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시간도 아깝지 않아요'…세계 1위 저출산국에서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부부들

유례 없는 저출생 위기에 처한 한국에선 정말 부부들이 아이를 낳길 원치 않을까.
한국 저출생 문제의 심각성은 오래 전부터 대두되어 왔다. 2023년 출생아 수와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 기록을 갈아치웠고, 이대로 가다가는 인구 소멸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등장했다.
이런 가운데 아이를 가지기 위해 난임병원을 찾는 국내 환자 수는 늘고 있는 추세다.
"병원에 대기가 정말 많아요. 저는 3년 전에 첫 아이를 가지려고 난임 병원을 다녔잖아요. 그 때보다도 확실히 늘었어요."
시험관 시술로 얻은 아이를 키우고 있는 36세 김미애 씨는 둘째를 가지기 위해 다시 시험관에 도전하면서 최근 난임 병원에 환자가 점점 늘고 있음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건보심)에 따르면 2022년을 기준으로 국내에서 난임 치료를 받은 환자 수는 5년간 약 17% 증가했다. 건보심은 난임 환자 수가 연평균 5%씩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저출생 국가에서 아이를 낳고 싶은 부부들

난임 병원을 2년째 다니고 있는 장세련 씨는 현재 5차 시험관을 진행 중이다.
결혼 초기, 자연 임신을 했다가 유산을 한 경험이 있는 그는 첫 임신 때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행복했던 감정"을 잊을 수 없어 몇 번의 자연임신 시도 끝에 난임 병원을 찾았다.
세련 씨는 이 생각을 하면 여전히 울컥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생기면 무한한 사랑을 줄 수 있다고들 하죠.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행복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요."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작년 난임 환자 수는 25만1000여 명을 넘어섰다. 국내 부부 7쌍 중 1쌍이 난임으로 고통받고 있다.
난임 환자 수 증가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초혼 연령의 상승이다. 높은 사교육비 등으로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 둔 후 아이를 갖겠다는 부부들이 늘어나며 아이 낳는 시기가 늦춰지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2024년 기준, 40대 초반 여성의 출산율(7.9명)이 20대 초반(3.8명)의 2배 수준이었다.
그런 가운데 올해 초 발표된 지난해 출산율이 9년 만에 반등했다. 2023년 0.72명보다 0.03명 상승한 0.75명이었다.
박현정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반등 요인으로 "인구 구조에서 30대 초반이 많이 늘었고, 코로나19로 지연됐던 혼인이 지난해부터 많이 늘어 연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반등에 방심해선 안 된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KDI국제정책대학원 최슬기 교수는 BBC에 "0.03명은 대단히 작은 숫자고, 이 숫자로 향후 10년에서 20년 사이에 인구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앞으로 출산율이 올라갈 가능성에 대해선 여전히 두고봐야 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다만 출산율과 더불어서 혼인율도 상당히 많이 늘었거든요. 그래서 출산율 증가 추세가 여기서 조금 더 지속된다면 장기적으로 갈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김미애 씨는 미리 진료 예약을 하더라도 난임 병원에서 평균 2시간은 대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난임 치료로 유명해진 병원들은 평일, 주말할 것 없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경주에 위치한 한 한의원은 오랜 시간 동안 병원을 다닌 난임 부부들에게 '마지막 희망'으로 알려진 곳이다. 진료를 보기 위해 전국 팔도에서 찾아온 난임 부부들은 궃은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새벽같이 한의원 앞에 텐트를 치고 '오픈런'을 한다. 이렇게 해야만 다음날 진료를 겨우 볼 수 있다는 후기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올해로 결혼한 지 3년차가 된 30대 중반의 박수인 씨는 "유명하다고 알려진 곳들은 검사 예약만 두 달이 걸리더라"며 "원래 다니던 병원도 주말에는 3시간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수인 씨는 현재 자녀가 없다. 처음부터 아이가 간절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주변에 아이를 낳은 친구들이 점차 생기면서 자신이 아이를 예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조금이라도 젊을 때 임신을 시도하기로 결심했다.
현재 1차 인공수정을 진행 중인 수인 씨는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 중 60% 이상이 난임 시술로 임신한 케이스"라며 난임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 주변 경험자들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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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 부부들의 어려움

