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고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어디일까?
호주에서 몇 년간 땀을 뻘뻘 흘리며 뜨거운 여름 축제를 보내던 우리 가족은 이번에는 선크림 대신 눈을 보고 싶었고, 그렇게 뜻밖의 유럽 도시에서 축제의 즐거움을 찾아냈다.
반짝이는 전구로 장식된 나무 오두막 가판대, 우아하게 돌아가는 회전목마, 갓 구운 소시지에서 풍기는 연기에 이끌려 우리는 마을 광장 깊숙이 들어갔다. 크리스마스 시즌이었고, 우리 네 식구는 마음껏 즐길 준비가 돼 있었다.
매년 12월, 우리 가족은 뜨거운 햇살과 무더위 속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눈썹과 등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은 채, 각종 구운 요리와 자두푸딩을 먹어 치웠다.
호주에서는 연말 시즌이 한여름이기에 우리에게는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누군가는 이러한 더위를 매력적으로 느끼겠지만, 우리 가족은 겨울 같은 크리스마스를 오랫동안 갈망해왔다. 그리고 이제 첫째가 갓 성인이 된 현재, 지금이 아니면 더 이상 기회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도톰한 겨울옷을 가득 챙겨 멜버른에서 영국 런던으로 긴 비행길에 올랐다.
계획은 간단했다. 유럽 7개국의 도시 8곳을 기차로 누비며 길목마다 펼쳐진 모든 크리스마스 마켓을 즐길 생각이었다.
포이어장겐보울레를 찾아서
여행은 곧 먹는 것이다. 이는 우리 가족의 거의 좌우명과도 같아서, 종종 먹거리를 따라 여행 경로를 정하기도 한다.
특히 크리스마스는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을 기회다.
우리는 각 도시에서 꼭 맛보고 싶은 지역 음식 목록을 만들고, 지치지 않는 마음으로 골목을 누볐다.
실제로 각 마켓마다 맛있는 겨울 간식이 넘쳐났다. 독일 서남부 바인츠에서는 카르토펠푸퍼(감자전)을 잔뜩 먹었고, 체코 프라하에서는 클로바사(체코식 소시지)에 머스타드 소스를 잔뜩 발라 빵과 함께 베어 물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는 란고시(튀긴 납작 빵)로 배를 채웠다. 아이들은 초콜릿이 코팅된 과일꼬치를 사달라며 계속 졸랐다. 칼로리 걱정은 잠시 접어두었다.
물론 이 모든 맛있는 음식을 목구멍으로 부드럽게 넘길 무언가가 필요했고, 우리는 어김없이 뱅쇼(따뜻한 포도주) 잔을 집어 들었다. 체리, 사과, 블루베리 등 다양한 종류의 뱅쇼를 맛보았으나,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맛본 포이어장겐보울레(feuerzangenbowle)였다.
포이어장겐보울레에는 역사는 물론 럼주의 향이 깊게 배어 있다. 술이 배어 있는 설탕이 거대한 9000리터 용량의 사발 위에서 천천히 녹아내리며 달콤하고 훈훈한 풍미가 포도주 속으로 선선히 스며든다.
하루 중 언제든 마셔도 괜찮은 분위기였고, 당연히 이에 맞추어 강가의 가판대로 향할 이유를 계속해서 만들어냈다.
한편 이곳에서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 이상으로 고향 호주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풍경과 소리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 캐럴 소리에 이끌려 독일 마인츠의 1000년된 대성당에 가보니 손으로 직접 성탄 장면을 조각한 작품이 우리를 반겼다.
그 즐거움에 동참하긴 나이가 너무 많긴 했지만, 독일 뉘른베르크의 어린이 마켓에서는 화려하게 장식된 놀이기구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멜로디를 즐겼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는 아름다운 공예품이 넘쳐났다. 우리는 장인들이 자랑스럽게 진열해 둔 섬세한 수채화, 장신구, 도자기 등을 여행가방에 어떻게든 더 집어넣고자 애썼다.
하지만 어느 정도 타협을 하며 하나둘 크리스마스 장식을 골라 사들였다. 이렇게 각 도시에서 모은 장식들을 매년 크리스마스 트리에 달 때마다 우리는 이 모험을 영원히 추억하게 될 것이다.
한편 모든 마켓이 마법처럼 즐거웠으나, 즐거움보다는 인파에 휩쓸린다고 느낀 순간도 있었다. '가시 없는 장미 없다'는 옛말이 여러 번 떠올랐다.
엄청난 인파
영국 런던에서는 레스터 광장과 코벤트 가든에서 열리는 마켓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했으나,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거리는 발 디딜 틈이 없이 붐볐고, 마켓 입구 또한 사람들로 버글버글했다.
