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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의 활기를 찾아준 SNS', 경력 단절 여성들의 인플루언서 커머스

1일 전
SNS 인플루언서 양지혜 씨의 인스타그램
양지혜
8년 차 인플루언서 양지혜 씨는 몇 년간의 공동구매 판매 경험으로 2년 전 뷰티 브랜드를 런칭했다

"이번 공구는 직접 써봐서 더 자신 있는 제품이에요. 인터넷 최저가보다 저렴하게 들여왔으니, 이번 기회에 꼭 구매하세요."

인스타그램 등 SNS의 숏폼 영상을 무심코 올리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접했을 법한 영상들. '공동구매 인플루언서'다.

SNS에서 인기를 끄는 '인플루언서'가 1분 남짓의 짧은 광고 영상을 제작해 상품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일이다.

판매 방송은 TV 쇼호스트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온 기성세대에게는 다소 어색한 일일 수 있지만, 젊은 층들에게는 이미 너무 익숙한 장면이다.

"이 일을 한지 이제 어느덧 8년이 됐네요. 제 나이가 이제 47살이니까요."

양지혜 씨는 6만 5000 여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대형 인플루언서다.

그는 수년 간 자신의 SNS를 통해 공동구매 판매를 하다 최근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했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8년 전의 양 씨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공구, 왜 인기있나?

화장품을 소개하는 영상을 촬영하는 인플루언서
Getty Images
인플루언서 커머스 전문 기업 대표 오종철 씨는 "고객이 먼저 사용해보고 판매하는 '소비자 간 거래 시대'가 열렸다"고 말했다

'인플루언서 커머스' 시장이 최근 몇년 새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인플루언서 마케팅 기업 레뷰코퍼레이션이 발간한 2025년 2분기 마케팅 트렌드 리포트를 보면 MZ세대의 72.3%가 인플루언서의 리뷰 혹은 추천을 통해 제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비단 국내 만의 트렌드는 아니다. 골드만삭스는 2023년 약 2500억 달러 (약 348조 3000억원)로 추정되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글로벌 시장 규모가 2027년 약 4800억 달러(약 668조 7300억원)로 성장할 것이라 예측했다.

국내 인플루언서 커머스 전문 기업 안목고수 대표 오종철 씨는 SNS 인플루언서 팬덤의 경우, 일반 스타 팬덤과는 달리 수평적 관계라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옆 집에 사는 '언니' 같은 관계가 구축 가능하단 것이다.

오종철 씨는 2017년 SNS를 통한 공동구매 진행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인플루언서 커머스 사업체를 만들었다. 그는 인플루언서를 내세워 효소 공구 트렌드를 주도한 장본인이다. 2021년에는 인플루언서 공구 사업으로 연 매출 100억 원을 달성했다.

"정보도 너무 많고, 상품도 너무 많은 시대잖아요. 판매자가 물건을 판매하고 브랜딩하는 것 보다 인플루언서들이, 고객의 입장에서 먼저 사용해보고 좋아서 판매를 한다면 더 효과적일 겁니다. 소비자 간의 거래 시대가 열린 것이죠."

오 씨는 관계가 자산으로 치환되는 '관계 자산'이 인플루언서 커머스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몇 명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팔로워들이 얼마만큼 이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과 일치하는지, 또 그 팔로워과의 관계를 얼마나 잘 유지해오고 있는지 등이 자산으로 치환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겁니다."

"매스미디어 사회에서 소셜미디어 사회로 변화하면서 개인의 힘이 어느 때보다 막강해진 시기에 한 개인의 관계 자산이 얼마든지 치환될 수 있게 된 것이죠."

누군가에겐 '인생의 원동력'

광고를 촬영하는 인플루언서 양지혜 씨
양지혜
두 아이를 양육하며 늘 일에 목말라 있던 양지혜 씨는 출산 후 운동 영상을 올리던 것을 계기로 대형 인플루언서가 됐다

인플루언서, 그 중에서도 특히 공동구매를 진행하는 인플루언서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화려한 겉모습으로 SNS 이용자들의 이목을 끌고, 그 인기를 이용해 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두고 일부는 '팔이피플'이라며 조롱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같은 인플루언서 커머스는 어떤 이들에겐 일생일대의 기회이기도 하다. 뭐든 열심히 해도 안 풀리는 것 같은 삶을 다시 힘내어 일어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8년 차 인플루언서 양지혜 씨에게도 그렇다.

8년 전, 양 씨는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엄마이자 주부였다. 대학 시절 바이올린을 전공한 그는 늘 일에 갈증이 있었다고 했다.

