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네비게이션 검색 본문 바로가기

증가하는 어민들의 사망 사고 … 기후 변화 때문일까?

5시간 전
어선 앞 어부의 모습
BBC/Hosu Lee
선주 홍석희 씨는 바다가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 전화가 걸려 왔을 때, 홍석희 씨는 제주도 해안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소유한 어선이 전복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불과 이틀 전, 바다에서 길게 머물며 풍성한 조업을 하길 바라며 홍 씨가 바다로 보낸 배였다. 그러나 바람이 점점 거세지면서 선장에게는 귀항 명령이 내려졌다.

항구로 돌아오던 중, 두 방향에서 몰아친 거센 파도가 소용돌이를 일으켰고, 배가 뒤집혔다. 갑판 아래 선실에서 잠을 자던 선원 10명 중 5명이 물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

선주인 홍 씨는 "그 소식을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지난해 한국 주변 해역에서는 164명이 사고로 숨지거나 실종되었다. 전년 대비 75%나 증가한 수치로, 대부분 어선 침몰 혹은 전복 사고에 휘말린 어민들이다.

'제주어선주의회' 회장이기도 한 홍 씨는 "날씨가 변했다. 매년 더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바다에서는) 소용돌이가 갑자기 생겨납니다. 우리 어민들은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바다 한가운데서 전복된 선박과 출동한 구조대
South Korean Coastguard
올해 2월 발생한 어선 전복 사건으로 홍 씨의 선원 5명이 익사했다

이처럼 사망 사고가 급격히 늘자, 한국 정부는 조사에 착수했다.

올해, 관련 전담팀의 책임자는 사망 사고가 증가한 원인으로 고령화된 한국의 어업 인력, 외국인 노동자 의존 심화, 미흡한 안전 교육 등과 더불어 기후변화를 지목했다.

비교적 수심이 얕은 한반도 주변 바다는 전 세계 평균보다 훨씬 빠르게 더워지고 있다. 1968~2024년 사이 한국 주변 해역의 평균 수온은 1.58 °C 상승했다. 이는 0.74 °C인 세계 평균 상승폭의 2배가 넘는다.

수온이 높아지면 태풍과 같은 열대성 폭풍의 강도가 더욱 거세지고, 바다에서는 극단적인 기상이변이 자주 발생하게 된다.

아울러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수온 상승으로 인해 원래 한반도 주변에 살던 일부 어종이 떠나가고 있다. 이로 인해 어민들은 생계를 위해 더 먼 바다까지 나가야 하고, 여기에는 더 큰 위험이 따른다.

환경단체들은 "한국의 바다에서 계속되는 이 비극을 멈추려면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다.

안개 속 조업 중인 어민들의 모습
BBC/Hosu Lee
일부 어종은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사라지고 있다

6월의 어느 비 내리는 아침, 제주도의 중심 항구는 어선들로 북적이었다.

선원들은 바다와 육지를 분주히 오가며 연료를 채우고, 다음 항해에 쓸 물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편에는 선주들이 부두를 따라 서성이며 불안한 눈빛으로 이 모든 준비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선주 김승환(54) 씨는 "배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늘 걱정된다. 예전보다 더 위험해졌기 때문"이라며 "전보다 바람을 예측하기 훨씬 어렵다. 때로는 정말 위험할 정도로 거세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몇 해 전부터 자신의 수입원인 은빛 갈치 떼가 점점 보기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그 결과 수입은 반 토막 났다.

이에 김 씨의 선원들은 갈치를 찾아 더 깊고 험한 바다로 나가야 한다. 때로는 대만 근처까지 남쪽으로 멀리 항해하기도 한다.

"요즘은 멀리 나가서 조업하다 보니, 폭풍 경보가 발령되어도 금방 돌아올 수가 없습니다."

"연안에서 조업하면 안전하겠지만, 먹고살려면 멀리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갈치 상자
BBC/Hosu Lee
제주도의 어민들은 요즘 갈치 잡기가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한국해양대학교의 국승기 교수 연구팀이 최근 잇따른 해양 사고에 대해 조사한 결과, 한국 주변 해역은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4년 기준 강풍, 폭풍해일, 태풍 등 한반도 주변에서 발령된 해상 기상특보 횟수가 2020년에 비해 무려 65% 증가한 것이다.

국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날씨로 인해 선박 전복 사고가 늘고 있다. 특히 먼 바다로 나가고 있는 소형 어선들이 긴 항해나 거친 파도에 견디지 못하고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한편 부경대학교의 대기과학 전문가인 김백민 교수는 기후변화가 강하고 갑작스러운 돌풍 발생 가능성을 높이는 조건을 조성하나, 아직 명확한 추세는 확인되지 않았다며,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와 장기적인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했다.

노란색 상자들이 쌓인 어선과 어민의 모습
BBC/Hosu Lee
선장 박 씨는 이 작은 배에서 멸치를 잡는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안개 낀 어느 아침, 취재진은 남해안에서 25년 넘게 멸치를 잡아 온 박형일 선장의 작은 어선을 타고 출항했다.

박 씨는 분위기를 띄우려 노래를 흥얼거렸으나, 밤새 바다에 던져두었던 그물 가까이 다가가자 금세 낯빛이 어두워졌다.

끌어올린 그물에는 멸치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신 수많은 해파리와 잡어들만 뒤엉켜 있었다.

분리해 낸 후에도 멸치는 단 2상자를 채울 양밖에 되지 않았다.

