를 방문했다

K팝 스타 및 배우들과 10년 넘게 작업한 경력이 있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메이(가명)는 스타일 팀은 "선거 기간에 정당의 색을 무조건 피하려고 한다"라면서 주로 흰색, 검은색, 회색과 같은 무채색을 선택한다고 BBC에 말했다.

하지만 워낙 바쁜 스케줄 때문에 스타일리스트들이나 스타 본인이 선거 기간이라는 점을 잊어 종종 논란이 될 때도 있다고 했다.

메이는 "(연예인이) 습관적으로 손가락으로 브이(V)를 했다가 '아차'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했다. 검지와 중지로 만든 브이 모양이 숫자 2, 즉 기호 2번을 연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이러한 경향이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연예인의 정치적 성향이 드러나면)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활동 자체가 힘들다거나 이런 단계까지 가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선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다양한 얘기를 하고, 서로 입장의 차이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관용이 생기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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