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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죽음을 목격하고 있는 걸까요?'...버려진 해양 테마파크에 방치된 범고래들

9시간 전
프랑스 앙티브 소재 마린랜드의 수조 안 범고래 두 마리. 수조의 물은 더러워 보이고, 바닥에는 군데군데 이끼가 껴 있다
Seph Lawless
이곳 해양 동물원이 문을 닫기 전까지 범고래 위키와 케이조는 공연 없는 삶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될수록 그냥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나 다름없다."

소셜 미디어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회운동가 세프 로리스는 유럽 최대 규모의 폐쇄된 해양 테마파크에 무단으로 침입한 뒤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그곳에서 그가 촬영한 영상은 온라인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조류로 가득 찬 수조에서 범고래 두 마리가 무기력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범고래 '위키'와 '케이조'는 한때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프랑스 앙티브 소재 '마린랜드'가 올해 1월 문을 닫은 이후부터는 더 이상 공연을 하지 않고 있다.

해양 동물원이 폐쇄된 지 약 11개월이 지난 현재, 로리스의 카메라에 담긴 텅 빈 수조에 갇힌 범고래들의 모습은 조회수 3300만 회 이상을 기록했으며, 이 고래들의 복지에 대한 여러 질문을 불러일으켰다.

마린랜드 측은 BBC에 "이 동물들은 매우 건강한 상태이며 잘 관리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상황이 매우 시급하고 우려되는 건 사실"이라며 "동물들의 복지에 위험"이 있다고 인정했다.

마린랜드 측은 프랑스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https://www.instagram.com/p/DQag9K6jdCJ/

로리스는 자신의 활동이 시청자들의 감정에 닿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사람들이 나서고 있다. 온라인에서도 매우 빠르게 공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영상은 지금껏 그가 제작한 콘텐츠 중 가장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있다. 심지어 벨라 하디드, 호아킨 피닉스,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 같은 유명인사들도 이 이야기를 공유하고 나섰다.

로리스는 "이는 단순히 SNS 게시물이 아니라 사회적 운동"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스 앙티브 소재 마린랜드의 항공 사진
Seph Lawless
프랑스 앙티브 소재 마린랜드는 2025년 1월 문을 닫았다

세계적인 고래보호단체인 '고래 및 돌고래 보존협회(WDCS)'에 따르면 현재 유럽에서 포획된 범고래를 사육하는 곳은 단 3곳뿐이다.

이 중 하나가 '마린랜드'로, 전 세계에서 테마파크 약 30곳을 운영하는 스페인 기업 '파르케스 레우니도스'가 운영해왔다.

그러던 2021년 프랑스에서 새 법률이 제정되면서 파르케스 레우니도스는 올해 1월 앙티브 소재 마린랜드를 폐쇄했다. 동물 학대 근절을 목표로 한 이 새 법에 따라 2026년 말부터 고래, 돌고래, 물개 등 포획된 해양 포유류 전시가 금지된다.

워낙 대형 동물이기에 이송과 돌봄이 쉽지 않아 해당 테마파크와 프랑스 당국은 이곳에 있던 범고래들을 다른 시설로 옮기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파르케스 레우니도스는 이 범고래들을 스페인의 대체 해양 공원인 '로로 파르케'로 데려가고자 계속 노력 중이다. 그러나 올해 초 스페인과 프랑스 당국은 이 같은 이전 계획에 이미 한 차례 제동을 건 바 있다.

그러나 많은 비정부기구(NGO)들은 위키와 케이조가 이후 계속 공연에 동원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 계획을 강하게 비판해왔다.

스페인의 카나리아 제도 테네리페섬에 자리한 로로 파르케에서는 현재 범고래 4마리를 사육하고 있는데, 관광객을 위한 "교육적 선보임"이라고 주장한다.

2009년에는 이 공원에서 사육하던 범고래 '케토'가 공연 리허설 중 조련사를 공격해 알렉시스 마르티네스(29)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케토는 이후 2024년 사망했으며, 이곳에서는 2021년 3월~2022년 9월 사이에도 또 다른 범고래 3마리가 폐사했다.

