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발 관세가 한중일 FTA 타결 가능성 높일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 사태는 한국과 일본, 중국 간의 자유무역을 촉진할까?
미국이 중국과의 관세 전쟁을 확대하고 주요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에 상당한 상호 관세를 부과할 것으로 보이면서 오랫동안 중단됐던 동북아시아 3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가능성이 다시 언급되고 있다.
지난 30일, 3국 경제통상 장관들은 6년 만에 만나 경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회의에서 3국은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한·일·중 FTA 추진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수년간의 협상 끝에도 타결되지 않았던 한·일·중 FTA가 이번에는 성사될 수 있을까? BBC가 한·중·일 경제 전문가들과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FTA란?
FTA는 국가 간 특혜 무역 협정으로,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관세와 무역 장벽을 제함으로써 시장에 대한 배타적 접근 권한을 부여하는 협정이다.
품목에 따라 관세율이 제로(0)로 낮아지거나, 다른 국가에 적용되는 관세율보다 현저히 낮아질 수 있다.
한·일·중 경제통상장관 회의는 미국 정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지난 7일 브라이언 샤츠 민주당 상원의원은 상원 본회의장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이 자유무역 협력 가능성을 논의하는 모습을 보고 "가장 충격적인 이미지"라고 표현했다.

한·중·일 3국이 FTA를 타결할 경우 2023년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약 24조달러(3경4300조원) 규모의 경제 블록이 형성된다.
또한 이들 국가는 수출과 수입 측면에서 서로의 주요 무역 파트너이기도 하다.
하지만 3국간 자유무역 논의가 시작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한국과 일본, 중국은 과거 수년간의 협상에도 불구하고 FTA 타결을 이루지 못했다.
한·일·중 FTA 논의는 언제 시작됐나?
한·일·중 FTA 논의는 2012년 아세안+3 정상회의가 열린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3국 통상장관들이 FTA 협상 개시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앞서 3국은 협정의 실현 가능성을 평가하기 위해 수년간 산관학 공동 연구를 진행해왔다.
이듬해 서울에서 1차 협상 테이블이 마련됐고, 논의는 2019년 16차 협상까지 이어졌지만 결실을 보지 못했다.

왜 타결이 어렵나?
한·일·중 FTA 타결이 어려운 이유는 3국간 경제적인 문제 외에도 지정학적, 역사적 긴장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전쟁 및 식민지배 역사와 강제 노동, 영토 분쟁, 북한과의 관계 등의 문제는 각국 간 입장 차가 극명해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과 일본에서는 일부 사람들이 홍콩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며 각국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통상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한·일·중 FTA가 체결될 가능성이 "제로(0)"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허 교수는 한·일·중 FTA가 다시 언급되는 중요한 이유가 중국의 "정치적 동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지금의 상황이 2012년 중국이 미국 오바마 전 행정부가 주도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응하기 위해 FTA 협상을 시작했을 때와 매우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한덕수 국무총리는 최근 CNN 인터뷰에서 한국이 미국의 관세에 맞서기 위해 다른 국가와 협력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그 길을 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은 오는 6월 조기대선을 통해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하기 때문에 3국 협력에 대한 정부 입장이 어떻게 변화할 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다국적 금융사 나틱시스의 아시아 태평양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알리시아 가르시아-헤레로는 3국 FTA가 한국과 일본의 무역 조건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은 더 잃을 게 없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있죠. 그래서 (FTA) 조율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존재하는 양자 간 협정은?
허 교수는 기존에 체결된 한·중 FTA조차 무역 자유도가 "굉장히 낮은 수준"이라며 후속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과 일본 또는 일본과 중국 간에는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지 않았다.
교수는 "일본과의 FTA는 친일 등의 정치적 프레이밍이 이뤄지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발언의 기저에는 과거에서부터 축적된 지역적 긴장이 깔려 있다. 중국과 일본도 상황은 비슷하다. 예를 들어 양국은 일본에서 '센카쿠' 또는 중국에서 '댜오위다오'라고 부르는 열도를 둘러싸고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15개국 간의 무역 협정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은 종종 동북아 양자 간, 또는 삼자 간 FTA의 대안으로 여겨지지만, 효과가 다소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일본 경제 부문 책임자인 스테판 앵그릭은 RCEP을 예로 들면서 "(한·일·중 FTA) 협정이 실현되더라도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트럼프의 첫 번째 대통령 재임 기간 때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누가 RCEP에 서명하느냐에 많은 관심이 쏠렸었죠."
RCEP는 트럼프 대통령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서 탈퇴한 후 체결된 협정이다.
앵그릭은 "RCEP에 포함된 관세 인하 약속은 CPTPP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이었다"라고 덧붙였다.

