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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적 단속' 나선 중국 당국이 공개한 미얀마 스캠 범죄 단지의 실체

12시간 전
해외에서 송환된 수십 명의 중국 범죄자들이 비행기에서 내려 경찰에 의해 호송되고 있다
CCTV
중국 당국이 해외 스캠 범죄자들을 단속하는 장면을 중국 국영 매체 CCTV가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제가 뭘 느껴야 하나요?" 수갑을 찬 채 푹신한 감방에 앉아 있는 눈빛이 날카로운 남자가 물었다.

이 남성은 사업 파트너와의 의형제를 맺은 기념으로, 낯선 사람을 살해하도록 지시한 혐의에 대해 중국 조사관들에게 심문을 받는 중이다.

"그가 살아 숨 쉬고 있었나요?" 한 조사관이 물었다.

그는 "별로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 장면은 범죄 드라마에 나오는 장면이 아니라 중국 국영 매체의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실제 장면이다. 법원 절차가 외부로 좀처럼 공개되지 않는 중국에서 이런 장면이 공개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수갑을 차고 질문에 답하는 남자는 악명 높은 폭력조직 웨이 가문 조직의 일원 천 웨이다. 웨이 가문 조직은 미얀마 국경 도시 라욱카잉에서 수년 동안 처벌받지 않고 활동해 온 여러 강력한 폭력조직 중 하나다.

그의 자백 장면은 중국 관리들의 몇 달에 걸친 선전 활동의 일부일 뿐이다. 중국 당국은 이런 장면들로 중국인들에게 동남아시아의 수십억 달러 규모 사기 산업에 대해 경고하는 동시에, 수천 명을 가두고 수십억을 갈취한 이 산업의 배후 인물들에 대해 중국 정부가 단속을 벌이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한 조사관이 말했듯이, 중국이 보내고 싶어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누구든, 어디에 있든, 중국 인민을 상대로 그러한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는 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또는, 중국식 표현을 빌리자면, '닭을 죽여 원숭이를 겁주는 것'이다.

대가를 치르다

'웨이', '리우', '밍', '바이'는 가장 거대한 가문 조직들로 이들은 2000년대 초부터 미얀마 라욱카잉에서 세력을 키운, 마치 '대부' 같은 조직들이다.

그들의 주도 하에, 가난한 변두리인 라욱카잉은 화려한 카지노와 유흥가가 넘치는 도시로 탈바꿈했다.

보다 최근에는 일명 '사기 농장'이 등장했는데, 이곳에서는 사람들을 감금하고 온라인 사기를 강요했으며, 이를 거부하면 잔혹한 처벌이나 심지어 죽음에 이르기도 했다. 피해자들 중 상당수는 중국인이었고, 주로 중국 내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그러나 제국과도 같았던 이들 조직은 2023년에 무너졌다. 미얀마 당국이 그들을 체포해 중국에 넘겼기 때문이다. 그 후 중국 법원은 사기, 인신매매, 살인 등 여러 혐의로 이들을 재판에 회부했다.

푸른 수의를 입고 철창 안에 앉아 있는 첸 다웨이가 손을 모은 채로 자신의 범죄 사실을 자백하고 있다
CCTV
웨이 조직의 첸 다웨이는 중국 국영 방송 CCTV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범죄 사실을 인했다

이제 이들 조직이 본보기가 되고 있다. 밍 조직의 일원 11명과 바이 조직의 일원 5명이 사형을 선고받았고, 수십 명이 장기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리우와 웨이 조직에 대한 기소도 진행 중이다.

번쩍이는 수갑과 교도소 제복을 입은 모습에서 그들의 치욕스러운 몰락이 드러났다.

불과 2년 전 그들이 누리던 삶과는 천양지차다.

미얀마 사기 조직의 부상

라욱카잉의 조직들은 미얀마 군사정부의 현 수장인 민 아웅 흘라잉이 당시 이 지역을 지배하던 군벌을 축출하기 위한 작전을 지휘한 이후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는 협력적인 동맹을 찾고 있었고, 당시 군벌의 부관이던 바이 솨청이 그 조건에 부합했다.

바이는 라욱카잉 구의장으로 임명되었고, 그의 가문은 2,000명 규모의 민병대를 거느리게 되었다고 중국 매체들은 보도했다.

이러한 변화로 생긴 권력 공백 속에서 소수의 조직들이 빠르게 세력 기반을 확보하며 군사적, 정치적 권력을 손에 넣었다.

중국 수사 당국에 따르면, 웨이 가문은 국회의원 한 명과 군사 캠프 사령관 한 명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리우 가문은 수도와 전기 같은 주요 인프라를 장악하고 지역 치안 세력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바이 솨청이 마이크를 들고 연설하고 있다
CCTV
바이 솨청은 2010년 라욱카잉의 구의장으로 임명됐다

수년간 이들은 도박과 성매매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들은 사이버 사기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했으며, 각 가문은 수십 개의 사기 단지와 카지노를 운영하며 수십억 달러를 챙겼다.

