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트럼프의 영국 국빈방문 … 돈독한 양국 관계 보여줬지만 영향력에는 한계
이번 주 국빈 자격으로 영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체커스에서 열린 키어 스타머 총리와의 회담보다 윈저성에서 보낸 하루에 더 열광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번 방문 기간 스타머 총리의 환대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대표단은 이를 칭찬하고자 애썼다.
총리의 시골 별장인 체커스는 분명 인상적인 회담 장소이며, 버킹엄셔의 시골 지역인 이곳을 찾은 미국 지도자를 환영하고자 레드 데블스(영국 공수부대)가 하늘에 양국의 국기를 휘날리는 등 화려한 볼거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스타머 총리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고, 또 18일 공동 기자회견에서 두 정상의 돈독한 관계가 드러나긴 했으나,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을 가장 매료시킨 건 17일의 윈저성에서 찰스 3세 국왕 부부가 주최한 행사였다.
수지 와일스 미 비서실장에 따르면 이번 국빈 방문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단연 이날 저녁 윈저성 세인트 조지 홀에서 열린, 160명의 손님을 위한 화려한 만찬이었다.
오랫동안 왕실에 대한 깊은 동경심을 드러냈던 트럼프 대통령이기에 왕이 주관하는 건배사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체커스 상공에 아무리 많은 제트기가 동원된다고 해도 말이다.

이 같은 국빈 방문은 양국 정상이 더 개인적으로 친밀해지고, 각국 관계자들이 업무적으로 관계를 구축할 기회가 된다. 또한 양국의 긴밀한 관계를 대외적으로 화려하게 과시할 기회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일정은 양측 모두에게 순탄하게 흘러갔다.
양국 간 의견 차이가 드러날 수도 있었으나, 영미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별다른 어색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일례로 팔레스타인을 공식적으로 국가로 인정할 영국의 계획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트럼프 대통령은 반대 입장을 표하면서도 스타머 총리가 하마스를 규탄하자 환하게 미소 지으며 다정하게 등을 두드렸다.
또 다른 불편한 주제인, 제프리 엡스타인과의 친분 문제로 인해 해임된 피터 멘델슨 전 주미 영국대사가 언급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침묵을 지켰다. 거의 말을 하지 않는 대신 즉시 스타머 총리에게 발언권을 넘겼다.
이후 두 정상은 참모진 없이 단둘이 거의 1시간 동안 가자지구 및 우크라이나 문제에 관해 논의했다.
기자회견에서는 매우 우호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핵심 사안에 대해 양측 모두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는 점은 금세 확인되었다.
이번 국빈 방문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그 어떤 지도자가 오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다.
체커스에서 만난 와일스 비서실장에게 이번 방문이 영국이 무역, 관세, 국제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정책에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 수 있을지 물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솔직했다. 전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즉 트럼프 대통령이 이 국빈 방문을 얼마나 즐겼든, 윈저성에서 인상적인 밤을 즐겼다고 한들 주요 국제 현안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토록 화려한 의전과 행사를 보여준 스타머 총리는 적어도 외교적 불이익 없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중하게 반대할 권리를 얻은 듯하다.
미국 대통령과의 대립은 큰 대가를 치르게 될 수도 있으나, 영국은 신중하게 관계를 조율하며 다른 국가들에 부과된 가혹한 고율의 관세를 피해왔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스타머 총리는 굴욕적인 호통을 듣거나 조롱조의 별명을 얻지도 않았다.
분명 이번 만남이 올해 백악관 집무실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세계 정상이 당한 어색한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은 애초에 크지 않았다.
그래도 공동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서 평소 보여 주던 모습보다 훨씬 더 여유로운 태도로 기자들의 질문에 임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토록 호화로운 국빈 방문은 스타머 총리의 '트럼프 카드('으뜸 패'라는 뜻)'였을까. 흠잡을 데 없이 잘 짜인 행사였으며, 분명 트럼프와 멜라니아 여사 모두 크게 만족한 모습이었다.
스타머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을 바꾸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적어도 영-미 관계가 소원해질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도 멀어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