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의 출마 포기'가 해리스 부통령, 민주당, 트럼프 후보에게 의미하는 바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미국 대선을 뒤흔들고 있다. 지난 몇 주간 완주 의사를 강하게 밝혔으나, 지난 21일(현지시간) 오후 결국 민주당 대선 후보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대통령의 이 같은 결정이 카멀라 해리스 현 부통령과 민주당,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겐 어떤 의미일까.
위험하지만 민주당 대부분이 받아들일 카드, 해리스
우선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 사퇴를 선언함과 동시에 해리스 부통령을 차기 후보로 지지하고 나서면서 해리스 부통령이 나서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큰 힘을 얻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4년 전 해리스를 자신의 부통령으로 삼았던 건 최고의 결정이었다며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의 지지를 받아 영광이라면서, 후보직을 얻어내고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최종 후보를 선정할 민주당 전당대회가 채 1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어지는 불확실성을 끝내고자 민주당원 대부분이 현 대통령의 지지를 따라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할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기엔 실질적이고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
우선 해리스 부통령은 헌법이 정한 대통령 자리 승계 1순위다. 최초의 흑인 여성에게 대통령 출마 티켓을 넘기지 않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도 민주당 입장에선 끔찍한 수가 될 것이다. 게다가 해리스 부통령이 다음 후보가 되면 지금껏 바이든-해리스 측이 모금한 1억달러(약 1390억원)에 가까운 선거 자금도 즉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에 따르는 위험도 있다. 여론 조사상 바이든과 지지율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트럼프 후보와 단독으로 맞붙여도 바이든과 비슷한 지지율을 기록 중이다.
2번째 위험은 바로 부통령 재임 시절 보여준 부진한 모습이다. 집권 초기, 해리스 부통령은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발생한 이민자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라는 임무를 맡았다.
이는 벅찬 도전이었고, 여러 실수와 실언을 하며 도마 위에 올랐다.
한편 해리스 부통령은 바이든 행정부에서 낙태권에 관해 가장 최전선에 서 있던 인물로, 이에 대해선 훨씬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민자 문제로 인한 첫인상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리고 아마도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해리스 부통령이 이미 2020년 민주당 대선 후보 자리를 두고 출마한 적이 있으며, 처참하게 퇴장했다는 것이다.
초반에는 주목을 받는 듯했으나, 더듬거리는 인터뷰,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듯한 관점, 선거 캠페인 관리 부족 등으로 인해 그는 초창기 프라이머리(예비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중도 하차했다.
그렇기에 민주당 입장에서 ‘해리스 카드’는 위험이긴 하지만, 현시점에서 그다지 안전한 선택지도 없다. 트럼프가 승리할 수 있다는 위험성은 그만큼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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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하지만 흥미진진할 민주당 전당대회
지난 50여 년간 정당의 전당대회는 다소 지루한 행사로 전락했다. 각 당의 대선 후보를 위해 며칠간 송출되는, 매 순간이 세심하게 각본처럼 구성된 TV 광고가 됐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 후보가 일반적인 후보 수락 연설과 달리 지나치게 길고 때로는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긴 했지만, 지난주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만 해도 그랬다.
그러나 다음 달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열릴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는 매우 다를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민주당과 바이든 선거 캠프 측이 준비한 각본이 무엇이든 간에 이젠 쓸모없게 됐다.
민주당이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한다고 해도 전당대회에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계획하고 통제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해리스 부통령이 당의 통합을 끌어내 지지받지 못한다면 이번 전당 대회는 다양한 후보가 때로는 카메라 앞에서 공개적으로, 때로는 비공개적으로 후보 지명을 놓고 무한으로 경쟁하는 장이 될 수도 있다.
미국 대중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방식의, 예측할 수 없어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생생한 정치극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강한 자 vs 쇠약한 자' 카드 사라진 공화당의 전략은?
앞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는 마치 아주 세심하게 조정된 기계 같았다. 공화당이 내세우는 가장 인기 있는 의제를 홍보하고, 바이든 대통령 한 사람을 향한 비판에 집중했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공화당은 엉뚱한 사람을 겨냥한 셈이 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출마를 포기했다고 밝히면서 트럼프 후보를 중심으로 한 공화당의 계획도 뒤집혔다.
공화당은 이젠 쓸모 없어지게 된 상대 당의 약점을 공략하는 데 1주를 통째로 쓴 셈이 됐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트럼프 후보는 유명 프로 레슬링 선수인 헐크 호건과 데이나 화이트 UFC 회장이 입장해 지지를 호소하고, 가수 키드 록이 공연한 끝에 시끌벅적하게 입장했다. 자신들이 내세운 후보의 힘과 활력을 부각하는 공화당의 전략이다.
대조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쇠약함을 부각하고, 젊은 남성 유권자의 표심을 빼앗으려는 전략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현재 어떻게 되든 민주당 측 후보는 트럼프보다 훨씬 더 젊을 것이다. 해리스 부통령이든, 함께 거론되는 민주당 내 다른 젊은 주지사든 누가 되든 간에 ‘강한 자 vs 쇠약한 자’와 같은 전략은 이제 구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다.
해리스가 후보로 나선다면 대신 공화당은 자신들이 현 행정부의 실패라고 보는 부분을 해리스와 연결 지으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 몇 달간 공화당은 해리스 부통령을 ‘국경의 차르’라고 묘사했다.
전직 검사 출신인 해리스 부통령은 민주당 내에서 진보적인 성향으로 분류되지 않으나, 과거 공화당이 그를 어떻게 공격했는지 생각하면 아마도 그를 ‘급진 좌파’로 몰아갈 수도 있다.
아울러 차기 후보로 누가 나서든 간에 공화당이 민주당이 바이든의 고령 리스크를 은폐하고 국가를 위험에 빠뜨렸다며 비난할 것은 분명하다.
대선까지 앞으로 몇 달 밖에 남지 않은 가운데 모두가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상황에서 발을 내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