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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앞둔 홍콩 민주화 운동가 47명…이들은 누구인가?

2024.05.30

68세의 전 야당 의원부터 28세의 학생 운동가까지, 이번 주 홍콩에선 국가 전복 혐의로 기소된 저명한 민주화 운동가 47명에 대한 판결이 발표될 예정이다.

'홍콩 47'로 알려진 이들은 3년 전 기소됐다. 중국 당국에 의해 제정된 ‘국가보안법’ 도입 이래 최대 규모의 탄압으로 일컬어진다.

여성 8명, 남성 39명으로 이뤄진 이들 47명 중 16명이 무죄를 주장한 상태다.

중국 당국은 대규모 민주화 시위 이후 2020년 제정된 해당 국가보안법에 대해 사회 안정 유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말한다. 그러나 해당 법으로 인해 홍콩이 자율성과 자유를 박탈당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홍콩 검찰은 이들 47명이 지난 2020년 홍콩 입법회 선거를 앞두고 야권 후보를 뽑고자 비공식적인 “예비 선거”를 진행해 중국 정부를 전복하려 했다고 본다.

베니 라이 전 홍콩대 교수

‘센트럴을 점령하라’ 운동 중인 타이 교수
Getty Images
베니 타이 교수는 2013년 정계에 입문했다

한때 명문 홍콩대학교(HKU) 법학부 종신 교수였던 베니 타이(60)는 지난 2013년에 정계에 발을 들였다.

타이 전 교수는 다른 민주화 운동가 2명과 함께 ‘센트럴을 점령하라’ 운동을 조직한 인물이다. 홍콩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민운동으로 손꼽히는 해당 시위에서 이들은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를 요구했다.

그리고 이후 타이 교수는 해당 시위에서 맡은 역할로 인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로부터 1년 후인 2020년, 홍콩에 국가보안법이 시행되면서 타이 교수는 유죄 판결이 문제가 돼 홍콩대학에서 해고당했다. 타이 교수는 대학 측이 중국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라면서 “학문의 자유는 종말을 맞았다”고 비난했다.

교수는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가 사랑하던 대학의 종말을 목격하게 돼 마음이 아프다”면서 자신을 해고하기로 한 결정은 “대학 측이 내린 결정이 아닌 … 대학을 넘어선 권위에 의해 내려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생 운동가, 조슈아 웡

2017년 6월 28일 조슈아 웡은 홍콩 컨벤션 센터 건물 앞 설치된 황금 바우히니아 조각 앞에서 연좌 시위를 벌였다. 해당 동상은 1997년 홍콩 반환을 기념하고자 중국이 홍콩에 선물한 것이다
AFP
조슈아 웡은 홍콩에서 가장 잘 알려진 민주화 인사다

홍콩에서 가장 잘 알려진 민주화 운동가인 조슈아 웡은 겨우 14살 때부터 민주화 운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14년 벌어진 ‘우산 혁명’을 이끈 인물 중 하나로, 이로 인해 투옥되기도 했다.

이후 2019년 풀려났으나, 때마침 홍콩에선 당시 범죄 용의자들을 중국 본토로 송환할 수 있다는 내용의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발해 수백만 명이 참여한 시위가 벌어졌다.

웡은 당시 완차이 소재 경찰 본부를 15시간 동안 둘러쌌던 시위대 수천 명 중 하나였다. 시위대는 밤 11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경찰 본부 건물에 계란을 투척하고, 벽에 그라피티를 그리며 항의했다.

해당 시위는 “지도자가 없던 시위”로 알려졌음에도, 홍콩 검찰은 웡을 시위의 지도자로 봤다. 그러면서 웡이 시위대를 향해 “경찰 본부를 완전히 포위해야 한다”고 외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문제 삼았다.

이후 웡은 이러한 시위에서 맡은 역할로 인해 투옥돼 독방에 수감됐다. 그 외에도 법정 모독, 1989년 ‘천안문 사태’ 기념 집회 참여 등 여러 가지 혐의가 덧붙여졌다.

2020년, 웡은 2019년 시위 참여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아마도 당국은 내가 계속 형기를 마친 후에도 다시 투옥돼 감옥에 남아 있길 바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감옥도, 선거 (출마) 금지도, 그 어떠한 임의적인 권력도 우리의 활동을 막을 수 없다고 확신한다”며 저항하는 태도를 잃지 않았다.

