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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선거: 전통적으로 여성이 힘을 발휘했던 멕시코 남부 테우안테펙 지역

2024.06.02
사포텍 여성
Getty images
전통적인 사포텍 여성복은 예술가 프리다 칼로의 그림에 영감을 줬다. 프리다 칼로는 20세기 여성의 권익 신장을 대변하는 상징적 인물이다

멕시코의 첫 여성 대통령 당선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마초” 문화로 널리 알려진 멕시코에서는 기념비적 사건이다. 멕시코의 페미사이드(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하는 것) 비율은 세계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할 때, 여성이 멕시코의 수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국제적으로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집권여당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후보와 야당의 소치틀 갈베스 후보가 6월 2일 선거를 앞두고 막판 유세를 펼치고 있다.

그러나 멕시코 남부 테우안테펙 지역의 여성들에게는, 여성이 국가 원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다지 “혁명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테우안테펙 지역 여성들의 활동은 멕시코 안에서 “예외적”으로 여겨져왔다.

이들은 예술가와 지식인에게 영감을 주고 수십 년 동안 멕시코 여성의 당당한 비전을 그려왔다.

다이애나 만조
BBC
다이애나 만조는 신문을 발행해 테우안테펙 지역의 주요 소식을 전한다

‘여성의 도시’

그리셀다 마르티네즈는 전형적인 사포텍족 사람이다. 사포텍족은 테우안테펙 지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졌다. 마르티네즈는 자신을 강한 전사로 묘사하고, 용감하고 독립적이며 힘을 가진 여성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제 여성이 멕시코를 통치할 때다. 여성 대통령이 국가를 위해 ‘멋진’ 일을 해낼지 지켜보자”고 말했다.

남부 오악사카 주와 베라크루즈 주에 위치한 테우안테펙 지역은 “이스트모”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이스트모는 멕시코에서 대륙의 폭이 가장 좁아지는 지역이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가르는 폭 200km의 지역에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다.

그 덕분에 각종 흐름의 요충지가 됐고, 수세기 동안 활발한 문화 교류가 이뤄졌다.

이스트모 지도
BBC

이스트모 지역의 후치탄 데 사라고사는 “여성의 도시”로 유명하다.

이 도시에 형성된 주요 시장은 여성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이곳에서 많은 여성들이 대대로 집안을 이끌고 있다.

20세기 일부 외국인 연구자들은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해 이스트모에 모계사회가 자리 잡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르티네즈는 “그건 사실이 아니다. 여성과 남성은 가계에 동등하게 기여한다”고 말한다.

최근 몇 년간 추세가 바뀌고는 있지만, 멕시코의 다른 지역에서는 남녀가 가계에 동등하게 기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 않았다.

해방의 역사

시장에 있는 여성
BBC
그리셀다 마르티네즈는 자신이 힘을 가진 전형적인 사포텍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마르티네즈는 시장의 음식 노점에서 이스트모 지역 여성들의 운동의 역사를 이야기했다.

“이 지역 여성들은 19세기 프랑스 침략군에 맞서 남성과 함께 싸웠습니다. 우리는 나무 막대기, 돌, 마체테로 침략자를 몰아냈습니다.”

이스트모 지역은 19세기 여러 차례 내전을 겪기도 했다. 남편을 잃은 여성들이 많았고, 경제적 지원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많은 여성들은 경제 자립을 위해 보부상이 되어야 했다.

멕시코 오토노마 메트로폴리타나 우니다 소치밀코 대학의 인류학자 패트리샤 마투스는 “이 지역에서 반란이 여러 차례 발생했고 여성들이 매우 활발하게 참여했다”고 말한다.

멕시코에는 여러 민족이 공존하지만, 사포텍족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다.

엘파소 텍사스 대학의 인류학자 하워드 캠벨은 “사포텍족은 스페인 통치 하에서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며 스페인의 문화적·정치적 헤게모니(지배)에 도전했다”고 말한다.

역사학자들은 17세기 초 여성들이 스페인에 함께 저항했다고 말한다.

