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관세 공세에 휘청이는 아시아…승자는 누구?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근 관세 위협을 "매우 유감스럽다"고 표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오랜 동맹인 일본은 이런 상황을 피하려 안간힘을 써 왔다. 일본은 어려움에 처한 자국 자동차 업계를 위해 양보를 얻어내려 하는 한편, 미국산 쌀 수입을 허용하라는 요구에는 저항해 왔다.
그간 수차례 협상이 진행됐다.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은 우호국과 대립국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 관세 정책을 발표했다. 이후, 일본 무역장관은 최소 7차례 워싱턴을 찾았다.
그러나 이 방문들이 가져온 실질적 성과는 미미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이 지연되자 일본에 대한 언급을 "완고하다(tough)"에서 "버릇이 잘못 들었다(spoiled)"로 바꾸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주, 일본은 관세 서한을 받은 22개국 목록에 포함됐다. 이 중 14개국은 아시아 국가다. 한국부터 스리랑카까지, 많은 대상국이 수출 주도형 제조업 중심지다.
이들은 오는 8월 1일까지 미국과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하지만 일본처럼 공개적으로 협상을 추진해온 확고한 동맹국조차 고율 관세 부과를 앞두고 있는 지금, 다른 국가들은 협상 전망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다시 '관세 시계'를 돌렸다. 그렇다면 승자와 패자는 어떻게 갈리고 있을까?
승자: 시간을 번 협상국들
어떤 의미에서는, 올해 초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 대상이 된 모든 나라가 시한 연장의 수혜자라고 볼 수 있다. 이제 3주 이상의 추가 시간이 확보됐다.
싱가포르 소재 은행 UOB(United Overseas Bank)의 수안 텍 킨 리서치 총괄에 따르면, "낙관적 시나리오는, 이제 8월 1일 기한 전까지 추가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압박이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주 관세 서한을 받은 태국과 말레이시아 등 성장이 한창인 경제권은 특히 해법 마련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미·중 긴장 관계의 영향도 받는다. 중국산 수출품이 제3국을 경유해 미국으로 들어오는 이른바 '환적' 문제도 미국의 단속 대상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은 무역 협정의 복잡성을 감안할 때, 시한의 추가 연장 가능성이 크다고 BBC에 설명했다.
싱가포르국립대(NUS) 알렉스 카프리 경영학 강사에 의하면, 서한 내용만으로는 미국의 요구사항이 완전히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각국의 이행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베트남은 미국과의 무역 합의에서 환적 화물에 대해 구체적인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지만, 이 조치가 완제품에 적용되는지, 아니면 모든 수입 부품에 적용되는지 명확하지 않다.
어떤 경우든, 전체 공급망을 추적하려면 훨씬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 카프리의 설명이다.
"이 과정은 많은 변화를 수반하며 느린 속도로, 장기적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여러 제3자, 기술 기업, 물류 업체가 관여하게 될 겁니다."
패자: 아시아 제조업체
관세는 지속될 것이 분명하며, 이로 인해 글로벌 무역 자체가 패자가 될 것이다.
카프리는 미국·유럽·중국의 글로벌 기업이 여전히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이는 수출업체뿐 아니라 미국 수입업체와 소비자에게도 피해를 준다.
또한 전자제품부터 섬유까지, 제조업 중심으로 성장해온 아시아 대부분 국가의 경제 목표에도 타격을 입힌다.

카프리는 미·중 무역은 매우 긴밀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어떤 국가가 이기고 지는지 제로섬 방식으로 접근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다만 어떤 국가는 상대적으로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베트남은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미국과 무역 합의를 도출했다. 그러나 미국을 상대로 협상력이 약해 최대 40%의 관세 위협을 받고 있다. 캄보디아 역시 마찬가지다. 수출 의존도가 높고 경제 사정이 어려운 캄보디아는 미국과 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트럼프는 35%의 고율 관세를 예고하고 있다.
반면, 한국과 일본은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지정학적 영향력도 강한 편으로,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인도 역시 나름의 협상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 미국으로부터 관세 서한을 받지는 않았다. 협상이 임박한 듯했으나, 인도 농산물 시장 개방과 수입 규제 등 핵심 쟁점으로 인해 지연되는 것으로 보인다.
패자: 미·일 동맹
경제학자 예스퍼 콜은 "미국과 경제·군사 관계가 긴밀한 일본조차, 다른 아시아 교역국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양국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특히 일본은 막대한 재정 여력을 바탕으로 장기전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콜은 "일본은 협상에서 완고한 태도를 보여 왔고, 트럼프 대통령은 그 점에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시바 총리는 쌀 부족으로 가격이 급등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산 쌀 수입을 거부하고 자국 농민 보호를 선택했다. 또한, 일본 정부는 미국의 방위비 증액 요구도 수용하지 않고 있다.

콜은 "일본은 준비가 잘 돼 있다"고 주장했다. 콜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4월 관세를 발표한 직후, 일본 정부는 경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수백 곳의 상담 센터를 설치해 기업 지원에 나섰다.
콜은 "일본은 신뢰할 수 있는 협상을 원할 것"이라며 "트럼프가 다시 입장을 바꾸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이달 중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 따라서 8월까지 합의에 이를 가능성은 낮다고 콜은 내다봤다.
"그 누구도 만족하지 않는 협상이지만, 그렇다고 이 일이 일본을 경기 침체로 몰아갈 정도는 아닙니다."
승자: 미국일까, 중국일까
아시아는 오랫동안 미국과 중국 간 주도권 경쟁의 주요 격전지였다. 그러나 일부 분석가는 관세 정책으로 인해 오히려 트럼프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협정들의 복잡성을 감안할 때, 트럼프가 또다시 기한을 연장하는 것은 협상력을 과신하는 행보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데이비드 잭스 교수는 "미국은 자국 협상력이 생각만큼 강하지 않다는 점을 스스로 드러내면서 오히려 협상력이 약화됐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이제부터 진행될 협상은 수십 년에 걸쳐 구축된 무역과 외교 관계를 재편하는 대가를 치를 수 있다.
카프리는 트럼프가 전통적인 외교 채널 대신, 온라인에 관세 서한을 공개한 것이 "정치적 쇼"라고 평가하며,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혼란은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성에 대한 안정적 대안으로서 자국을 선전하려는 중국에 "큰 선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미국 시장은 대체하기 어려운 존재다. 중국 또한 베트남과 일본 등 아시아 여러 국가와 갈등을 겪고 있다.
중국도 미국과의 무역 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최종 합의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우선 8월 13일까지 시간을 벌어두었다.
이번 무역전쟁에서 누가 더 많은 우군을 얻을지는 아직 예측이 어렵다. 다만, 경쟁은 계속되고 있다.
잭스 교수는 "양국 모두 결별의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그 여정은 수년, 아니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는 복잡한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