중국 당국에 따르면, 이들 가족이 호화로운 연회와 고급 차량으로 사치를 누리는 동안, 그들의 사기 단지 안에서는 끔찍한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구출된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공통된 학대 양상이 있었다. 손가락이 칼로 잘려 나가고, 전기봉으로 감전당했으며, 반복적인 구타가 이어졌다.

명령에 불응한 이들은 작은 어두운 방에 갇혀 굶주림과 폭행을 당하다가 결국 굴복할 때까지 고통을 겪었다.

'사기 팬데믹'과의 전쟁

많은 중국인들이 높은 임금의 일자리 제안을 통해 미얀마로 유인됐다. 경기 침체와 청년 실업률이 높은 중국의 현실 속에서, 그 제안은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였다.

이러한 사기 단지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이야기들은 중국 사회의 일상 대화에까지 널리 퍼졌다. 택시 안의 대화에서부터 소셜미디어와 대중문화에서도 관련된 이야기들을 쉽게 들을 수 있다.

2023년 개봉한 블록버스터 영화 '고주일척'은 해외의 사기 단지로 인신매매된 중국인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수백만 명의 중국 관광객들이 태국 방문을 꺼리게 만들었다. 태국은 미얀마와 캄보디아의 사기 단지로 이어지는 '경유지'로 악명 높아져 있었다.

'고주일척' 영화 포스터 앞을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Getty Images
중국 조직들이 해외에 만든 범죄단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고주일척'은 2023년 크게 흥행했다

올해 1월, 중국의 대중의 관심은 왕싱이라는 무명 배우에게 쏠렸다. 그는 연기 일자리를 위해 태국으로 날아갔지만, 국경을 넘어 미얀마의 사기 단지로 끌려갔다.

그의 가족이 그를 찾는 과정은 중국 전역에서 화제가 되었고, 결국 왕은 구조되었다.

그러나 왕은 운 좋은 소수에 속한다. 여전히 수많은 중국인들이 동남아시아의 사기 단지로 사라진 가족을 찾고 있다.

"제 사촌은 4~5년 전에 그곳으로 유인당했습니다. 그 후 아무 연락도 없어요. 제 고모는 매일 울고 있습니다. 지금 상태를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한 웨이보 이용자가 지난달 이렇게 썼다.

싱가포르국립대의 중국정치 전문가 셀리나 호 부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 당국은 이번 대대적인 단속을 공개함으로써 국민 감정을 안정시키고 피해자 가족들을 안심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 배우 왕싱이 수사관들과 함께 자신이 당한 범죄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EPA-EFE/REX/Shutterstock
올 1월 중국 배우 왕싱은 태국에서 납치돼 미얀마 사기범죄 조직으로 끌려갔다가 극적으로 구출됐다

유엔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수십만 명이 여전히 이들 범죄 단지에 갇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 정부로서는 불쾌하겠지만, 이들 사기 단지의 운영자 상당수가 중국인이라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이는 상식에 가깝다.

"해외에 나가면, 제일 믿지 말아야 할 사람은 같은 중국인이다."

한 웨이보 댓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런 범죄 조직의 배후에 중국인이 있다는 사실은 중국의 국제적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습니다." 사이버 범죄 단지를 다룬 책 '스캠 : 동남아시아 사이버 범죄 단지의 내부'의 공동 저자 이반 프란체스키니는 BBC에 이렇게 말했다.

국내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중국 당국은 이러한 대규모 사기 네트워크를 뿌리 뽑겠다는 결의를 보여주려 하고 있다.

중국 관영 매체에 따르면, 2023년 이후 중국과 미얀마 당국은 사이버 사기에 연루된 중국인 5만7000명 이상을 체포했다.

중국 CCTV가 공개한 범죄단지 내부 화면. 수백 대의 컴퓨터로 가득 찬 방 안에 사람들이 앉아 일하고 있다
CCTV
동남아시아에 있는 바이 가문 조직의 범죄 단지에서는 다른 곳에서처럼 유인돼 넘어온 이들이 갇혀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당국은 이번 단속의 대상이 '거대 조직들'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지난 10월, 중국은 라욱카잉에서 '새로운 세대의 권력층'으로 불리는 또 다른 조직을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이 조직은 "악명 높은 가문들 못지않게 폭력적"이라고 당국은 설명했다.

또 다른 관영 다큐멘터리에서, 해당 조직을 수사하던 한 중국 관리가 상관의 말을 회상했다.

"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면, 너의 경력에는 영원한 오점이 남을 것이다."

중국이 이번 단속에 쏟아붓는 노력과 그에 따른 홍보를 고려할 때, 통계는 약간의 낙관적인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 내 사이버 사기 신고 건수는 지난 1년간 꾸준히 감소했으며, 당국은 이러한 범죄가 '효과적으로 억제되었다'고 밝혔다.

한 중국 관리가 다큐멘터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얀마의 사기 조직을 수사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중국에서 얼마나 행복한지, 그리고 안전하다는 감각이 중국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말입니다."

추가 보도 : 켈리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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