사포텍의 저널리스트 다이애나 만조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 용기는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전했다.

가정

후지탄 가족의 여성들
BBC
후치탄 데 사라고사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승된 사포텍 여성의 가치관

사포텍 여성들의 가치관은 가정에서부터 길러지고 세대를 거쳐 계승된다.

이곳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이다.

BBC와 대화를 나눈 많은 사람들은, 할머니들이 “남자를 기다리지 말라”고 말하며 여성들을 독립적으로 키워낸 것을 기억한다.

경영학과 학생 미셸 로페즈는 “나는 집에서 자부심과 자신감을 배웠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남성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 여성들이 부양과 양육을 모두 담당했다”고 말한다.

로페즈는 앞으로 일어날 정치적 변화를 곰곰이 생각하면서도, 정치권력이 새로운 자유를 이끌어낼 유일한 수단은 아니라고 말한다.

“여성 대통령이 나오면 좋겠지만, 여성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반드시 정치적 지위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지위가 없어도 사회를 움직이고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정치 활동

경영학과 학생 미셸 로페즈
BBC
경영학과 학생 미셸 로페즈는 사포텍 전통 문화를 지키고 실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멕시코 여성들은 다른 여러 국가와 마찬가지로 정치권력에 접근할 공정한 권리를 갖기 위해 고군분투해 왔다.

인류학자 캠벨은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스트모를 예외로 여겼다”고 말한다.

이스트모 여성은 1970년대 노동자 주도 연합 COCEI에서 큰 역할을 맡았다.

제도혁명당(PRI)이 주도하는 정치적 헤게모니에 도전한 것이다.

인류학자 마투스에 따르면, 사포텍 민족의 정체성은 반란의 상징처럼 사용됐다.

그는 “사포텍 여성의 힘이 그 상징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덧붙였다.

후치탄 지역은 COCEI의 투쟁에 힘입어 1981년 멕시코 최초로 사회주의 정부가 통치하는 도시 중 하나가 됐다.

캠벨은 “심지어 시위와 집회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많았다. 여성들은 단식 투쟁을 벌이고 신체적 위험을 무릅썼다”며, 1980년대 멕시코 여성에게는 그런 활동이 드물었다고 덧붙였다.

그 이후 이 지역에서는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최초의 여성 시장들이 선출됐다.

모계사회 논쟁

여성에 대한 폭력은 멕시코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문제 중 하나다.

2024년 1월부터 3월까지 멕시코 전역에서 184건의 페미사이드(여성 살해 범죄)가 기록됐다. 최근에는 그 수가 연간 수천 명에 달한다.

이스트모 데 테우안테펙은 최근 몇 년 동안 젠더 폭력이 가장 만연한 지역으로 꼽혔다.

그 결과, 많은 현지 여성들은 이 지역에 모계사회가 존재했다는 추측을 부정한다.

만약 모계사회가 존재했다면, 젠더 폭력과 불평등이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캠벨 또한, 이스트모 여성들의 정치적 활동은 인상적이지만, 여전히 남성 지배적인 지역 정치권에서 진정한 평등을 이루려면 훨씬 큰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폭력

자포텍 전통 축제를 즐기는 여성들
BBC
자포텍 전통 축제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여성들

이번 선거 유세는 멕시코 현대사에서 가장 폭력적이었다고 평가받는다.

멕시코의 컨설팅 회사 ‘인테그랄리아(Integralia)’는 선거를 앞두고 약 200명의 공무원, 정치인, 후보자가 살해되거나 살해 협박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번 선거에는 2만 개 이상의 의회·지방자치단체 자리가 걸려 있다.

2019년 멕시코 정부는 모든 정부 일자리와 공직의 50%를 여성에게 할당하기로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초점은 여전히 대권이다.

이스트모 시장 곳곳에서는 선거에 관한 대화가 오간다.

“중요한 건 여성 대통령이 나오는 게 아니라 그 대통령이 일을 잘하는 거죠.”

마르티네즈는 “멕시코에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우수한 여성들이 많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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