"예전엔 하루에도 이런 상자 50~100개는 채웠다"는 박 씨는 "하지만 올해는 멸치가 사실상 사라졌다. 이제는 해파리를 더 많이 잡는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이것이 바로 지금 한국 연안의 어민 수만 명이 처한 현실이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해역의 오징어 어획량은 92%, 멸치 어획량은 46% 줄어들었다.

작업자 2명이 보트 갑판에서 생선 분류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
BBC/Hosu Lee
생선 분류 작업 중인 모습. 갈수록 멸치 어획량이 줄어들고 있다

박 씨는 오늘 잡은 멸치도 상품으로 내놓기는 어려운 수준이기에 사료용으로 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오늘의 조업은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그는 한숨을 쉬며 연료비를 낼 정도만 간신히 버는 수준으로, 선원들 인건비는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지금 바다는 엉망이다.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다"는 설명이다.

"전 이 일을 사랑했습니다. 예전엔 내가 잡은 생선이 누군가의 식탁에 오른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잡을 게 거의 없어지면서 그 자부심도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생계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청년 세대는 이 산업에서 등을 돌렸다. 2023년 기준, 한국 어민의 절반 가까이가 65세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전만 해도 그 비율은 3분의 1에도 미치지 않았다.

이에 나이 든 선장들은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주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안전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언어 장벽으로 인해 선장과 의사소통도 힘들다. 사고 위험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영국의 환경단체 환경정의재단(EJF)의 정우진 연구원은 이에 대해 "비극적인 악순환"이라고 표현했다.

극단적인 기상이변, 더 먼 바다까지 나가야 한다는 압박감, 급등하는 연료비, 값싼 미숙련 외국인 노동자 의존도 증가 등이 맞물리며 "재난을 만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두 어부의 생전 사진이 담긴 휴대전화 화면
BBC/Hosu Lee
어부였던 정은(왼쪽) 씨와 영묵(오른쪽) 씨는 올해 어선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올해 2월 9일, 여수 인근 해역에서 대형 어선 한 척이 갑자기 침몰해 선원 10명이 목숨을 잃었다. 매서운 추위와 강풍이 몰아치는 날로, 소형 선박의 출항은 아예 금지된 상태였으나, 해당 선박은 강풍을 견딜 만큼 튼튼하다고 판단되어 출항을 감행했다.

정확한 침몰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김영묵(63) 씨도 이날 숨진 이들 중 하나다. 40년간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며 곧 은퇴를 앞두고 있었던 그는 그날 아침 배의 빈자리를 메워 달라는 전화를 받고 바다로 나갔다.

아직도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딸 이안 씨는 "그날은 너무 추워서 저체온증에 빠지면 살아남기 힘든 날씨였다. 특히 아버지처럼 나이가 있는 분들은 더욱 그렇다"고 토로했다.

이안 씨는 선주들이 사고의 원인을 너무 쉽게 기후변화 탓으로 돌린다고 지적했다. 비록 날씨가 나빠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할지라도, 결국 선원들의 안전을 책임지고 위험 요소를 판단하는 건 선주의 몫이라는 주장이다.

"결국 출항 여부는 그들이 결정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휴대전화 속 사진을 보여주는 두 여성의 모습
BBC/Hosu Lee
영묵 씨의 딸 이안(오른쪽) 씨는 선주들이 선박 안전 환경을 개선해주길 바란다

이안 씨가 어렸을 적만 해도 아버지의 냉장고에는 게와 오징어가 가득했다.

"지금은 어획량이 턱없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회사들은 어부들을 바다로 내보낸다"는 이안 씨는 "이분들은 평생 어부로 살아왔기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그래서 몸이 쇠약해져도 계속 바다에 나간다"고 했다.

한편 이안 씨는 선주들이 노후화되고 있는 선박 안전 환경에도 더욱 신경 써주길 바란다고 했다.

"회사는 보험이 있어서 배가 침몰하면 보상을 받지만, 사랑하는 이를 잃으면 대체할 수 없습니다."

당국은 날씨를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현재 어민들과 협력하여 선박 안전 강화에 나섰다. 취재진이 홍 씨와 함께 있을 때도 정부 측 조사관들이 나와 그가 소유한 다른 2척의 배를 점검했다.

정부 전담팀은 선박에 안전사다리 설치, 선원들의 구명조끼 착용 의무화, 외국인 선원 대상 안전 교육 의무화 등을 권고하고 있다. 아울러 수색 및 구조 작업을 개선하고, 어민들에게 세분화된 실시간 기상 정보를 제공하고자 노력 중이다.

일부 지방 정부는 바다를 정화하고자 어민들이 잡은 해파리를 구매하고 있으며, 오징어 어민들에게는 파산 방지를 위한 대출을 제공하는 한편 은퇴를 장려하고 있다.

배를 몰고 있는 남성의 모습
BBC/Hosu Lee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UN식량농업기구(FAO)는 탄소 배출과 지구 온난화가 현재 추세대로 지속될 경우 금세기 말까지 한국의 총 어획량은 거의 3분의 1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한다.

40대 후반인 박형일 선장은 "미래가 참 암울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최근에는 추가 수입을 위해 어획 과정을 담은 유튜브 채널도 개설했다. 3대째 이어온 일이지만, 그가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그 시절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바다로 나가는 것이 낭만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모험심도 느끼고, 보상도 있었습니다."

"요즘은 정말 힘듭니다."

BBC NEWS 코리아 최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