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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기업은 어떻게 멕시코를 '미국 시장의 뒷문'으로 이용하고 있나?

2024.04.22
몬테레이 소재 중국 ‘만와’ 기업 공장에서 소파를 만들고 있는 멕시코 노동자들
BBC
중국 ‘만와’ 기업은 멕시코에서 상품을 제작해 미국의 관세를 피한다

멕시코 동북부 몬테레이에 위치한 ‘만 와’사의 가구 공장에서 생산되는 등받이 조정 안락의자와 고급 가죽 소파는 전부 ‘메이드 인 멕시코’다.

여기서 만들어진 가구는 ‘코스트코’, ‘월마트’와 같은 미국의 대형 소매업체로 이송된다.

그러나 만 와는 중국 기업으로, 이들의 멕시코 소재 생산 시설은 중국 자본으로 지어졌다.

멕시코 산업계에서 떠오르는 단어인 ‘니어쇼어링(Nearshoring, 수요 국가와 지리적으로 인접한 국가로 생산시설을 이전하는 것)’의 배경에는 미국-중국-멕시코 삼국의 삼각관계가 자리하고 있다.

만 와말고도 최근 몇 년간 수많은 중국 기업이 멕시코 북부 지역에 자리한 산업 단지로 생산시설을 옮기고 있다. 수요 국가인 미국과 더 가까운 곳에서 생산하기 위해서다.

멕시코로의 생산시설 이전을 통해 운송비를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기서 생산된 완제품은 온전히 멕시코산으로 취급되기에 중국 기업들은 미-중 무역 전쟁이 이어지는 현재 중국산 제품에 부과되는 미국의 관세와 제재를 피할 수 있다.

만 와의 총괄 관리자인 유 켄 웨이는 BBC 취재진에게 이 거대한 생산 단지를 보여주며 멕시코로의 이전이 경제적으로도, 물류적으로도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유 매니저는 완벽한 스페인어로 “우리는 이곳에서의 생산량을 3~4배 늘릴 계획”이라면서 “이곳 멕시코에서의 생산량을 우리의 베트남 공장에서의 생산량 수준으로 끌어올리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유 켄 웨이
BBC
유 켄 웨이 총괄 관리자는 멕시코에서 생산량을 3배 이상 늘릴 계획이라 말한다

만 와가 몬테레이에 둥지를 튼 건 2022년이지만, 이미 멕시코인 450명을 직원으로 두고 있다. 유 매니저는 앞으로 몇 년 안에 생산 설비를 늘리면서 1200명 이상의 직원을 둔 규모로 성장하길 꿈꾼다고 했다.

유 매니저는 “멕시코 직원들은 매우 열심히 일하고 빨리 배운다”면서 “이곳 노동자들은 운영도 잘 되고 생산성도 높다. 그래서 노동 측면에서도 멕시코는 전략적으로 매우 좋은 지역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니어쇼어링이 멕시코 경제에 중요한 활력소가 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지난해 6월까지 멕시코의 총수출액은 1년 전에 비해 5.8% 증가한 529억달러(약 73조원)였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는 주춤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올해 들어 2달 만에 2020년 연간 총계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자본을 멕시코에 투자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만 와 소파 공장은 중국-멕시코 산업단지인 호푸산 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의 공장터 수요는 끝도 없이 치솟아 사용 가능한 모든 공간이 모두 매각된 상태다.

실제로 ‘멕시코 산업단지 협회’는 2027년까지 멕시코에 건설될 예정인 모든 부지가 완판됐다고 밝혔다. 여러 멕시코 경제학자들이 자국에 대한 중국의 관심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멕시코 대외무역부 차관 출신인 후안 카를로스 베이커 피네다는 “멕시코로 자본을 끌어오는 구조적인 이유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 전망했다.

“미-중 무역 전쟁이 이른 시일 내에 사라질 것으로 볼만한 징후는 없다고 봅니다.”

