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 체니 전 부통령 별세 … 조지 W 부시, '국가적 손실'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이 지난 4일(현지시간) 별세했다. 백악관에서 임기를 함께 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국가적 손실이자 친구들의 슬픔"이라며 애도했다.
유가족은 체니 전 부통령이 4일 밤 폐렴과 심장, 혈관 질환 합병증으로 8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2001~20009년 부시 행정부 당시 부통령을 지내며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통령 중 하나로 손꼽히는 그는 '테러와의 전쟁'의 핵심 설계자이자, 2003년 이라크 침공의 초기 지지자로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물이다.
부시 전 대통령은 "역사는 그를 동시대 최고의 공직자 중 하나로 기억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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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체니 전 부통령은 "맡은 모든 일에 진실되고 뛰어났으며, 진지한 사명감을 지진 애국자"였다고 기억했다.
"저는 그의 정직하고 솔직담백한 조언을 신뢰했으며, 그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굳게 믿고, 미국인들의 자유와 안보를 최우선으로 두던 인물이었습니다."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콘돌리자 라이스는 "그의 진실성과 애국심"을 존경한다고 추모했다. 이어 X를 통해 "그는 내게 공직의 의미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 준 멘토"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출신으로 부시 대통령의 전임자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비록 체니와는 종종 의견이 엇갈렸으나, 나는 그의 조국에 대한 헌신과 굳건한 책임감을 늘 존경했다"며 애도를 표했다.
체니는 공화당의 오랜 원로 정치인이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집권 이후 당에 대한 신랄한 비판자로 변신했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체니 별세와 관련하여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으나, 백악관은 대통령이 이 소식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성경의 가르침은 분명하다. 영광(존경)을 돌릴 만한 곳에는 영광을 돌려야 한다"면서 "정치적으로 비록 이견이 있었더라도 그가 국가를 위해 보여준 희생과 봉사에는 마땅히 존경을 돌려야 한다"며 추모했다.
별세 소식이 전해진 직후인 4일 아침, 백악관은 조기를 게양했다.
유가족은 별세 소식을 전하며 고인은 "자식과 손주들에게 애국심과 더불어 용기와 명예와 사랑과 친절, 낚시를 실천하는 삶을 살도록 가르친 위대하고 좋은 인물"이었다고 밝혔다.
한편 체니는 특히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이어진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에서 맡은 역할로 인해 여전히 논란이 있는 정치인이다.
이라크 출신 작가 시난 안툰은 체니는 이라크에 "혼란과 테러리즘"이라는 유산을 남겼다고 비난했다. 그는 BBC '뉴스아워'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세상이었다면 체니는 분명히 전쟁 범죄자로 재판받고 있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라크 파병 미군 출신인 크리스토퍼 골드스미스 역시 BBC에 "대다수 사람들은 딕 체니를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거대한 문제를 일으킨 인물로 여긴다"고 했다.
리처드 '딕' 체니는 1941년 미국 중부 네브래스카주 링컨에서 태어났다. 장학금을 받고 명문 예일대학교에 진학했으나 졸업하지는 못했다. 이후 와이오밍 대학교에 진학하여 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8년, 위스콘신주를 대표하는 공화당 출신 젊은 의원 윌리엄 스타이거를 보좌하며 처음으로 정계에 발을 들였다.
34세의 젊은 나이였던 1975년에는 제럴드 포드 당시 대통령의 비서실장직을 맡았으며, 이후 10년간 연방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
조지 H.W. 부시(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는 국방장관으로 재직하며 미군 주도 연합군이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몰아낸 1990~1991년 걸프전을 지휘했다.
2001년 조지 W. 부시(아들 부시) 행정부에서 부통령으로 취임하여 대부분의 역대 부통령보다 정책 결정에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에 따라 미국 역사상 가장 인상 깊으면서도 동시에 가장 논란이 많은 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아들 부시 행정부 시절, 그는 전통적으로 권한이 거의 없는 형식적인 자리였던 부통령직을 사실상의 '부 대통령'직으로 바꾸어놓았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외교 정책과 국가 안보를 전반적으로 주도했으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군사 행동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체니는 사담 후세인 정권이 소위 '대량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군사 작전 중 그러한 무기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아울러 9·11 테러의 배후임을 자처하는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테러 조직인 '알카에다'와 이라크 간 연관성을 거듭 주장하며, 이들은 미군의 "완전한 분노"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표현했다.
체니의 이러한 역할은 그가 남긴 정치적 유산에도 중대한 영향을 남겼다. 미국은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고, 막대한 비용을 치른 끝에 수년이 지나서야 이라크에서 발을 뺄 수 있었다.
이후 그의 정치 인생은 2018년 개봉한 영화 '바이스(Vice)'의 주요 소재로 다루어졌는데, 배우 크리스찬 베일이 체니 역을 맡아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체니는 평생 수많은 심장 문제를 앓았다.
불과 37세였던 1978년, 첫 번째 심장마비가 찾아왔다. 당시 체니는 하원의원 선거 운동 중으로, 하루에 담배를 3갑씩 피웠다고 한다.
2010년에는 "심각해지는 울혈성 심부전"을 치료하고자 소형 심장 펌프 이식 수술을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미 5차례 심장마비를 겪은 상태였다. 그로부터 2년 뒤, 체니는 결국 심장 이식 수술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내 린, 딸 리즈와 메리 체니, 그리고 손주 7명이 있다.
수십 년간 공화당 출신 대통령을 위해 일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는 격렬한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2016년만 해도 그를 지지했으나, 체니는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의혹과 트럼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대한 무심한 태도에 끔찍해 했다.
체니는 공화당 내 '트럼프는 절대 안 된다' 측의 대표적인 인물로 부상한 맏딸 리즈를 공개적으로 지지했으며, 2020년 대선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트럼프의 태도도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해 치러진 미국 대선을 2달 앞두고는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후보에게 투표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며 주목받기도 했다.
그는 "트럼프보다 우리 공화국에 더 큰 위협이 된 인물도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러한 체니를 "퇴물 RINO"라고 비난했다. '이름뿐인 공화당원(Republican In Name Only)"이라는 뜻이다.
체니의 사망 소식에 해리스 전 부통령은 "그가 별세함으로써 우리 나라는 진심으로 사랑한 조국을 위해 생애 내내 무척 헌신했던 인물을 잃었다"고 추모했다.
말년에 체니는 트럼프의 색채로 재편된 공화당 내에서 사실상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트럼프를 비난하고 해리스를 지지한 그의 말년 행보는 수십 년 전 그를 맹렬히 비난했던 진보 진영으로부터 오히려 찬사를 이끌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