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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우중 열병식' 치른 북한…'김정은만을 위한 자리에 주애는 필요 없어'

3시간 전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식에서 손 흔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EPA/Shutterstock

북한이 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식을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치른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0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은 비가 오는 와중에도 강한 조명을 동원해 극적 효과를 노렸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첨단무기를 선보이며 위용을 과시했다.

김일성광장 주석단에는 중국과 러시아, 베트남, 라오스, 니카라과, 멕시코, 적도기니, 브라질, 이란, 베네수엘라, 인도네시아 등 총 11개국 외빈이 김정은 국무위원장 곁을 지켰다. 과거 70주년 행사 때의 두 배 수준이다.

한국 국가정보원 대북분석관 출신의 곽길섭 원코리아센터 대표는 BBC에 "김정은 위원장이 전체적으로 어떤 전략전술적 패를 잘 잡고 앞으로 나갈 교두보를 확실히 마련했다는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김정은의 조선'이라는 문구까지 나온 만큼 단순 기념일이 아니라 노동당 창건 80주년을 기념해 자신의 업적을 총 결산했다는 것.

특히 "김 위원장이 중러 서열 2위와 베트남, 라오스 최고지도자 등을 좌우에 대동하고 주석단에 오름으로써 김일성-김정일 시대를 뛰어넘는 외교력을 내외에 과시했다"며 "지난달 중국 전승절과 이번 당 창건일을 계기로 강화된 외교적 입지와 내부 체제 결속을 기반으로 탈 선대 및 독자노선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아울러 "오는 9차 당대회야말로 김정은 4기, 김정은 시대의 본격적일 출발로 볼 수 있다"며 "당 창건 80주년은 그 전야제 성격이 강하다"고 부연했다.

두진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유라시아센터장도 "북한이 올해 역대급 당 창건 행사를 진행함으로써 다가오는 9차 당대회를 위한 내부 결집 등 전략적 지위 상승 및 효과 도모를 극대화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베트남 최고지도자의 참석 등 북중러 연대가 중러 주도 글로벌 사우스 재결집의 장으로도 활용했다"고 강조했다.

신형 ICBM 등장

열병식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단연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20형' 이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11일 "최강 핵전략무기체계인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포-20형' 종대가 주로를 메우며 광장에 들어섰다"며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사거리 1만km 이상의 ICBM으로 미국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다는 무력시위를 한 것으로,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베트남, 라오스 등 아세안 국가 등의 최고위 인사들이 자리한 가운데 핵 투발능력을 과시하며 자신들의 달라진 핵 보유국 지위 및 전략적 위상 등을 선전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북한은 지난달 신형 대출력 고체엔진 생산 계획을 공개하면서 이를 신형 ICBM인 '화성-20형'에 사용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가장 적대적 국가'

10일 밤 10시가 되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석단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장병들은 '김정은 결사옹위', '절대충성', '절대복종'을 외쳤다.

이어 각군의 진군이 이어졌다. 특히 제1군단이 등장하자 조선중앙TV는 "공화국 남쪽 국경의 강철 보루"라며 "가장 적대적인 국가와의 첨예한 대치선에서 우리의 사상, 우리의 제도를 굳건히 사수하는 무적의 강병들을 이끌어 일선 영장들이 서릿발 장검을 빗겨 들었다"고 치켜세웠다.

제1군단은 북한 강원도 회령군에 위치한 만큼, 여기서 언급된 '가장 적대적인 국가'는 한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열병식 연설에서 "적을 압도하는 정치 사상적, 군사 기술적 우세로써 방위권에 접근하는 일체의 위협들을 소멸하는 무적의 실체로 계속 진화되여야 하며… 정예의 무력으로 끊임없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과 한국을 직접 위협하는 표현은 하지 않았는데 이는 미국과의 대화 재개를 염두에 두고 다소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또 럼, 러시아 안전보장회의 부의장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그리고 중국 국무원 총리 리창과 함께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로동당 창건 8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연설하는 모습
Reuters
2025년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한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안전보장회의 부의장의 모습(왼쪽부터 차례대로)

김정은 옆에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올해 열병식에는 중국과 러시아, 베트남, 라오스, 니카라과, 멕시코, 적도기니, 브라질, 이란, 베네수엘라, 인도네시아 등 총 11개국 외빈이 참석했다. 70주년 당시 6개국(중국, 쿠바, 베트남, 라오스, 필리핀, 러시아 등)의 두배에 가까운 수치다.