피네다는 멕시코의 새로운 북미 지역 자유무역협정인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의 협상팀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피네다는 멕시코로 들어오는 자본의 원천이 중국이라는 점에서 일부 국가는 정책적으로 불편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국제 무역법에 따라 이러한 모든 제품은 실제로 멕시코산으로 취급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분명히 멕시코는 두 초강대국 사이에서 전략적 발판을 마련한 모습이다. 멕시코는 최근 중국을 제치고 미국의 주요 무역 상대국으로 발돋움했다. 이는 매우 의미 깊고 상징적인 변화다.

소파 가죽 작업 중인 멕시코 노동자들
BBC
‘만 와’의 관리자들은 멕시코 노동자들의 기술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이러한 멕시코의 대미 무역 증가는 부분적으로는 멕시코 내 니어쇼어링의 2번째 주요 측면, 즉 아시아 등지에서 멕시코로 생산 시설을 이전하는 미국 기업들도 있다는 점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소식이 바로 전기차 기업 ‘테슬라’의 ‘기가팩토리’를 몬테레이 외곽에 새롭게 건설하겠다는 일론 머스크 CEO의 지난해 발표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 테슬라는 100억달러 규모로 예정된 이 공장 건설을 시작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테슬라는 이 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놓지 않고 있는 듯하지만, 세계 경제에 대한 전반적인 우려 및 최근 테슬라 내 인원 감축 등으로 인해 계획은 늦어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투자에 대해 일부에선 멕시코가 미-중 간 넓은 지정학적 갈등에 휘말리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멕시코 국립자치대학의 ‘중국-멕시코학 연구센터’의 엔리케 두셀 박사는 “기존 부자인 미국은 신흥 부자인 중국과 갈등을 겪고 있다”면서 “지금까지의 멕시코 정부와 현 정부는 이러한 새로운 삼각관계에 대한 전략이 없다”고 지적했다.

멕시코와 미국 모두 올해 대선이 다가오는 가운데 앞으로 새롭게 정치적으로 고려해볼 만한 사항이 등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백악관의 주인이 도널드 트럼프이든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이든 간에 미-중 관계가 향후 4년 안에 좋아지리라 기대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두셀 박사는 니어쇼어링을 ‘안보쇼어링’이라 정의하고 싶다면서, 미국 정부가 중국을 대할 때 미국의 안보 문제를 가장 우선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라 멕시코는 그 중간에 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두 강대국 간 긴장된 관계 속 “멕시코는 중국을 향해 ‘멕시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며 큰 팻말을 내걸고 있다”는 두셀 박사는 “이게 중기적으로 미국-멕시코 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리라는 건 전문가가 아니라도 알 수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몬테레이 소재 중국-멕시코 산업 단지에 건설 중인 새 건물의 모습
BBC
국 기업들은 앞다퉈 멕시코 내 신축 공장 건설 대지를 매입하고 있다

한편 더 낙관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피네다는 “내가 보기엔 이러한 (멕시코로의 니어쇼어링) 추세가 계속될지가 아닌, 이를 멕시코가 얼마나 잘 이용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콜롬비아, 베트남, 코스타리카에서도 같은 질문에 대해 논하고 있을 겁니다. 따라서 멕시코는 이러한 추세가 장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업과 정부가 함께 협력해 멕시코로 유인될 조건이 강화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한편 몬테레이의 만와 가구 공장에선 유능한 멕시코 재봉사들이 북쪽 미국으로 배송될 소파의 가죽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근처 월마트에서 이 소파를 구매할 미국 가정에선 자신들이 산 이 물건의 생산 배경에 얼마나 복잡한 지정학적 요소가 얽혀있는지 모를 수도 있다.

니어쇼어링이 미국 시장을 향한 영리한 뒷문이든, 초강대국 간 값비싼 전쟁의 일환이든 간에 글로벌 무역에 적대적인 기운이 감도는 지금 시기엔 멕시코의 주요 이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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