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단체 100여 곳, '가자주민들, 대규모 기아로 쇠약해지고 있어' 경고

국제 구호 및 인권 단체 100여 곳이 지난 23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내 대규모 기아 사태를 경고하며 국제 사회에 즉각적인 대응을 촉구하고 나섰다.
국경없는의사회, 세이브 더 칠드런, 옥스팜 등은 공동 성명서를 통해 동료들 및 자신들이 돕는 주민들이 점점 "쇠약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가자지구로의 모든 물자 반입의 통제권을 쥔 이스라엘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부인하는 한편, 이들이 "하마스의 선전선동을 돕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번 공동 성명서는 가자구 내 하마스가 운영하는 보건부가 지난 24시간 동안 영양실조로 인해 숨진 팔레스타인인이 10명에 달한다고 밝힌 직후 공개되었다.
해당 보건부에 따르면 이로 인해 지난 20일 이후 가자 지구에서 영양실조로 인한 사망자 수는 43명으로 증가했다.
UN은 먹을 것이 부족해 심각한 탈진 상태로 사람들이 입원하고 있으며, 거리에서 걷다 쓰러지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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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주의 단체 109곳은 이날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이스라엘 정부의 봉쇄로 가자 주민들이 굶주리고 있으며, 구호단체 직원들 또한 식량 배급을 받고자 줄을 서며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은 가족을 먹여 살리고자 총격의 위험까지 감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물자가 완전히 바닥난 상황에서 우리 인도주의 단체들은 동료들과 현장 파트너들이 눈앞에서 쇠약해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3월 초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로 구호 물품을 전면 차단했고, 그로부터 2주 뒤 하마스를 겨냥해 군사 작전을 재개했다. 이로 인해 당시 2달간 이어지던 휴전도 무너졌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측은 남아 있는 자국 인질들의 석방을 압박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전 세계 전문가들이 기아 위기를 경고한 가운데 약 2달간 부분적으로나마 차단 조치가 완화되기는 하였으나, 식량, 의약품, 연료 부족 사태는 더욱 악화했다.
이번 인도주의 단체들은 "의료진들에 따르면 특히 어린이와 노년층의 급성 영양실조율이 기록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급성 수인성 설사 같은 질병 또한 확산하고 있으며, 시장은 텅텅 비었고, 쓰레기는 쌓이고 있으며, 성인들도 굶주림과 탈수로 인해 거리에서 쓰러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심리사회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는 한 구호 활동가는 '아이들은 부모에게 거긴 적어도 먹을 것이 있지 않냐며 차라리 천국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며 아동들이 겪는 심각한 상황을 전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자체적인 평가 결과 가자 지구 주민 4분의 1이 기아와 유사한 상황이며, 심각한 급성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여성과 어린이는 거의 10만 명에 달하여 즉시 치료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23일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이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모두 알다시피, 대량 기아(mass starvation)란 인구 대다수가 굶주리는 상황을 의미한다. 그리고 현재 가자 지구 주민 대다수가 굶주리고 있다"고 했다.
"이 상황을 '대량 기아' 말고는 달리 어떻게 부르겠습니까. 그리고 이것은 인위적인 (기아입니다)."
"이는 매우 명확합니다. 봉쇄 때문입니다."
한편 가자 지구 남부 칸 유니스 소재 나세르 병원의 소아과 과장인 아흐마드 알-파라 박사는 BBC에 지난 3일간 식량이 전혀 공급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단계의 영양실조를 호소하는 아이들이 병원으로 실려 오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영양실조로 병원에서 사망한 아동도 있으며, 기저 질환으로 인해 영양분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어 알-파라 박사는 "우리는 언젠가 이 임계점에 도달하진 않을지 두려워하곤 했다. 지금 그 지점에 와 있다"고 호소했다.
기본적인 물자가 턱없이 부족해 현지 시장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으며, 대부분 가정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는 상황이다.
어느 가자 주민은 "충격적이다. 가격이 폭등했다"면서 "그날 먹을 밀가루만 사려고 해도 300세켈(약 12만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이번 인도주의 단체 109곳은 이스라엘과 미국이 지원하는 '가자인도주의재단(GHF)'이 논란에도 불구하고 기존 UN 주도의 식량 배급 시스템을 대체하여 운영하기 시작한 다음 날인 5월 27일 이후 식량을 구하려다 사망한 팔레스타인인이 약 1050명에 달한다는 UN의 발표도 강조했다.
