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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마치 원숭이 쳐다보듯 했다'…탈북 여대생이 북한 장애인 인권운동에 나선 이유

2024.05.03
지난 2018년 가족과 함께 한국에 정착한 맹효심 씨
맹효심
지난 2018년 가족과 함께 한국에 정착한 맹효심 씨

“북한은 장애인들이 살기에 정말 안 좋은 나라입니다.”

탈북 여대생 맹효심 씨(23)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북한 장애인들도 휠체어를 탈 수 있는 그날을 위해, 그들도 사람다운 대접을 받는 그날까지 장애인 인권 개선 운동을 벌일 겁니다.”

맹 씨의 어머니는 어릴 적 소아마비에 걸려 평생 장애를 가지게 됐다.

그는 어머니의 일상을 지켜보며 북한에서 장애를 가지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견딜 수 없는 차별

2018년 6월까지 북한 양강도 혜산시 압록강 주변에 살았던 맹효심 씨. 당시 맹 씨의 가족은 한국의 편의점과 같은 매대(식료품 상점)를 운영했다.

아버지는 오토바이를 이용해 운수업을 했고, 어머니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식료품 운영을 도왔다. 아버지는 중국 상인으로부터 받은 물건을 장마당에 팔기도 했다. 덕분에 맹 씨 가족은 경제적으로는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하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은 적이 많았다. 외상으로 물건을 여러 차례 가져갔던 한 남성이 밀린 금액 지불을 거부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맹 씨의 부모와 이 남성 사이에서 몸싸움이 벌어졌고, 이 남성은 장애를 가진 어머니에게 흉기를 휘둘렀다고 한다. 어머니는 오른팔에 골절상을 입었다.

맹 씨 가족은 안전원(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며 남성에 대한 처벌을 요구했다. 하지만 안전원은 며칠 후 ‘맹 씨의 어머니가 혼자 걷다가 넘어진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맹 씨는 해당 남성이 안전원에 뇌물을 줬기 때문에 결과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북한 사회에 대한 맹 씨 가족의 불만이 터져버리는 기폭제가 됐다. 수십 년 동안 자유를 억압당한 상황에서 피해를 입은 장애인이 피해자로 인정받지도 못했다는 사실에 맹 씨 가족의 서러움은 형언할 길이 없었다. 그들은 결국 탈북을 결심했다.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마을에 주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마을

일방통행 압록강을 건너다

북한을 떠나기로 결심했지만 탈북 여정은 녹록지 않았다. 특히 걷지도 못하고 팔이 다친 어머니와 함께 간다는 건 다른 비장애인들보다 두 배 세 배의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함을 의미했다.

아버지는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업고 압록강 물속을 헤치며 나아갔다.

압록강을 건너 중국을 통해 베트남으로 갔고, 이후 라오스, 태국을 거쳐 한국에 오게 됐다. 이 모든 과정이 한 달 안에 이뤄졌다. 일반적인 탈북민들이 한국에 정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에 비하면 매우 빠른 시간 내에 한국에 입국한 것이다.

하지만 맹효심 씨는 “그 한 달이라는 시간이 너무나 긴 지옥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운이 좋게 비교적 빨리 한국으로 오게 됐던 것 같아요. 탈북 과정에서 다른 분들도 다 매우 힘든 과정을 겪겠지만, 솔직히 그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저희 가족은 다른 분들보다 더 몇 배 더 힘들었습니다. 어머니가 장애가 있기 때문에 항상 어디를 가더라도 아버지가 어머니를 업고 다녀야 했습니다.”

북한 양강도 혜산시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맹효심 씨
맹효심
맹효심 씨는 2018년 6월까지 북한 양강도 혜산시 압록강 주변에 살았다. 맹 씨는 경제적으로는 부족하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가족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은 적이 많았다고 밝혔다.

맹 씨의 가족은 2018년 7월 한국 땅을 밟는 순간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북한에 다시 잡혀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한순간도 떨칠 수 없었다.

“한국 땅을 밟고 나서야 ‘이제 정말 살았구나, 이제 다시는 북한에 돌아갈 일이 없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어요. 그 때 그 기분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맹 씨는 북한에서 여러 차례 한국 드라마를 몰래 시청해 왔기에 서울 상황을 나름대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 입국하기 전까지 장애인도 사람답게 살 권리를 보장받고 국가로부터 여러 가지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지 못했다.