멜버른 크리켓 경기장에서 테일러 스위프트가 공연했을 때 '에라스 투어' 최대 인파 속에 무사히 살아남은 우리 가족이었지만, 토요일 밤 런던 크리스마스 시장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시차 적응 문제까지 겹쳐 우리의 인내심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고, 결국 조용한 거리로 후퇴했다.
체코 프라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이곳 구시가지 광장에 모여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관광 명소인 천문시계와 광장을 가득 채운 크리스마스 마켓이 겹치면서 정말 견디기 힘들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
사람들에 떠밀리며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까지 들자, 카를교 근처의 조금 덜 혼잡한 가판대로 빠져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에는 조금 일찍 가야 한다는 팁을 깨달았다. 밤이 깊어 갈수록 사람은 많아지기만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유럽에서 휴가를 보내며 누가 오후 5시에 저녁을 먹고 싶겠는가. 적어도 우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흩어졌다가 모이기' 전략을 썼다. 두 팀으로 나뉘어 붐비는 가판대에서 각자 다른 음식을 사 모았다.
간신히 다시 모여도 종종 테이블을 찾기 힘들어 결국 쓰레기통 위에 접시와 컵을 살살 올려놓고 균형을 잡아가며 먹거나, 군중을 피해 구석에 서서 음식을 입에 욱여넣었다.
결국 우리는 완전히 지쳐버렸고, 사람이 별로 없는 마켓을 찾고 싶었다.
유럽에서 유명하지 않지만 눈에 띄는 크리스마스 도시
출발 몇 달 전, 우리는 (리슬링 포도주가 가미된 돼지 고기 파이를 비롯한) 미지의 것에 이끌려 일정에 룩셈부르크의 룩셈부르크시를 추가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여러 유럽 도시가 넘치는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프랑스와 벨기에, 독일 사이에 자리 잡은 이 작은 보석 같은 도시는 눈앞에 있지만 숨겨진 비밀 같았다.
룩셈부르크시 중앙역에서 걸어 나오자마자 눈에 띈 것은 느긋한 속도와 한적한 길거리였다. 역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시티호텔의 우리 객실은 방금 떠나온 숙소의 객실과 비교하면 궁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이 작은 수도는 걸어서 탐험할수록 더 많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71m 높이의 파노라마 무료 엘리베이터는 도시를 이동하는 완벽한 방법이었고, 깊은 계곡과 절벽, 물결치는 강을 바라보며 우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렇게 어둠이 내리고 우리는 '윈터라이츠(겨울빛) 축제'를 향해 나섰다. 도시 전체가 환상적인 겨울 나라로 변한 이곳은 우리가 유럽의 크리스마스에서 기대했던 모든 것이었다.
거리는 화려한 불빛으로 가득했고, 우리는 각종 전구로 장식된 나무들의 몸짓에 홀린 듯 리베르테 거리의 호텔에서 나와 주요 도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불빛으로 장식된 조형물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걷다 보니 가장 가까운 마켓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성스럽게 꾸며진 목조 가판대가 우리를 맞이했다. 지역 나무로 조각한 눈사람은 손으로 뜬 모자와 스카프로 단장한 채 카운터에 앉아 있었으며, 처마에는 거대한 선물 상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가판대 주인들은 친절한 미소 지으며 손짓했고, 자신들의 상품을 소개하는 한편 우리가 얼마나 멀리서 왔는지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우리는 산타 썰매에서 사진을 찍고, 코가 빨간 루돌프 기계와 함께 머리를 흔들거렸으며, 목을 잔뜩 빼고 머리 위로 끝없이 늘어선 불빛들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우리는 무료 트램을 타고 마켓이 펼쳐진 5곳을 모두 누볐다. 줄은 거의 없거나 짧았으며, 간간이 집어 먹을 간식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현지 특산품을 즐기며 앉아있을 곳도 많았고, 소지품을 신경 쓰긴 했지만 다른 도시에서 느꼈던 날카로운 경계심은 내려놓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을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다니지 않고도 즐길 수 있었다.
우리는 도시의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를 감상하며, 그 어떠한 맥앤치즈보다도 더 푸짐한 크니델렌(베이컨, 크림 등을 넣은 룩셈부르크의 만두)을 맛보고, 그롬페르키헬허(사과소스와 함께 먹는 룩셈부르크의 전통 감자전)도 먹었다.
홀짝홀짝 마시는 크레망 드 룩셈부르크(현지 스파클링 포도주)는 주변의 신나는 음악 소리, 그네를 탄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소리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모닥불 위에서 커다란 마시멜로를 구워 먹기도 하고, 가판대 주인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시장을 거닐며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었지만, 낯선 사람이 배경에 담긴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정말 쉬웠다.
그리고 이번 여행 내내 처음으로, 우리는 진정으로 편하게 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