"자아 성취도 좀 하고 싶고, 일도 하고 싶더라고요. 아이들 용돈, 학원비 정도 벌어보자, 하는 마음에 여기저기 취업 지원서를 냈지만 10년 정도 일을 쉰 저를 받아주는 덴 없었죠."

"인플루언서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으로 SNS를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주부가 집에서 아이 키우면서 편히 할 수 있는 게 SNS더라고요. 아기 낳은 지 얼마되지 않아 살이 꽤 쪘었는데, 다이어트 기록을 제 SNS에 하나씩 올리기 시작했어요. 외로운 마음에 다른 SNS 이용자들과 댓글로 소통도 하고 싶고, 온라인 친구도 만들고 싶어서 시작하게 된 게, 많은 엄마들에게 공감을 샀나봐요."

SNS를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아, 많은 엄마들이 양 씨에게 운동법과 운동 루틴에 대해 문의해왔다. 양 씨가 올리는 운동 영상들의 조회수도 점점 늘기 시작했고, 팔로우 수도 증가했다.

그는 "주부들 다 같이 조금씩 예뻐지고, 행복해지자는 마음으로 하다 보니, 점점 많은 팔로워들이 '언니가 쓰는 제품도 공유해주세요'라고 요청하더라"며 "자연스럽게 공동구매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그는 공구 판매를 했던 경험을 기반으로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해 약 2년 전 자신의 뷰티 브랜드를 런칭했다. 다른 이들의 제품이 아닌, 자신의 제품을 SNS를 통해 홍보하고, 판매한다. 최근에는 해외 수출도 시작하며 일본, 태국, 미국 출장도 다니게 됐다.

"늘 365일 열심히 사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니 그런 점이 교육이 됐나 봐요. 제 아이들이 또래답지 않게 정말 열심히 살고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 같아요."

기후 캐스터로 SNS 인플루언서 활동을 이어가는 정주희 씨
정주희
SBS 기상캐스터 출신 정주희 씨는 출산 후 경력 단절로 좌절을 겪었지만 이내 전문성을 살려 '기후 캐스터' 인플루언서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약 7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정주희 씨는 SBS 기상캐스터 줄신이다. 여느 방송인 지망생들과 마찬가지로 바늘 구멍 같은 경쟁률을 뚫기 위해 20대를 쉴틈 없이 달려왔지만, 결혼 후 아이가 찾아오면서 일을 그만두게 됐다.

"거의 임신 7개월까지는 방송국에 다녔어요. 날씨 팀 부장님께 '아이를 낳고 다시 일하고 싶다, 3개월만 쉬고 오겠다'고 의사를 밝혔고, 제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 이유에 대해 프레젠테이션까지 했죠. 하지만 다른 선배들도 그랬듯이, 프리랜서 계약직이었던 저는 다시 복귀할 수 없게 됐어요."

정 씨는 방송업계에 일하는 동안 늘 불안했다. 불안정한 직업적 특성 상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계속 봐야 했고,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행사 MC, 기업 아나운서, 성우 등 다른 일들도 항상 눈여겨봤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동안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며 대책이 시급하다는 뉴스 보도가 끊임없이 들려왔지만, 정작 그 뉴스를 구성하는 기상캐스터인 정 씨는 출산 후 다시 본업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아이를 낳고 돌아갈 곳이 없어져 버리니까, 내가 그동안 정말 열심히 살아왔는데, 결국 나한테는 남는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어떻게 살지, 하는 마음도 들었고요. 늘 누군가에게 평가 당하는 일을 해왔다 보니 자존감도 많이 떨어져 있었더라고요."

"진로 고민을 30대 중반이 되어서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죠. 내가 뭘 좋아하는지 고민하고, 자기계발 서적들을 하나씩 읽어보기 시작했어요. '나는 이제 쓸모 없는 인간인가보다'라는 무의식적인 생각을 없애려고 노력하던 시기였어요."

날씨, 기상 일에 전문성이 있던 정 씨는 그러던 중 '기후변화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을 수강하게 됐다.

"저는 기상 일을 했었고, 결국 극단적인 날씨의 본질은 기후 위기이니, 이 분야를 내 스타일대로 알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일 날씨를 전했던 꾸준함을 바탕으로, 환경 보호를 실천하는 모습을 SNS에 꾸준히 보이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정 씨는 기후 공부를 시작했고, 자신의 SNS에 본인이 공부한 내용과 그것을 기반으로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모습을 업로드했다.

