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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아들이 죽을 것' … 길거리 '축복 사기꾼'의 사기 수법

1일 전
노트북 화면을 보고 있는 두 여성
BBC
피해자의 딸인 투엣 반 후인(왼쪽)은 '축복 사기꾼'들을 추적하고 있다

나이 든 여성에게 접근해 이들이 사랑하는 사람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속여 귀중품을 빼앗는 사기범들이 중국 커뮤니티를 표적으로 삼고 있다.

영국, 미국, 호주, 캐나다에서 이 같은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현지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피해자 가족들도 범인들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축복 사기’는 잘 짜인 길거리 범죄 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여성 3명으로 구성된 갱단들이 광둥어로 쓰인 대본을 구성해 철저히 연습한다. 이 연극의 관객은 단 1명, 다가온 이들을 의심하지 않는 피해자이다.

멍니는 현재 영국 런던에 살고 있는 60대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여성이다 멍니는 요가 수업을 들으러 웨스트 런던 해로우 길을 걸어가고 있다 울고 있는 한 여성을 보게 됐다.

이 여성은 멍니에게 다가와 광둥어로 말을 걸었다. 자기 남편이 아픈데,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어느 특정 치유사를 아느냐고 했다.

멍니
BBC
멍니는 자신이 영적인 것을 믿는 사람이기에 사기꾼들에게 현혹됐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갑자기 광둥어를 사용하는 또다른 낯선 사람이 나타나더니 자신이 그 치유사를 안다면서 멍니와 이 여성을 데려다 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멍니는 이 슬퍼하는 여성을 돕고 싶은 마음에 휩쓸리게 됐다. 그렇게 여성들과 점점 더 한적한 골목길로 걷고 있는데, 또 다른 여성이 나타나 자신도 이 치유사에 대해 알고 있으며, 혹시 자신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알아보러 간다고 했다.

그렇게 일행은 15분간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그리고 멍니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됐다. 치유사가 신기한 능력을 발휘해 멍니에게 곧 큰일이 일어나리라는 미래를 예견한 것이다.

그는 놀랍게도 멍니가 결혼 생활 중 겪은 모든 문제, 오른쪽 다리에 느끼는 쏘는 듯한 통증 등 이들 여성에게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것들에 대해 전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멍니가 충격받은 부분은 따로 있었다.

“당신 아들은 앞으로 3일안에 사고를 당해 죽게 될 것이다.”

이에 함께 온 여성이 치유사에게 그렇다면 혹시 멍니의 아들을 지켜줄 축복을 내려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이에 치유사는 “쌀 한 줌 및 최대한 많은 금과 현금을 가방에 넣어야 한다”면서 그 귀중품에 축복을 빌어준다고 했다.

멍니는 축복을 받은 뒤 이 귀중품들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말에 안심했다.

우선 여성 중 1명이 멍니를 급히 집으로 보내 보석을 챙겨오게 했다. 그 후 은행으로 가 현금 4000파운드(약 710만원)도 인출했다. 그렇게 모은 이 모든 귀중품을 비닐봉지 하나에 모아 담았다.

멍니는 이때 아마 가방을 바꿔치기했을 것이라 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그 여자의 손이 정말 빨랐어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멍니는 검은 가방 안을 살펴봤다. 가방 안에는 충격적이게도 자신이 넣은 귀중품 대신 벽돌 한 장과 케이크 한 조각, 물병 2병만 있었다.

멍니는 “그 순간 정신이 들었다 … 그리고 아들에게 ‘내가 사기를 당한 것 같구나. 내가 당했어’라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도난당한 물건 중에는 멍니의 어머니를 통해 대대로 내려온 가보도 있었다.

축복 사기에 대해 알리는 포스터
New South Wales Police
미국, 캐나다, 호주 경찰 모두 지난 1년간 축복 사기 피해가 접수됐다며 경고하고 나섰다

멍니의 이 같은 경험은 전형적인 축복 사기다.

BBC는 이와 비슷한 일을 당했다는 여러 피해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길에서 실의에 빠진 낯선 이를 만나게 되고, 악령이 가족이나 친지를 괴롭히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유사했다. 심지어 ‘미스터 코’라는 이 치유사의 이름도 모두 같았다.

모든 피해자가 사기를 당하기까지 몇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멍니도 울고 있는 여자를 만나 사기를 당하기까지 고작 3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전직 중국 경찰관 출신으로 현재 영국 노섬브리아 대학교의 법학 교수로 활동하는 안치 셴은 이러한 축복 사기가 사람들의 영적인 믿음을 악용하는, 수백 년 역사의 전통적인 거리 범죄의 최신 버전이라고 지적했다.