직장을 다니며 난임 시술을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김미애 씨는 "난임 시술을 시작하면 향후 스케줄은 예측 불가하다"고 말했다.
"사람마다 생체 리듬이 다르기 때문에 언제 시술하게 될 지 아무도 미리 알 수 없어요. 당장 시술하기 하루 전날 병원에서 연락을 받게 되거든요. 매일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들에겐 아무래도 제일 어려운 부분이죠."
미애 씨가 3년 전 다녔던 직장은 난임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는 단 한 번의 난임 휴가를 쓰지 못한 채 시술을 받았다.
장세련 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이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처음 시험관을 시작하고 상사의 지시에 따라 외출, 반차, 연차를 번갈아 써가며 눈치를 봤다고 말했다.
"나중에는 (회사에서) 시술 일정을 미루라고 얘기하더라고요. 회사를 다니면서 시험관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퇴사를 했는데, 막상 퇴사를 하고 나니 금전적인 부분에서 여유가 없어지게 되고, 그래서 또 일을 찾게 되는 것의 반복이 됐어요."

금전적인 부담 또한 난임 부부들에게 커다란 짐이다.
김미애 씨는 첫째를 갖기 위해 병원을 다니던 당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마음도 들었다고 했다.
"3년 전에는 소득 기준에 따라서 정부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고, 없고가 나뉘어졌어요. 당시에 저희 부부는 맞벌이였기 때문에 소득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고, 그래서 큰 돈을 들여서 시술을 받을 수 밖에 없었죠."
지원금 소득 기준이 없어진 지금, 둘째를 위해 병원을 다시 다니는 미애 씨는 서울시에서 지원금을 받고 있다.
"지원금이 절대적으로는 적은 금액은 아니예요. 하지만 지원금 외에도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요. 지난 1월에 난자를 채취하는 시술을 했는데, 정부 지원을 받고도 그 한 달간 200만원을 넘게 썼어요."
장세련 씨 역시 지원금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난임 시술 과정에서 비급여 항목이 너무 많아요. 주사와 질정의 경우에는 비급여 항목인데, 특히 질정이 굉장히 비싸거든요. 평균적으로 한 번 시술할 때 지원금을 받아도 150만원은 들어가는 것 같아요."
또 세련 씨는 "난임 시술을 위해 엽산이나 비타민, 마그네슘 등 영양제도 챙겨 먹어야 하는데, 임신을 위한 몸을 유지하는 비용 자체도 무시할 수 없다"며 "병원에 가서 결제하는 순간이 너무 두렵다"고 말했다.
난임 부부를 위한 정책

정부는 난임 부부들이 사업주에게 난임치료휴가를 청구할 수 있도록 휴가 지원책을 마련했다. 이들은 해당 정책에 따라 연간 6일 이내의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다만 6일 중 4일은 무급 휴가로, 이미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부부들에게는 휴가 사용이 쉽지 않다는 반응도 나온다.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는 이들도 많다.
저출생 대책의 일환으로 난임부부의 시술 비용을 지원해주는 정책 또한 이전에 비해 활발히 시행되고 있다. 시술에 따라 최대 30만원에서 110만원까지 지원이 된다.
최슬기 교수는 국가의 정책 방향성이 '나라를 위해 자녀를 가지라'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아이를 가지려는 사람들을 독려하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 세대를 '국가를 위한 도구'로 바라보는 7080년대 방식에 대해 한국은 2017년도부터 강한 문제 제기가 되어왔습니다. 정책 대상인 청년들이 정책에 호응을 할 수 있어야 효과적인 결과도 나오기 때문에 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하기 시작했죠."
그는 또 "모두가 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라"가 아닌 "결혼과 출산 의향이 있는 사람들 중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들이 생각보다 많은 점을 고려해 그들을 독려하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김미애 씨의 첫째 아이는 부부가 병원비로 총 1000만원을 지출해 시험관 시술로 얻은 결실이다. 하지만 미애 씨에게 그 돈은 절대 아깝게 느껴지지 않는다.
"후회하지 않아요. 지금 제 아이를 보면 그때 쓴 1000만원이 절대 비싸다고 느껴지지 않아요. 돈 주고 살 수 없는 아이잖아요. 막상 돈을 쓸 때는 너무 비싸고 아깝다고 느껴져도, 아이를 낳고 난 후에는 그 생명의 가치가 훨씬 높다는 것을 저희 부부는 잘 알고 있어요."
"시험관 시술 전과 후, 아이가 생기기 전과 후 비교해보면 저는 이후가 더 만족스럽고 행복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