정 씨는 현재 다른 다수의 인플루언서처럼 공동구매를 진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SNS를 통해 '기후 캐스터'가 된 그는 여러 기업과 손을 잡고 친환경 테마의 행사에 동참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대학교 강단에 서서 '창업의 시대가 아닌 창직의 시대'라는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방송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내 가치가 정의가 됐다면, 이제 내가 만들고픈 콘텐츠를 만들고, 또 생각하지 못한 기회들이 생기면서 '울타리가 꼭 있어야만 되는 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SNS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브랜딩이 되는 시대잖아요. 어느 순간 돌아보니, 저를 '환경 인플루언서'로 초대해주는 자리들이 생겨나고 있더라고요."

"경력단절 우울감은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어요. 저도 직접 겪어보니 정말 다른 일이었고, 땅굴을 파게 되는 나날들이 이어지더라고요. 당시엔 남편과도 자주 갈등이 있었고요. 그 시절을 같이 경험한 남편은 이제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네가 좋으면 됐다'며 지지해줘요."

낮은 진입장벽, 허들은?

특별한 자격증이나 조건을 요하는 것도 아니며, 거대 사업체를 보유하고 있지 않아도 된다. 단순히 SNS 계정 하나만 가지고도 가능한 일이 인플루언서다.

안목고수 오종철 대표는 "과학 선생님을 하면서 SNS 인플루언서가 되신 분도 있다"고 소개했다.

그가 소개한 황지원 씨는 실제로 현재 15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수년 전 과학 선생님으로 근무하다가 출산과 경력단절, 남편의 실직을 겪고 '기저귀 값을 벌어보자'는 결심과 함께 시작했던 SNS 공구 판매로 이제는 베스트셀러 작가까지 됐다.

이처럼 낮은 진입장벽을 갖고 있다 보니, 너도나도 몰려들기 쉽다.

SNS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 기다렸다는 듯 제품을 떼어와 판매하는 모습을 팬들은 질책하기도 한다. 또 판매 과정에서 여러 논란이 일며 그동안 쌓아온 인기가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기도 한다.

지난 2021년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266개의 SNS 공구 마켓 중 단 한 곳만 전자상거래법을 준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위반 사례 유형은 미배송, 배송 지연, 환불 거부 등으로 다양했다.

진입하기엔 다소 쉬워 보여도 나의 브랜드 가치를 잃지 않으며 이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것이다.

8년 차 인플루언서 양지혜 씨는 "인플루언서 커머스는 얼굴을 걸고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얼굴은 내 평생 가져가야 하는 거잖아요. 투명하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공구라는 것은 짧게는 3일, 길게는 일주일 사이에 판매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홍보하는 일이에요. 그러다 보니 이 제품이 나에게 정말 좋지 않으면, 애초에 판매 자체도 쉽지 않죠."

제품 불량 등 사유로 교환이나 환불 요청이 있을 때의 책임 소재도 명확하지 않아 혼선을 겪기도 한다.

양 씨는 "고객과의 신뢰 구축이 가장 어렵고도 중요하다"며 "초반에는 고민이 많았지만, 100% 신뢰가 중요하단 생각에 고객이 마음에 안 든다는 문의가 오면 손해를 보더라도 유연하게 환불해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이수진 박사는 "초기에 이커머스(온라인 쇼핑몰)가 도입됐을 때도 비슷한 문제가 굉장히 많았다"며 "지금과 같은 신뢰가 구축되기까지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구매 후 7일 이내 반품하는 게 법적으로 보호되는 것과 같이 이제는 전자상거래법 등이 마련이 잘 되어있죠. 궁극적으로 인플루언서 커머스에서 파생된 갈등 해결을 위해선 법적 보호가 필연적입니다. 이커머스 도입 당시 그랬듯, 이제 인플루언서 커머스 분야에도 전자상거래법과 같은 법적 조치가 충분히 마련이 되어야 합니다."

그는 또 "상품 불량이나 과장 광고, 품질 검증이 되어 있지 않은 제품의 문제는 분명 해결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두 아이의 아빠인 안목고수 오종철 대표의 모토는 '자식이 우선이 아니라 자신이 우선'이다.

경력 단절을 겪고 우울함에 빠진 아내를 옆에서 지켜본 오 대표는 아내의 우울함이 아이들의 불안감으로까지 번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를 키우던 제 아내가 SNS를 통해 세상과 연결하기 시작했고, 그러던 중 의류 사업을 하는 지인에게 인플루언서 커머스를 소개하면서 둘이 동업을 하게 됐어요."

오 씨의 아내는 현재 인플루언서 커머스 분야에 종사하는 워킹맘이 됐다.

"아내가 바빠지면서 우울함이 없어지니까 아이들도 덩달아 행복해지더라고요. 엄마들이 자기만의 일을 가질 수 있게끔 하는 게 엄마들에게 가장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엄마 인플루언서'들과 계속해서 협업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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