‘장발의 혁명가’ 렁궉훙

2016년 10월 12일, 홍콩 입법회 회의실에서 ‘사회민주연선’당 대표이자 의원인 뤙국홍이 노란 우산을 들고 선서하고 있다
Getty Images
2016년 10월 12일, 뤙국홍 전 의원은 항의의 표시로 홍콩 의회에 노란 우산을 들고 나타났다

‘장발(롱 헤어)’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뤙국홍(68) 전 야당 의원은 누구나 인정하는 홍콩의 가장 거침없는 비판가 중 하나다.

자칭 ‘마르크스주의 혁명가’인 뤙 전 의원은 정치적 퍼포먼스로도 유명하다.

뤙 전 의원은 홍콩 입법회(의회)에서 바나나를 투척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문구가 적힌 풍선을 날리기도 했다. 아울러 의원 선서 시엔 ‘우산 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노란 우산을 들고 나타나 “우산 운동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도 외친 바 있다.

이로 인해 의원 자격을 박탈당한 뤙 전 의원은 2019년 시위에도 참여하며 거의 2년간 감옥에 갇혀 있었다.

뤙 전 의원의 아내인 찬포잉 역시 유명한 민주화 운동가로, 이들은 ‘사회민주연선’당의 창당 멤버이기도 하다.

이들은 20대부터 서로를 알고 지냈으나, 뤙 전 의원이 국가 전복 혐의로 체포된 후인 2021년 1월에야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은 둘 중 1명이 수감되면 부부일 때 교도소 면회나 기타 법적인 일에서 더 큰 권리를 지닐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결혼식 40일 뒤, 뤙 전 의원은 공식적으로 체제 전복 혐의로 기소됐다.

클라우디아 모 전 의원

2017년 당시 홍콩 의회에서의 클라우디아 모 의원
Getty Images
클라우디아 모 전 의원은 기자 시절 ‘천안문 사태’를 취재한 바 있다

또 다른 유명한 야당 의원 출신인 클라우디아 모(67)는 ‘모 이모’라는 애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언론인 출신인 모 전 의원은 과거 AFP 통신에서 일하면서 1989년 천안문 사태를 취재하게 됐는데, 이를 계기로 정치적으로 각성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던 2006년 야당인 ‘공민’당 설립에 참여했으며, 2012년엔 의원직에 당선됐으나, 그 결과 영국 시민권을 포기해야만 했다.

2020년 11월, 모 전 의원은 다른 민주화 성향 의원 4명이 쫓겨나자 다른 의원 몇몇과 함께 의원직을 자진 사임했다. 이로 인해 현재 홍콩 의회엔 사실상 야당 의원이 존재하지 않는다.

‘파이낸셜 타임즈’의 보도에 따르면 2021년 1월 6일 새벽, 모 전 의원의 자택엔 경찰이 들이닥쳐 예비 선거에서 그가 맡은 역할을 문제 삼아 체포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 소식통은 “순전히 폭력 사태”였다고 묘사했다.

영국 출신 기자이자, 모 전 의원의 남편으로, 당시 80세였던 필립 보우링은 이후 상태가 나빠졌으나, 투옥된 모 전 의원은 면회 신청을 거절당했다. 이후 보우링은 퇴원했다.

FT에 따르면 모 전 의원은 체포를 앞두고 조용히 은퇴해 손자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자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가까운 시일 내엔 실현되기 어려운 바람일 수 있다.

성소수자 운동가, 지미 샴

2019년 6월 12일 범죄인 인도법 반대 행진에서 언론과 인터뷰 중인 지미 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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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샴은 홍콩의 유명한 성소수자 운동가이다

오랫동안 정치 및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로 활동해온 지미 샴(37)은 홍콩 내 최대 민주화 단체 중 하나인 ‘민간인권전선(CHRF)’의 지도자이기도 하다.

지난 2019년 샴은 여러 번 폭행당했다. 한번은 머리를 다쳐 피투성이가 된 채 길거리에 쓰러지기도 했다. 정확한 공격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CHRF는 해당 공격이 친정부 측 인사와 연관 있다면서, 최근 몇 달간 다른 민주화 운동가들도 폭행당했다고 주장했다.

2021년 CHRF는 중국의 탄압으로 인해 “전례 없이” 어려운 상황이기에 더 이상 활동을 이어나가기 힘들다며 해산을 선언했다.

