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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돌이표' 북일 관계...정상회담 가능할까?

2024.04.17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최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고위급 접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Reuters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최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고위급 접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일본과 북한이 대화 의지를 더욱 적극적으로 드러내면서 지난 10년간 답보상태였던 북일 관계가 발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지난 1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일 정상회담 개최와 관련해 "북한과 여러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고위급 협의를 계속하겠다"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이 자리에서 북일 정상회담을 처음으로 공개 지지했다.

북한도 일본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 일본 노토반도에서 강진이 발생하자 이례적으로 위로 메시지를 보냈다.

또 지난 2월 15일 김여정은 담화를 통해 "일본이 우리의 정당방위권에 대해 부당하게 걸고드는 악습을 털어버리고 이미 해결된 납치 문제를 양국관계 전망의 장애물로만 놓지 않는다면 가까워지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번에야말로 북일 관계가 개선될 수 있을까?

북일 관계의 역사

북한과 일본은 냉전이 끝난 1990년대부터 공식·비공식적 대화를 이어오고 있다. 그 중심에는 늘 '일본인 납치'와 '핵 개발' 문제가 있었다.

2002년 9월 17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는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첫 정상회담에서 ‘북일 평양선언’을 발표하고 국교 정상화 의지를 표명했다.

당시 북한은 북한 요원이 일본인 13명(여성 7명·남성 6명)을 납치한 사실을 인정하고 회담 후 한 달 만에 이 중 5명을 일본에 돌려보냈다.

앞서 일본에서 많은 일본인이 북한에 납치됐다는 의혹이 제기돼온 만큼 이 정상회담은 북일 관계에 있어 큰 진전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납북 일본인 수가 13명이 아닌 17명이며, 귀환 인원을 제외한 납북자들이 사망했다는 북한 발표를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2004년 제2차 북일 정상회담은 일본인 납북자 문제와 핵 개발 포기 등에 대한 입장 차이로 결렬됐다. 이후 북한이 핵실험에 나서면서 북일 관계 개선 논의가 중단됐다.

2014년 일본과 북한은 장관급 회담을 통해 북한 내 일본인 재조사와 일본의 대북제재 완화 등의 내용을 담은 ‘스톡홀름 선언’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행 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졌고, 2016년 북한이 4차 핵실험에 나서면서 논의가 중단됐다.

납북자 문제

일본인 납북자 요코타 메구미
Getty Images
납북되기 전 일본에서 찍은 13살 무렵의 요코타 메구미 씨(오른쪽)와 북한에서 촬영한 것으로 알려진 20살 무렵의 사진(왼쪽)

북일 관계 개선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하지만, 가장 입장 차가 뚜렷한 부분이 바로 납북자 문제다.

북한은 일본인 납치자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는 입장이지만, 일본은 아직 북한에 납치 피해자가 살아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BBC에 북한이 일본인 납북자에 대한 현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도 봐야 한다”고 했다.

일본인 납북자 문제의 상징적 인물로 13살에 북한으로 납치된 요코타 메구미가 대표적 사례다. 북한은 그가 1993년에 죽었다고 밝혔으나 1994년에 메구미를 목격했다는 증언이 나와 사망연도를 정정했다. 이후 2004년 북한이 일본 정부에 그의 유골을 전달했지만, 감정 결과 다른 사람의 것이라는 발표가 나왔다.

진 센터장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북한에 입증 능력이 없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도 웬만해서는 (북한의 주장을) 믿지 않게 됐다”라며 “결국 이 문제는 해결이 안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기태 통일연구원 국제전략연구실장은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최근 일본 정부가 대북 대화에 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납치자 가족의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도 “(북일 간) 커다란 입장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일북 대화가 성립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대내외 상황

현재 북한과 일본을 둘러싼 대내외 상황은 북일 관계 개선에 있어 나쁘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기시다 총리의 경우 자국 내 지지율이 역대 최저 수준까지 내려간 만큼, 새로운 돌파구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이영채 일본 게이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는 BBC에 “기시다 총리는 온건파고 외무상 출신이라는 점에서 한일 관계와 북일 관계 개선 성과를 동시에 기록하고자 할 것”이라며 일본 내 납치 피해자 가족들도 아베 정권 동안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의 경우 “현재 제1 정책은 국내경제 재건 및 지방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이라며 “북일 관계 정상화를 통해 일본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으려는 목적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북한은 일본을 대상으로 식민지 배상금을 요구해왔다. 북한이 주장하는 배상금은 200억달러(약 27조56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교수는 “납치 문제와 관련한 세부 항목에서 타협점을 찾기는 어렵겠지만, 큰 틀에서 협상을 재개할 수 있다. 스톡홀름 합의와 2002년 북일 국교 정상화 합의를 확인하는 차원에서의 방북은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북한과 일본이 올해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관계 개선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진 센터장은 “만약 트럼프가 당선돼서 북미 정상회담이 갑자기 개최되거나 할 경우 일본은 납치자 문제 해결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며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북한과 이야기를 지속할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진 센터장은 최근 북한이 일본에 보이는 우호적 제스쳐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섰을 때 일본이 (북미 간 논의되는 사안에) 그렇게 즉각적으로 반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헷징(위험분산) 전략”이라고 판단했다.

“북한도 이 (납북자) 문제는 일본이 받아들이기 힘들 거라는 걸 알지만, 계속 미끼를 던지면서 일본도 (북일 관계에 있어) 신중하게 대응하게 만드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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