한·일·중 FTA, 부정적 영향은 없을까?
일부 전문가들은 자동차와 철강, 반도체, 석유화학 등 한·중·일 3국의 주요 수출 산업이 겹치기 때문에 FTA의 기대효과가 제한적이고,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국가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ANZ 은행의 중화권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레이몬드 영은 FTA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며 실질적으로 실현될 가능성도 작다고 봤다.
"무역 협정은 지정학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동맹국이고, 미국의 군사 지원에 의존하고 있죠…한국과 일본에 중국은 중요한 시장이지만, 중국과 미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어느 쪽을 우선시할 것 같습니까?"

긍정적인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는 전문가들도 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한·일·중 FTA 협상에서 다소 소극적이었던 중국이 이번에는 더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또 과거보다 중국 시장이 더 개방된 점도 협상에 있어서 긍정적 요소라고 봤다.
"(과거에는) 중국이 시장 개방 등의 측면에서 유예를 둬야 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하지만 이제는 시국이 시국인만큼, (자국이) 자유무역의 선봉장에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한·일·중 FTA를 통해 미국 견제가 된다고 생각하니까 적극성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세계은행 출신 중국 경제 전문가인 앤디 시에도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3국 간 FTA가 성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그는 3국 간 "근본적인 문제"로 인해 협정이 가까운 시일 내에 실현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다.
"일본과 한국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동맹국이죠...제3자가 무엇을 팔고 무엇을 팔지 말라고 명령할 수 있다면 그것은 (협정국에 있어서) 매우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로자들의 생각은?
최근 몇 주 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으로 수입되는 상품에 관세를 부과했다가 계획을 변경하면서 세계 시장과 무역에 큰 혼란이 발생했다.
그렇다면 근로자들은 잠재적인 새로운 자유무역협정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문 추이는 홍콩에서 활동하는 이벤트 프로듀서로 한국과 일본, 중국 본토를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홍보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그는 한·일·중 FTA가 자신의 사업에 "일시적인 활력"을 줄 수는 있지만, 큰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이건 단지 증시를 오르락내리락하게 만드는 게임일 뿐"이라며 "부자들이나 하는 게임이지...가난한 사람들의 생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홍콩 금융업계에서 일하는 찰스는 좀 더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인터뷰에서 "원자재나 상품의 수출입 비용이 감소하면 물가가 내려갈 것"이라며 "글로벌 인플레이션 시대에 이는 제조업에 유리할 뿐만 아니라 상품 소비를 촉진하고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 일본이 밀착하면서 동북아 지역 내 힘의 균형에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일본의 상업 부문에서 일하고 있는 카즈는 FTA를 통해 오랜 시간 반목했던 세 국가를 하나로 묶을 수 있다는 점을 반겼다.
"우리(3국) 사이의 긴장이 완화되고 경제적으로 서로 더 의존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게 될 것입니다...역내 평화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한·중·일 FTA 체결로 우려되는 점에 대해 묻자 그는 "많은 단점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특히 트럼프가 백악관에 앉아 있는 동안 미국과의 관계가 더 힘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트럼프의 상호관세로 큰 영향을 받게될 제조업 분야에서 일하는 한 근로자는 "한·일·중 FTA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라며 "(FTA가 타결된다고 하더라도) 지금 상황이 기존 시장 질서에 문제가 크게 있어서 발생한 게 아닌 듯해서 해법이 될지는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관세 문제는) 워낙 조심스럽고 업계보다는 나라에서 협상을 해줘야 하는 부분이라…그저 트럼프의 임기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기업에는) 재앙과도 같은 상황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