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장애아동들은 전쟁 속 삶을 어떻게 살아갈까

학교 도서관에서 친구들과 놀던 14살 소년 예바 파블로바에게 "전쟁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소녀는 "전쟁이 비행기, 헬기, 탱크, 로켓, 폭탄, 드론이라는 건 안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머니 아냐스타샤에 따르면 간질 및 중등도의 지적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예바는 전쟁이 누군가 다른 누군가를 공격하는 상황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는 잘 모른다고 한다.

아냐스타샤는 "딸은 5살 정도의 지능으로, 우크라이나 군인과 다른 군인을 혼동하기도 한다. 누가 누구와 싸우는 것인지 전부 이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모녀는 우크라이나 중부의 '크리보이 로그'라고도 알려진 크리비 리히 지역에 살고 있다.
예바는 현재 특수 교육이 필요한 아동 233명이 다니는 학교에 다니고 있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모든 학생들은 건물의 방공호로 급히 대피한다.
예바는 "큰 소리가 날 때면 무서워진다"면서 "그러면 엄마가 내게 약을 주고, 기분이 나아진다"고 했다.

2022년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 이후 예바의 정신 건강과 학업 성취도는 나빠지고 있다.
아냐스타샤는 "포격이 이어지면 예바의 스트레스 수치가 높아지는데, 이는 간질 발작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가장 큰 두려움은 바로 살고 있는 도시가 최전선이 되는 것이다.
"딸은 14살이고, 다른 또래 소녀들처럼 예쁘게 생겼다"는 아냐스타샤는 "하지만 딸에게는 지적 장애가 있다. 언젠가 러시아 군인들이 딸을 해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로켓포 공격보다 더 무섭다"고 덧붙였다.
가장 취약한 이들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모든 아동의 삶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UN 아동기금(유니세프)은 다른 모든 분쟁이 그렇듯 장애 아동이야말로 이번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지적한다.
"장애 아동은 폭력과 피난, 장기간의 스트레스 노출에 특히 취약하다"는 설명이다.
유럽 전역의 장애인 옹호 단체를 대표하는 비정부기구인 '유럽 장애 포럼'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서는 전면전 발발 이후 약 30만 명이 전쟁 관련 부상으로 장애를 얻었으며,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은 180만 명 이상이다.

한편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여러 단체가 안전한 공간 제공 및 심리적, 정서적 지원을 통해 장애 아동과 가족들을 지원하고 있다.
키이우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소규모 그룹인 '리타이'도 이러한 단체 중 하나다. 이곳의 창립자 발렌티나 우바로바 또한 장애 아동의 어머니이다. '리타이'는 우크라이나어로 '날다'는 뜻으로, 장애 아동에게 피난처를 제공하여 이들이 이번 전쟁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발렌티나 우바로바는 2014년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루간스크 지역에서 탈출하며 국내 실향민이 되었다. 그렇기에 장애 아동을 키우는 전쟁 난민들이 직면한 어려움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다.
현재 발렌티나는 '리타이'를 통해 다른 여성들에게 인도적 지원, 교육 과정, 미술 치료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들의 창업도 돕고 있다. 아울러 장애 아동을 위한 행사와 여행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발렌티나는 "모든 아이들이 구경꾼이 아닌 진정한 영웅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가족'
2월의 어느 추운 일요일, 수도 키이우의 한 카페에 리타이 출신 여성들이 아이들과 함께 모였다.
그중에는 현재 러시아가 점령 중인 우크라이나 동부 마린카 근처의 작은 마을 출신의 국내 실향민인 나탈리야 구트닉과 12살 아들 나자르도 있다.

나자르는 2014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정확히 1년 전에 구순구개열을 가지고 태어났다. 어머니 나탈리야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아들의 인생은 전쟁으로 가득하다고 호소했다.
"우리가 살던 마을은 세 방향에서 공습을 받았다"는 나탈리야는 "공습은 쉼 없이 이어졌다. 우리는 절대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결국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가족은 대피할 수 있었다. 이후 나탈리야는 아들만을 데리고 홀로 키이우로 왔고, 남편은 다른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나탈리야는 "이제 아들은 항상 내가 곁에 있어야 하는 상태가 되었다. 아들의 손을 계속 잡아주어야 한다"면서 "내가 죽거나 사라질까 봐 두려운 듯하다"고 했다
"이 모든 일을 겪고 나니 아들은 말을 더듬게 되었고, 여전히 말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현재 나자르는 단어 몇 개, 짧은 문장만 구사할 수 있다. 유창하게 말하던 소년의 모습은 이제 사라졌다.
하지만 나탈리야에게 리타이는 단순한 지원 이상이었다. "새로운 가족을 찾은 듯한 기분"이라는 나탈리야는 "이곳에서 우리는 함께 희망을 나눈다"고 했다.
'용기와 사랑의 장소'
테티아나 사이엔코의 12살 난 아들 세르히는 지난해 익사 사고 이후 돌이킬 수 없는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 마비된 상태로 의식도 없으며 대화도 불가능하다.
테티아나는 "우리는 4층 아파트에 살았다. 폭발음이 도시를 뒤흔들 때마다 이웃들은 전부 지하로 달려갔다. 그러나 내가 아들을 업고 달리기에는 아들이 너무 컸다"고 회상했다.
"이에 도시에 폭탄이 떨어지는 내내 저는 그저 아들의 침대 옆에서 아들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들을 위한 안전한 곳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여전히 기적을 바랐던 테티아나는 주변에 도움을 청했고, 그렇게 루마니아 국경 근처 체르니우치에서 활동하는 우크라이나 자선단체 '미스토 도브라'로부터 답변을 받게 되었다.
마르타 레브첸코가 2016년에 설립한 이 단체는 현재 우크라이나 내 최대 아동 보호시설이다.
'미스토 도브라'는 현재 아동 280명을 돌보고 있으며, 부모를 잃은 이들이 대부분이다.
아울러 장애 아동을 위한 호스피스와 재활 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의료 전문가 73명이 아이들을 돌본다.

창립자 마르타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시작할 때 우리는 이 단체를 '용기와 사랑의 장소'라고 불렀다"고 했다.
마르타는 "전쟁 중 장애 아동은 종종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곤 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우리는 이들을 동등하게 대한다"면서 "장애 아동들도 똑같은 보살핌과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 우리는 이들도 우리의 아이들로 대한다"고 했다.
테티아나도 이에 동의했다. 아들 세르히가 비록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정기적인 재활, 마사지, 치료 등을 받으며 아들이 좋은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세르히가 이곳을 좋아하는 것 같다. 더 건강해 보이고 체중도 늘었다"는 테티아나는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되었다"고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