특히 열병식 주석단 김 위원장 양옆으로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와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자리해 눈길을 끌었다. 이는 베트남의 권력 서열 1위이자 고령(1957년생)의 또 럼 서기장을 예우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마찬가지로 공산당 일당 체제인 베트남에서 실질적으로 국가를 이끄는 최고 지도자는 공산당 서기장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럼 서기장 왼편에 자리했다.

이번에 방북한 11개국 대표단 중 정상급은 또 럼 베트남 서기장과 통룬 시술릿 라오스 국가주석 등 두 명이다. 양국 최고지도자가 평양을 찾은 것은 각각 18년, 14년 만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동남아 10개국으로 구성된 아세안과의 외교에 공을 들여왔다. 북한이 유일하게 참여하고 있는 역내 다자안보협의체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다.

주애는 안보여

예상과 달리 김정은 위원장의 딸 주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리설주 여사의 등장도 없었다. 다른 귀빈들도 부부 동반을 하지 않았다.

이는 지난달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아내 펑리위안 여사와 손님들을 영접한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에 대해 곽길섭 대표는 "당 창건 80주년 행사는 오로지 김정은만 빛나게 하는, 김정은만을 위한 자리"였다며 "김정은을 빛나게 하는 중국, 러시아 등 사회주의 최고지도자들이 옆에 있었기에 주애는 필요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등장하면 오히려 시선만 분산되고 후계자 억측 등 역효과가 난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극장국가'인 북한은 주애를 김정은을 빛나게 하는 '조명'으로 활용하고 있다"면서 "주애를 후계자 또는 주인공으로 바라보는 데 대해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9일 저녁 평양 5월1일경기장에서 경축대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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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9일 저녁 평양 5월1일경기장에서 경축대회가 열렸다. 북한이 대집단체조를 선보인 것은 지난 2020년 당 창건일 공연 후 5년 만이다

5년만에 대집단체조

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둔 9일 저녁, 평양 5월1일경기장에서 경축대회가 열렸다. 불꽃놀이로 시작해 대집단체조(메스게임)와 예술공연 '조선노동당 만세'가 이어졌다. 북한이 대집단체조를 선보인 것은 지난 2020년 당 창건일 이후 5년 만이다.

김 위원장은 행사에 앞서 귀빈을 영접할 때 리창 총리, 또 럼 서기장, 메드베데프 부의장 순서로 악수했다. 최고지도자는 럼 서기장뿐이지만 리 총리부터 악수하면서 중국을 가장 예우하는 모습이었다.

주석단에는 김 위원장 왼쪽에 또 럼 서기장이, 오른쪽에는 리창 총리가 자리했다. 메드베데프 부의장은 럼 서기장 왼쪽에 착석했고 박태성 내각 총리가 리 총리 오른쪽에 앉았다.

한편 대집단체조 참가자들은 실전훈련에서 6시간 이상 대소변을 참고 음식물 섭취를 제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국제사회는 이를 '인권 유린'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이날 대집단체조에 대해 "우리 국가의 문명성과 강대성을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자평했다.

하루종일 비

평양은 10일 하루종일 비 예보가 있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9일 야간에 열병식이 미리 열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은 당 창건일 당일인 10일 밤 열병식을 진행했다. 진군하는 병사들 머리 위로 굵은 빗줄기가 떨어지는 모습이 내내 카메라에 잡혔고 북한 주민들도 자정이 임박한 시간까지 차가운 비를 흠뻑 맞아가며 연신 인공기를 흔들었다.

관련해 조선중앙통신은 13일 김정은 위원장이 "행사 기간 불리한 날씨가 지속되였지만 그런 속에서도 모두가 너무도 완벽하게, 너무도 훌륭하게 자기 몫을 수행해주었다"며 "세계적인 관심과 주시 속에서 우리 당창건 여든돌을 성대하면서도 완벽하게 경축했다"고 언급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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