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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어떻게 이란의 제재 우회를 돕고 있나

2024.05.03
카그 섬의 있는 석유 생산 시설.
ATTA KENARE / AFP via Getty Images
이란 석유의 최대 구매자는 중국인데, 저렴한 가격이 주요 원인으로 손꼽힌다

지난달 중순 이란이 이스라엘을 직접 겨냥해 미사일과 무인기 300여 발을 발사하면서 이란 경제의 생명줄과도 같은 석유 수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새롭게 커지고 있다.

이란 관세 당국에 따르면 대이란 제재에도 불구하고 올해 1분기 이란의 석유 수출량은 6년 만에 최고치인 358억달러(약 48조8000억원)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란은 제재를 우회해 석유를 수출할 수 있었을까.

미국 하원의 ‘금융서비스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에선 그 답을 이란 석유의 최대 구매자인 중국의 거래 방식에서 찾고 있다. 중국은 하루 약 150만 배럴에 달하는 이란의 석유 수출 중 80%를 차지하는 큰손이다.

중국은 왜 이란의 석유를 구매하나?

중국 랴오닝성의 유류 탱크
Reuters
중국은 이란산 석유 구매를 통해 수십억달러를 아끼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란과의 거래엔 위험, 특히 미국 정부가 가한 제재 위반 등의 위험이 따르는데도 세계 최대 석유 구매자인 중국이 굳이 이란산 석유를 사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이란산 석유가 저렴하면서도 품질이 좋기 때문이다.

현재 글로벌 분쟁으로 인해 국제 유가는 상승하고 있지만, 제재를 우회해 석유를 판매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이란은 할인된 가격으로 내놓는다.

지난해 10월 로이터 통신이 수집한 무역 업체, 선박 추적 업체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첫 9개월간 이란, 러시아, 베네수엘라산 석유를 할인된 가격으로 기록적인 양을 사들였으며, 이를 통해 약 100억달러(약 13조 6200억원)를 절약할 수 있었다.

국제유가는 보통 변화를 거듭하지만, 일반적으로 배럴당 90달러(약 12만원) 미만에 거래된다.

데이터 분석 업체 ‘케플러’의 호메이윤 팔락샤히 수석 석유 분석가는 이란이 배럴당 5달러 할인된 가격에 팔고 있다고 추정한다. 지난해엔 배럴당 13달러까지 할인해서 팔기도 했다.

팔락샤히 분석가에 따르면 여기엔 지정학적 이해관계도 작용한다. “이란은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큰 게임의 일부”라는 설명이다.

팔락샤히 분석가는 이란의 경제를 지원함으로써 “특히 이스라엘 관련 긴장이 고조되는 지금, 중국은 중동 내 미국이 감내야 하는 지정학적, 군사적 도전 과제를 가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찻주전자 정유공장’

전문가들은 이란과 중국이 수년간에 걸쳐 제재 대상인 이란산 석유를 거래할 수 있는 정교한 시스템을 개발했다고 본다.

싱크탱크 ‘대서양 협의회’의 마이아 니콜라제 경제 정책 부국장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중국과 이란 간) 시스템의 핵심 요소로는 중국의 ‘찻주전자 정유공장’ (소규모 정유업체), ‘어둠의 선단’이라 불리는 유조선, 국제 금융시스템에 별로 노출되지 않는 중국의 소규모 은행을 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찻주전자 정유공장’이란 대규모 국영 기업이 아닌 중국의 소규모 민간 정유업체를 가리킨다.

팔락샤히 분석가는 이는 “업계 용어”라면서 “왜냐하면 이러한 정유시설은 보통 아주 기본적인 시설만 갖춘 찻주전차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베이징 남동부 산둥성에 자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 입장에서 이러한 소규모 정유공장은 위험도가 낮다. 국영 기업의 경우 국제적으로 운영하며, 미국의 금융 시스템과도 맞닿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팔락샤히 분석가는 BBC 페르시아어 서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소규모 민간정유업체는 해외 공장이 없고, 달러로 거래하지도 않으며, 해외 자금도 필요 없다”고 설명했다.

‘어둠의 선단’

올해 4월 29일 이란 남부 항구 도시 부셰르 인근 페르시아만에서 포착된 유조선
Getty Images
이란에서 출발하는 유조선은 보통 선박의 추적 시스템을 꺼두곤 한다

보통 유조선은 선박의 위치, 속도, 대략적인 항로를 모니터링하는 소프트웨어 덕에 전 세계 바다 어디에 있든 추적된다.