한편, 유럽에서 포획된 범고래를 사육하는 다른 시설로는 러시아의 '모스크바리움'이 있다. 모스크바 소재 이곳 해양 공원에 사는 범고래 '나야'는 원래 다른 범고래 2마리와 함께 전시되었으나, 이 2마리는 이후 죽었다.

녹조가 낀 범고래 수조
Seph Lawless
마린랜드에 따르면 이곳의 수조들은 "사용 가능한 수명"의 끝자락에 접어들었다

온라인에서 큰 주목을 받은 이 영상을 만든 활동가는 그동안 버려진 공간을 기록해왔다.

그는 자신이 활동명으로 사용하는 가명 '세프 로리스('무법의'라는 뜻)'에 대해 "방치에 맞서는 저항, 사회적 쇠퇴에 대한 성찰, 보이지 않은 것들을 대변하는 목소리"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실제로 화제가 될 만한 콘텐츠를 찾기 위해 몇 차례 법을 어긴 적 있다.

로리스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때로는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법을 어겨야 한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는 방치된 수조에 여전히 범고래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마린랜드 기록 활동에 관심을 두게 됐다.

그는 "사육 상태에서 태어난 고래들을 상상해보라. 이게 그들이 아는 세상의 전부"라며 이 범고래들이 사는 환경 자체가 그들에게 엄청난 심리적 부담을 준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관객의 박수, 동물원의 직원들, 소음, 찬사 등에 잔뜩 둘러싸인 채 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모든 것을 빼앗긴 거죠."

빈 관중석과 범고래
Seph Lawless
케이조는 마린랜드에서 태어났으나, 현재는 많은 테마파크가 동물 번식 프로그램을 종료했다

로리스는 마린랜드 측과 처음 접촉했을 때는 전반적으로 우호적이었다고 회상했다.

"나는 폭로를 목적으로 그들에게 연락한 것이 아니"라는 그는 자신은 그저 폐쇄된 테마파크의 상태를 기록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다 내부에 들어가 동물들을 촬영할 수 있도록 허가해달라고 하자 우호적인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로리스는 "저는 그들에게 모든 기회를 주었다"면서 "그러나 그들이 '안된다. 들어갈 수 없다'면서 나와의 모든 연락을 끊었고, 그들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으며, 내가 보지 않길 바라는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수조의 수질, 동물들의 영양 상태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됐고, 직접 확인하고자 미국에서 프랑스로 날아갔다.

그렇게 위키와 케이조의 생활 환경을 카메라에 담고자 총 3차례 무단 침입했다.

그는 자신이 불법으로 촬영한 이번 영상을 통해 폐쇄된 공원에서도 범고래들이 잘 관리되고 있다는 마린랜드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다고 믿는다.

최근 방문 당시 그는 자신이 들고 간 드론 카메라를 눈치챈 듯 이 범고래들이 공연을 펼치는 모습을 목격했다. 무척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그는 "아마도 내가 자신들을 돕고자 왔다는 걸 눈치챈 게 아닐까" 추측했다.

"혹은 그저 저를 사육사로 착각했거나, 먹이를 얻고 싶었던 걸 수도 있죠."

녹색의 수조 5개와 관람석
Seph Lawless
비평가들은 야생에서 하루 최대 160km까지 헤엄칠 수 있는 범고래에게 사육은 잔인하다고 말한다

프랑스 생태전환부는 해당 테마파크의 수조 상태와 동물 복지 평가 보고서를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연구를 맡은 해양 야생동물 전문 NGO인 '씨 셰퍼드'는 아직 평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서도, 해당 범고래 수조에 결함이 있음을 확인했다.

마린랜드 홍보 담당자 역시 BBC와의 인터뷰에서 수조의 질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수조들이 "사용 가능한 수명"의 끝자락에 접어들었다고 인정했다.

이어 "동물들의 복지를 보장하고자 당사 조련사들이 여전히 공원에 상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로리스는 위키와 케이조가 맞이할 최악의 상황이 우려된다고 했다. 법 시행 전까지 1년 남짓 남은 시점에서 새로운 집을 찾아야 하는데, 어디로 갈 수 있을지 명확한 계획이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나 마린랜드가 범고래 2마리를 위해 그 많은 에너지와 돈, 노력을 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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