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네비게이션 검색 본문 바로가기

신임 교황 레오 14세, 가톨릭 교회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다

8시간 전
지난 8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군중에게 연설하는 새 교황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는 수녀들의 모습
Getty Images
새 교황을 보고자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이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죽음의 슬픔이 지나고, 새로운 시작의 기쁨이 도래했다.

5월의 따스한 태양이 여전히 하늘 높이 떠 있던 시점, 바티칸 시국 성 베드로 광장을 둘러싼 거리에는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길 건너편에 있던 시민들은 깜짝 놀라 서로를 쳐다보다 이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바티칸으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하얀 연기! 하얀 연기가 나왔다!"고 소리쳤다.

이들이 광장에 도착하자 전날부터 추기경 133명이 모여 가톨릭 교회의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는 콘클라베를 진행하던 사도궁 지붕 왼편에 하얀색 연무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저녁 햇살이 성 베드로 대성전을 장식한 사도 조각상 사이로 부드럽게 스며들고, 광장에는 기쁨에 찬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젊은이와 노인들이 군중 속을 이리저리 가르며 지나가고, 한 무리의 수녀들은 손을 맞잡은 채 기자들과 카메라를 요리조리 피해 걸어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 베드로 대성전의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 군중을 축복한 지 3주가 채 지나지 않은 시점으로, 여전히 광장에는 선종한 교황에 대한 추억이 어른거렸다.

소감을 묻는 말에 시민 대부분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언급하며 새 교황이 그의 발자취를 따르길 바란다고 했다.

한편 아만다라는 여성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오늘 미국에서 막 도착했다. 마치 축복처럼 느껴진다. 이 순간을 위해 왔는데 정말 실현되었다"면서 "신의 타이밍이다!"고 농담을 던졌다.

멋진 스타일을 자랑하는 20대 여성 2명은 "울 것 같은 기분이다. 역사적인 순간이다. 정말 미쳤다"면서 신임 교황이 "적어도 지난 교황만큼은 훌륭한 분이길 바란다"고 했다.

신임 교황으로 레오 14세가 선출되었다는 소식이 공개되기 전 마지막 몇 분간 많은 이들이 이 같은 생각을 품었다.

한 프랑스 여성은 다섯 자녀를 이끌고 광장 앞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면서 "프란치스코의 발자취를 따르고 우리 가톨릭 신자들을 하나로 묶어 줄 수 있다면 그가 어디 출신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소년이 아버지의 어깨에 올라서 프랑스 국기를 흔드는 모습
BBC

군중을 향해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 우리에게 교황이 있다)'이라는 상징적인 선포를 맡은 도미니크 맘베르티 수석 부제 추기경이 발코니에 등장했을 무렵, 성 베드로 광장은 인파로 가득했다.

하지만 로버트 프랜시스 프리보스트(69) 추기경의 이름이 낭독되는 순간 광장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내막을 알고 있던 이들은 미국 시카고 출신으로 페루에서 오랫동안 사역하다 주교로 임명된 프리보스트 추기경을 일찍이 주요 교황 후보로 짐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광장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휴대전화 신호도 전혀 잡히지 않아 인터넷으로 그에 대한 정보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기에 화려하게 장식된 발코니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이 교황 레오 14세에 대한 이들의 첫인상이었다.

흰색과 빨간색으로 된 예복을 입고 자신감 넘치는 이탈리아어(약간 억양이 있긴 했다)로 인사를 건넨 새 교황의 연설은 지난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보다 훨씬 더 길었다.

어느새 조용해진 광장의 군중을 바라보며 그는 "이 평화의 인사가 여러분의 마음과 가정, … 전 세계 사람들에게 닿기를 바란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낭독했다.

시민들은 중간중간 교황의 연설에 박수를 보냈다. 특히 그가 '평화'(9차례나 언급했다)나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언급할 때면 열렬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교황이 페루에서의 시간을 기억하며 스페인어로 연설한 부분에서는 광장을 가득 메운 남미 출신 신도들이 환호했다.

아울러 교황은 단결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연설 말미 모두 다 함께 기도에 동참해주길 요청했다. 그가 '아베 마리아'를 읊조리기 시작하자 나직하게 윙윙거리는 소리가 광장을 가득 채웠다. 몇몇 시민들은 각자의 언어로 기도하기도 했다.

바르셀로나에서 온 후안과 칼라 부부
BBC
칼라와 후안은 이번이 첫 바티칸 방문이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천천히 광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사람들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서로를 세게 끌어안고 환하게 웃고 있는 연인이 눈에 띄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왔다는 칼라는 "아직도 소름이 돋는다"고 했다.

칼라의 연인이자 에콰도르 출신이라는 후안은 "전염성이 강한 에너지를 느낀다. 환상적이다. 우리는 바티칸에 처음 방문했는데, 100% 초현실적인 기분"이라고 했다.

신임 교황에게 바라는 점이 있냐는 말에 그는 "성령께서 교황을 인도해주길 바란다. 이를 통해 우리 모두가 하나로 단결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한편 로마 시민인 젬마는 인스타그램에서 로버트 프리보스트 추기경의 이름을 처음 접하기 전까지 그에 대해 들어본 적 없다고 했다. 친구인 마르코 또한 "(첫 발표 시) 광장의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젬마는 "그가 이탈리아 사람이었다면 정말 난리 났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아름다운 저녁이고 행사였다"면서 "내 첫 콘클라베였다. 그리고 새 교황은 아직 69세이니 다음 교황 선출이 언제일지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라고 덧붙였다.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광장은 텅 비었고, 바티칸 주변 식당은 순례자, 성직자, 관광객들로 가득 찼다. 연인들은 바티칸 대성전을 배경으로 마지막 셀카를 찍었다.

지금은 외부와의 단절이 풀린 사도궁에서 프리보스트 추기경은 개인적으로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그러고는 제267대 교황 '레오 14세'로서 시스티나 성당에 다시 첫 발을 들였다.

BBC NEWS 코리아 최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