UN 인권 사무소에 따르면 GHF의 구호 시설 4곳 주변에서 숨진 사람은 766명에 달한다. 해당 시설들은 이스라엘 군사 작전 구역 내 위치해 있으며, 미국 민간 경비업체들이 계약을 맺어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UN 및 기타 구호 차량 인근에서도 288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군 당국은 GHF 근처에 배치된 자국 병력은 경고 사격만 하고 있으며, 고의로 민간인에게 총격을 가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GHF 측은 UN이 가자 내 보건부가 제공한 "거짓되고 잘못된" 통계를 인용하고 있다며 반박했다.
인도주의 단체 109곳은 거의 모든 가자 주민들이 실향민으로, 현재는 이스라엘의 대피 명령이나 군사화된 구역에 포함되지 않은 전체 영토의 12% 미만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구호 활동이 매우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현재 가자 지구에는 하루 평균 구호 트럭 단 28대만 진입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가자 지구 바로 바깥 창고에는 물론 가자 내부 창고에도 식량, 깨끗한 식수, 의약품, 연료 등 엄청난 양의 구호물자가 그대로 쌓여 있지만, 인도주의 단체들은 이에 접근하거나 이를 배급조차 하지 못하게 차단당한 상태입니다."
이와 관련해 UN은 점령국인 이스라엘은 국제법에 따라 도움이 필요한 모든 시민들에게 인도적 지원이 닿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은 자국은 국제법에 따라 행동하고 있고, 지원 물자의 촉진하고 있으며, 다만 물자가 하마스에 전달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말한다.
최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전달되는 구호물자의 양이 크게 감소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그 책임을 UN 기관들에 돌렸다.
가자 지구의 구호 물자 유입을 조율하는 이스라엘의 군사 기관인 'COGAT'은 지난 21일 X를 통해 지난 2달간 분유 2500톤과 아동용 고칼로리 특수식을 포함해 트럭 약 4500대가 가자 지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또한 COGAT은 케렘 샬롬과 지킴 지역 검문소 근처에 UN 및 국제 단체가 수령해가지 않아 트럭 950대 분량의 구호물품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는 주장과 함께 관련 드론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가자지구로의 인도적 지원이 꾸준히 이어지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자의 수령 지연으로 인한 병목 현상"이라는 주장이다.

UN은 가자 지구의 운전사들이 검문소를 넘어 구호물자를 수거하고, 군사 구역을 통해 운반하는 데 필요한 이스라엘 측 허가를 받아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여러 차례에 걸쳐 호소한 바 있다.
게다가 지속되는 긴장 관계, 심하게 파손된 도로, 심각한 연료 부족 및 무장 단체들의 범죄적 약탈로 인해 상황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이에 더해 UN은 이스라엘 군으로부터 구호 트럭에서 물자를 받으려는 절박한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받아내지 못하는 게 최근 몇 주간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스테판 두자릭 UN 대변인은 22일 언론 브리핑에서 "이스라엘로부터 가자 검문소 근처 폐쇄된 시설에서 물자 수거를 허가받았음에도, 거듭 확인했음에도 민간인들이 트럭에 접근할 때 총격이 가해지는 사례가 너무 많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용납할 수 없는 행태는 인도주의적 지원 촉진의 정반대입니다. 그 누구도 먹을 것을 얻고자 목숨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한편 인도주의 단체 109곳은 이제는 각국 정부가 "결정적인 조치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즉시 영구적인 휴전을 요구한다. 모든 행정적, 관료적 제한을 해제하길 요구한다. 모든 육상 검문소를 개방하길 요구한다. 가자 지역 전역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하길 요구한다. 군사 통제 하의 물자 보급 방식에 거부한다. 원칙에 기반한 UN 주도의 기존 인도주의 대응책을 복원하고, 원칙적이고 중립적인 인도주의 단체에 대한 자금 지원을 이어가길 요구한다."
그러면서 해당 단체들은 "각국 정부들은 (이스라엘로의) 무기 및 탄약 이전 중단 등 가자 지구의 봉쇄를 끝내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이 같은 성명에 대해 이스라엘 외무부는 강력히 반발하며 해당 단체들이 "하마스의 주장을 인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단체들은 하마스의 선전선동을 들어주고 있으며, 하마스 측 데이터를 이용해 그들의 끔찍한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테러 조직에 맞서는 대신, 같은 편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외무부는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카타르에서 간접 협상을 통해 새로운 휴전 및 인질 석방 합의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이 "그 기회를 방해하고 있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지난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자국 남부 지역을 공격해 약 1200명이 숨지고 251명이 인질로 끌려가자 이스라엘 군은 이에 맞서 가자 지구에서 군사 작전을 시작했다.
가자 지구 내 하마스가 관리하는 보건부에 따르면 그 이후로 가자 지구에서는 최소 5만9219명이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