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사태 어디까지 왔나...앞으로 주목할 점은?
국내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인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둘러싼 정치권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이번 사태가 쿠팡을 넘어 업계 전반에 미칠 영향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17일 오전 쿠팡 개인정보 유출 관련 청문회를 열고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와 브렛 매티스 쿠팡 정보보호최고책임자(CISO), 김명규 쿠팡이츠 대표 등을 대상으로 정보 유출 경위와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질문했다.
또 과방위가 증인으로 채택한 쿠팡 창업자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과 박대준·강한승 쿠팡 전 대표가 줄줄이 불출석함에 따라 이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쿠팡은 한국에서 전날 밤까지 물건을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에 집 앞으로 물건을 배송한다는 '새벽배송' 시스템을 내세워 독점적 지위를 구축했다. 많은 이용자를 확보했던 만큼, 무려 3000만 개가 넘는 계정 정보가 유출되면서 큰 우려를 낳았다.
'배송 정보' 대량 유출
지난달 중순, 일부 쿠팡 고객들에게 익명의 이메일이 전달됐다.
IT 프로그래머 박찬희 씨는 BBC에 11월 16일 저녁에 "귀하의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메일에는 박 씨의 이름과 전화번호, 자택을 비롯한 배송지 5곳의 주소, 최근 주문 내역 15건 등이 적혀 있었다.
박 씨는 바로 쿠팡에 이를 알렸고, 다음 날 "4500명 정도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 같다"라는 내용의 답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생각보다 큰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피해 규모는 훨씬 더 큰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29일 쿠팡은 3370만 개 고객 계정에서 이름·이메일 주소·전화번호·주소·공동현관 출입번호·주문정보 등 일부 개인정보가 노출됐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이번의 경우 이름·전화번호·주소·공동현관 출입번호로 구성된 배송지 정보와 고객의 취향 및 생활 패턴을 파악할 수 있는 주문 정보가 유출된 만큼, 더 정교하고 물리적 공간까지 확장된 범죄 행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아직 구체적인 피해 규모와 유출 경위 등을 파악하기 위한 한국 규제 당국의 조사가 진행 중이며, 중국 국적의 전직 직원이 피의자로 특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이달 9일부터 약 일주일 동안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이달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하고, 해롤드 로저스 미국 쿠팡 Inc. 최고관리책임자 겸 법무총괄이 임시 대표로 선임됐다.
앞으로 주목할 점은?
일단 김범석 의장이 국회의 부름에 응답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김 의장은 지난 10년 동안 협력업체에 대한 부당행위 의혹과 물류센터 노동자 사망 등 기업 내 여러 이슈와 관련한 국회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최민희 국회 과방위 위원장은 "전 세계 170여 개 국가에서 영업을 하는 글로벌 기업의 CEO로서" 바쁜 일정 때문에 이번 청문회 출석이 불가하다는 김 의장의 설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과방위 위원들은 지난 14일 성명을 통해 "한국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한국 국민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운영하며, 한국 국민의 정보를 다루는 기업의 실질적 지배자가 정작 책임을 지는 자리는 외면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쿠팡 본사가 미국에 있고, 기업 상장도 미국 증시에 했을 뿐 아니라 김범석 의장의 국적도 미국인 만큼 쿠팡을 '미국 기업' 또는 '글로벌 기업'으로 규정할 수는 있지만, 사실상 매출의 대부분이 한국 시장에서 나오는 만큼 국내 정치권과 규제 당국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쿠팡 전체 매출의 과반 이상이 한국에서 발생했다. 대표 사업 영역인 소매·유통업 기준으로만 봤을 때는 비중이 90% 이상이다.
민주당은 김 의장의 출석을 강제하기 위해 고발과 국정조사 등의 방안을 모색 중이다. 실제로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정무위)는 국회 증언·감정 법률 위반(불출석) 혐의로 김 의장을 고발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를 통해 김 의장을 소환할 법적 근거를 마련할 수는 있지만, 해외 장기 체류 중인 의장을 상대로 강제 집행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날 전용기 민주당 의원은 외국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국회의 출석 요구에 불응할 경우 입국금지를 요청할 수 있는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과 '출입국관리법 일부 개정안'도 각각 대표 발의했다.
쿠팡을 상대로 정치적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쿠팡이 이번 사태로 얼마나 많은 과징금이나 보상금 등의 비용을 치르게 될지도 주목된다.
이날 정무위 전체회의에서는 중대한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낸 기업에 전체 매출액의 최대 10%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내용의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도 의결됐다. 현행 비율은 매출액의 최대 3%다.
쿠팡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이번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한 내용을 공시하며 "쿠팡의 (사업) 운영은 실질적인 차질을 빚지 않았다"라면서도 "해당 사건으로 인해 경영진의 주의 분산, 매출 감소 가능성과 시정 조치·과징금·소송 등으로 인한 실질적 재정 손실 가능성 등 여러 위험에 노출돼 있다"라고 밝혔다.
사태가 불거진 이후 여러 이용자가 쿠팡을 상대로 집단 또는 개인 소송에 나서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비용도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사태로 인해 실질적으로 얼마나 많은 이용자가 이탈하고 매출에 영향을 미칠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쿠팡 불매 및 탈퇴에 나서겠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편의성 때문에 쿠팡을 계속 이용하겠다는 이들도 있다.
쿠팡에 생계를 의존하는 물품 판매자(셀러)들과 직원들은 사태가 장기화함에 따라 커지는 불확실성을 우려하고 있다.
쿠팡에서 화장품을 판매하는 한 40대 여성은 BBC에 지난달 말 정보 유출 사태가 불거진 후 매출의 80%가 줄었다며 "생필품 쪽은 타격이 크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화장품같이 굳이 빨리 받지 않아도 되는 물품을 판매하는 입장에선 타격이 크다"라고 토로했다.
쿠팡 본사를 중심으로 하는 계열사 첫 통합노조인 쿠니언(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쿠팡지회)은 지난 15일 입장문을 통해 "(회사가)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사태는 장기화되고 있으며, 기업의 위기가 증폭돼 그 불안이 직원에게까지 번지고 있다"라며 의장의 진정성 있는 사과 등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