“북한 당국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그 어떤 지원을 해주지 않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도 평생 작은 지팡이 하나에 의지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어머니에게 휠체어를 지원해줬습니다. 그리고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이 곳곳에 마련돼 있고, 특히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북한에서 맹 씨의 가족은 평양에 자주 방문했다. 그곳에 친척이 살았기 때문이다.

북한 평양 지하철 내부 모습
Getty Images
북한 평양 지하철 내부 모습

맹 씨는 “평양 지하철에 탑승했을 당시 주변 사람들은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마치 원숭이 쳐다보듯이 봤다”고 회상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업고 지하철을 탔는데, 일부 사람들은 자리를 비켜주기는커녕 장애인이 왜 지하철을 타느냐는 듯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봤습니다. 북한은 미디어를 통해 정부가 장애인에 대해 지원을 해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과 다릅니다. 평양 지하철에 노약자석이나 장애인석이 전혀 없을 정도입니다.”

최근까지 북한의 지하철에는 6.25 전쟁노병자리 등은 있지만 장애인배려석 등은 갖추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맹 씨는 “이처럼 북한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나빠서 장애를 가진 분들은 자유롭게 밖에 나가기 어렵다”며 “워낙 사람들이 장애인을 향해 비난하는 일이 흔하다 보니, 집에서 숨어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장애인 인권 보장되는 그날까지'

연단에서 말하고 있는 맹효심 씨
맹효심
맹 씨는 앞으로 북한 장애인들의 인권이 개선되는 그날까지 북한 장애인 인권 개선 운동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 맹 씨는 앞으로 북한 장애인들의 인권이 개선되는 그날까지 북한 장애인 인권 개선 운동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향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이 꿈과는 별개로 북한 내 장애인 인권의 실상을 알리는 활동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북한의 실상을 세상에 알려야 그곳의 주민들도 자유를 맞이하는 순간이 올테니까요."

지난달 맹 씨는 북한 인권 단체 ‘프리덤스피커즈인터내셔널(Freedom Speakers International·FSI)’이 미 하버드대에서 개최한 영어 말하기 대회에 참석해 ‘북한 장애인 인권’에 대해 연설하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호소했다.

앞서 맹 씨는 지난해 미국 국무부를 방문해 북한 내 장애인 인권에 대해 연설을 하기도 했다.

“북한은 항상 자기 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고 선전합니다. 하지만 북한은 결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장애인들은 바깥 세상을 제대로 구경하지도 못한 채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자신들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조차 못하고 삽니다.”

맹 씨는 북한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을 위해 국제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들의 외출을 돕기 위해 휠체어를 북한에 보낸다거나 그들에게 실질적인 지원을 해주는 정책을 북한이 펼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맹 씨는 북한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북한 정부가 장애인 분들의 권리를 개선하는 실질적인 정책을 하루빨리 시행해서 북한 장애인들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빠른 시간 내에 보장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날까지 희망을 잃지 말고 잘 버텨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북한 여학생들이 평양 만수대언덕에 있는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헌화하는 모습
Getty Images
북한 여학생들이 평양 만수대언덕에 있는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헌화하는 모습

북한의 장애인 보호법

북한은 2003년 장애인 복지에 대해 최초로 규정한 ‘장애자보호법’을 제정했다. 특히 북한은 “국가는 장애자의 인격을 존중하며 그의 사회정치적권리와 자유, 이익을 건강한 공민과 똑같이 보장하도록 한다"며 국가 책임 및 차별금지를 주장하고 있다.

또 북한은 지난 2013년 장애인권리 협약에 서명하고, 2016년 협약을 비준했다. 이후 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으로서 2017년 유엔장애인권리특별보고관의 방북을 허용했고, 2018년 장애인권리협약 이행에 관한 최초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지난해 9월 개최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9차 회의에서 '장애자 권리 보장법'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 법에는 “장애인들에 대해 보다 훌륭한 생활 조건과 사업 조건을 보장해 준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 장애인의 생활과 인권 개선을 위해서는 북한 당국이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맹 씨는 북한의 장애인 관련법들은 허울뿐이고, 북한 주민이 장애인의 인권에 관한 개념부터 알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이 진행한 북한 장애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북한 장애인들은 교육과 조직생활, 생계유지와 회복치료, 결혼과 이동에서 국가로부터 지원이나 혜택을 받지 못한 채 가족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북한에서 살았던 장애인들은 다양한 차별을 경험했으며 장애 유형별, 집단별 차별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지난해 3월 통일부가 발표한 '2023 북한인권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장애인들은 강제이주, 강제불임 등을 통한 격리를 당하는 등 장애인 인권 수준은 매우 열악한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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