이러한 추적을 피하고자 이란과 중국은 “소유 구조도 모호하며 위치도 정확하게 보고하지 않는 유조선들을 이용한다”고 한다는 게 니콜라제 부국장의 설명이다.

“이러한 선박은 서방의 유조선, 해상운송 서비스, 중개 서비스를 완전히 피할 수 있다. 그렇기에 서방의 규제 및 제재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어둠의 선박’ 유조선들은 보통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을 비활성화해 탐지되지 않도록 하거나, 실제 위치를 속이곤 한다.

이러한 선박은 허가된 선적 구역이 아닌 국제 수역에서 중국 선박과 만나 직접 물건을 거래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로는 더욱더 은밀하게 움직이고자 일부러 기상 조건이 좋지 않은 날을 택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러한 선박에 선적된 석유의 출처를 정확히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팔락샤히 분석가는 주로 동남아시아 바다에서 거래가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동쪽에 전통적으로 유조선들이 많이 모여들며 수화물을 서로 옮기는 수역이 있습니다.”

이렇게 거래한 뒤엔 ‘리브랜딩’ 작업을 거친다.

팔락샤히 분석가는 “석유를 넘겨받은 선박이 말레이시아 해역에서 중국 북동부로 향해 운송한다”면서 “이렇게 하면 이란산 원유가 아닌 말레이시아산 등으로 둔갑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의 세관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이 말레이시아에서 수입한 원유의 규모는 1년 전에 비해 54% 증가했다.

니콜라제 부국장은 말레이시아 당국이 보고한 대중국 수출 석유량은 말레이시아의 총 원유 생산량을 초과한다면서 “이 때문에 말레이시아가 보고한 건 실제로 이란산 석유로 여겨진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7월과 10월엔 이란 유조선이 “무단으로 석유를 선적했다”는 이유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당국에 체포됐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소규모 은행

중국 산둥성 옌타이항에 정박 중인 초대형 유조선
Getty Images
중국 산둥성 옌타이항에 정박 중인 초대형 유조선의 모습. 이란산 원유 대부분이 이러한 항구로 이송된다

한편 니콜라제 부국장은 중국이 이란산 석유 구매 시, 서방의 감시를 받는 국제 금융 시스템 대신 자국 내 소규모 은행을 통해 거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재 대상인 이란산 석유 구매 시 뒤따르는 위험을 잘 알고 있는 중국이기에 대금 결제 시 대형 은행을 거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대신 국제적으로 크게 노출되지 않는 소규모 은행을 이용합니다.”

아울러 이란산 원유에 대한 대금도 달러 중심의 국제 금융 시스템을 우회하고자 중국 위안화로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팔락샤히 분석가는 “석유 대금은 이란 정권과 연관된 중국 은행 계좌에 입금된다”면서 “그리고 이 돈은 중국산 상품 수입에 사용되며, 일부는 다시 이란으로 보내질 것”이라면서 “그러나 어떻게 이뤄지며, 이란이 모든 대금을 다시 송금할 수 있을지는 매우 불투명”하다고 덧붙였다.

일부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은 자국 내 “환전 센터”를 걸쳐 이러한 자금을 더욱더 추적하기 어렵게 한다고 한다.

유가 급등에 대한 우려

지난달 24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외 원조 패키지에 서명했다. 해당 법안엔 이란산 석유에 대한 확대된 제재안도 담겼다.

새로운 법안은 미 당국이 가한 제재를 위반해 의도적으로 이란산 원유를 처리하거나 선적하는 외국 항구, 선박, 정유소를 모두 겨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 금융 기관과 제재 대상인 이란 은행 간 모든 거래에 대한 소위 2차 제재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팔락샤히 분석가는 미 당국이 이러한 법을 전면적으로 시행하긴 꺼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주유소의 모습
Getty Images
팔락샤히 분석가는 “바이든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외교 정책이 아닌 국내 유가”라고 지적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미국 내 유가이기 때문이다. 외교 정책보다 이게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란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도 3번째로 큰 산유량을 자랑하는 국가로, 하루 생산량만 약 300만배럴에 달한다. 전 세계 총생산량의 약 3%에 해당하는 규모다.

전문가들은 공급 차질은 국제 유가 급등을 부추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팔락샤히 분석가는 “바이든 대통령도 미국이 이란의 수출량을 줄이면 시장에 공급되는 석유량이 줄어들고, 이렇게 되면 국제 유가가 치솟을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만약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면서 이는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에선 대선을 앞두고 피하고 싶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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