셴 교수는 “중국인들은 금이나 은, 옥 등 사람을 지켜줄 수 있다고 믿는 보석을 소지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은 이러한 귀중품에 축복이 깃들면 보호력이 더 커질 것으로 믿었다고 덧붙였다.

축복 사기 피해자들을 위한 기금을 모으는 SNS 페이지
Tuyet van Huynh
축복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나설 수 있도록 돕는 SNS 캠페인

한편 투엣 반 후인은 지난 5월 어머니가 수만파운드에 달하는 귀중품을 사기당한 이후, 이러한 축복 사기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한 SNS 캠페인에 나섰다.

후인의 어머니는 당시 이스트 런던 업튼 지역에서 쇼핑을 하다 똑같은 역할을 맡은 여성 3명으로부터 아들이 악령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한편 미국, 캐나다, 호주 경찰 모두 지난 1년간 축복 사기 피해가 접수됐다며 경고하고 나섰다.

영국에서 사는 후인의 어머니와 멍니 모두 런던 경찰청에 신고했다. 현지 경찰은 런던 이슬링턴 지역에서 접수된 여러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후인은 루이샴, 롬포드, 리버풀, 맨체스터에서 발생한 유사한 사건에 대해서도 들었다.

후인은 사기꾼들이 어머니에게 접근한 지역의 CCTV 영상을 모아 당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후인에 따르면 영상 속 어머니는 “마치 좀비가 된 듯 (여성들의) 모든 지시를 따랐다”고 한다.

CCTV 영상 속 한 장면
Tuyet van Huynh
투엣 반 후인은 사기꾼들이 접근할 당시 어머니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BBC 취재진에게 보여줬다

후인의 어머니는 미신도, 영적인 것도 그리 믿는 사람이 아니기에 자신이 어쩌다 그 치유사의 이야기에 사로잡혔는지 설명하기 힘들어했다.

이에 후인은 혹시 다른 요인이 있진 않을지 의문이 생겼다. 이에 혹시 누군가 어머니에게 약물을 사용한 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범인들이 약물을 통해 어머니가 집에 감춰둔 귀중품을 챙길 만큼의 정신만 차리도록 조종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악마의 숨결’이라는 약물이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에 이르렀다.

‘악마의 숨결’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스코폴라민은 원래 멀미 예방약이지만, 특정 용량을 복용하면 잠시 자유 의지가 손상될 정도로 타인의 지시에 쉽게 반응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피해자가 알지 못하는 사이 투여할 수도 있다.

물론 후인에게는 어머니나 다른 피해자들을 노린 사기 범죄에 이 같은 약물이 동원됐다는 증거는 없다.

스코폴라민은 정신적으로 이러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몇 안 되는 약물로, 에콰도르, 프랑스, 베트남에서는 강도 사건에 사용됐으며, 콜롬비아에서는 해당 약물을 이용한 살인 및 강간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콜롬비아에서 자라는 꽃
Getty Images
‘악마의 숨결’로도 불리는 스코폴라민은 콜롬비아에서 자라는 꽃에서 추출된다

스코폴라민이 영국에서 발생한 축복 사기 사례와 관련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관련이 있다고 해도 이를 입증하기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체내에 매우 빠르게 흡수되기에, 범죄 피해 다음날 후인이 어머니에게 약물 검사를 받게 했으나 이미 너무 늦었다.

한편 자선 단체인 ‘빅텀 서포트’에서 사기 피해 전문가로 활동하는 리사 밀스는 이 같은 사기 범죄가 매우 효과적일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수법 자체가 피해자들을 빠르게 현혹하고자 고안됐다고 설명했다.

“자신과 모습이 닮은 사람들이 접근해온다”는 밀스는 “다 여성이고, 나이도 비슷하며, 피해자와 같은 모국어를 쓰지 않냐”고 덧붙였다.

축복 사기에 대해 경고하는 안내문
BBC
영국 내 중국인 커뮤니티 센터에 등장한 축복 사기 경고 안내문

사기범들은 여전히 잡히지 않고 있지만, 피해자 가족들은 이들을 직접 추적해내기로 마음먹었다.

멍니는 “나는 경찰에 이들을 잡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기꾼들이 중국인이라는 점에서 특히 속상하다고 했다.

“그들은 동포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니까요.”

추가 보도: 오스틴 랜디스(콜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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