지난 2013년 미국 뉴욕에서 연인과 결혼한 샴은 홍콩 법원에서 해외에서 진행된 동성 결혼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했다. 해당 사건은 최종 항소법원까지 올라갔다.

지난해 샴은 부분적으로 승소했다. 홍콩 종심법원(최고법원)은 샴의 요청은 기각했으나, 홍콩 행정부에 동성 간 결합을 법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라고 명령했다.

해당 판결은 샴이 홍콩 예비 선거에 참여한 혐의로 수감돼 있을 때 내려졌다. 샴의 보석 신청에 대해 판사는 풀려날 경우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를 계속할 “의지가 굳고 강한 청년”이라면서 거절했다.

홍콩의 국가보안법상 판사는 피고인이 다시는 국가 안보를 위협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는 상황에서만 보석을 허가할 수 있다. 이는 큰 비판을 받는 부분이다.

이에 판결을 기다리기까지 3년 이상 수감된 피고인이 대부분이다.

샴은 유죄를 인정한 31명 중 하나로, 이 경우 최고 종신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 홍콩에선 일반적으로 유죄를 인정하면 형량이 크게 줄어든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도 똑같이 적용될진 불분명하다.

‘국제엠네스티’의 하나 영 지역 부국장은 보고서를 통해 “이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범죄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감형을 받거나, 부당한 국가보안법 앞에 패배를 선언해야만 하는 선택지 사이에서 불가능한 결정을 내리도록 강요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인, 기네스 호

2020년 당시 기네스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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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 호는 우연히 구타당하는 모습이 생중계되며 유명해졌다

언론인 출신인 민주화 운동가 기네스 호(33)는 BBC 중국어 뉴스를 비롯해 홍콩 정부 소유 방송사인 ‘RTHK’, 온라인 뉴스인 ‘스탠드 뉴스’ 등 여러 언론사에서 근무하다 정계에 입문했다.

그러던 2019년 시위 도중 우연히 폭도들에게 구타당하는 자신의 모습을 생중계하게 되면서 유명해졌다. 해당 영상은 전 세계로 뻗어나갔고, 많은 이들이 이러한 폭력에 충격받았다.

호는 2020년 예비선거에 참여해 자신의 선거구에서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으나, 1년도 채 되지 않아 체포됐다.

호는 후보자 47명의 자격 박탈은 결국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며 “홍콩인 대부분은 마음속 깊이 중국 공산주의 정권 하에 민주주의를 외치는 것은 언제나 환상에 불과했음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증언했다.

이후 알렉스 리 판사는 호에게 “진정하라”며 제지했다.

한편 이번에 판결을 기다리는 그 외 피고인으로는 청년 민주화 정치인 세대를 대표하는 오웬 차우, 벤투스 라우, 티파니 유엔 등이 있다. 라우와 차우는 홍콩 의회를 습격해 의회 건물을 부수고 홍콩의 상징에 페인트를 칠한 시위대 수백 명 중 하나로, 이는 2019년 시위 중에서도 중요한 순간으로 손꼽힌다.

헬레나 웡, 쿽카키처럼 수십 년간 활동해온 베테랑 의원 출신 인물들도 있으며, 헨드릭 루이와 같은 사회복지사부터 위니 유 같은 노조 활동가도 있다.

그러나 하룻밤 사이 홍콩 내 거의 모든 민주화 운동가들은 투옥됐다. 대부분 이들의 보석이 거절당했으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람들에 대해선 재판 전 구금이 일반화되면서 이들 대부분은 지금도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다.

지난 2월에 시작된 이들 47명에 대한 재판은 수개월간 지연되거나 여러 논란에 휩싸였다. 보석 심리는 4일간 이어졌으며, 그동안 피고인들은 옷을 갈아입거나 몸을 씻을 수조차 없었다. 이후 10명은 실신했으며, 몇몇은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이들 외에 체포되지 않은 이들은 체포될까 두려워 홍콩을 떠났다.

홍콩은 중국의 일부이지만,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에도 어느 정도 자치권을 갖고 있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가들은 이후 민주주의 자유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한편 중국은 계속해서 “외국 세력”이 홍콩을 통해 중국을 불안정하게 흔들고자 한다고 주장한다.

페이스월 이미지 그래픽: East Asia Visual Journalism T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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