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인디아 추락 직전 연료스위치 꺼졌다…예비 조사 결과 발표

수많은 사상자를 낳은 에어인디아 여객기 사고 예비 조사 결과, 이륙 직후 엔진으로 공급되는 연료가 차단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복구한 조종석 음성 기록에서 한 조종사가 "왜 (연료를) 차단했냐"고 묻자 다른 조종사는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런던으로 향하던 보잉 787-8 드림라이너는 지난달 12일 인도 서부 아메다바드 공항에서 이륙한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추락해, 승객 대부분을 포함한 260명이 숨졌다. 영국 국적 승객 한 명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인도항공사고조사국(AAIB)이 주도하는 이번 사고 조사는 현재 진행 중이며, 보다 상세한 최종 보고서는 12개월 이내에 나올 예정이다.
비행 기록 장치 자료에 따르면, 두 개의 연료 제어 스위치가 이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1초 간격으로 '작동'에서 '차단' 상태로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연료 제어 스위치는 보통 착륙 후 엔진을 끄기 위해, 또는 엔진에 불이 붙는 등 긴급 상황일 때만 차단으로 조작한다.
연료가 차단되면서 두 엔진 모두 추진력을 잃었다고 AAIB는 밝혔다.
이어 조종석에서는 한 조종사가 왜 연료를 껐냐고 묻는 등 혼란스러운 대화가 오갔다. 해당 항공기는 기장인 수밋 사바르왈과 부기장인 클라이브 쿤다르가 조종하고 있었다. 보고서는 어떤 음성이 누구의 것인지는 명시하지 않았다.
이후 연료 스위치가 다시 정상적인 운항 상태로 돌아가면서 엔진 재점화 절차가 자동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한쪽 엔진만 일부 추진력을 회복했을 뿐, 기체 감속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조종사 중 한 명은 추락 직전 긴급 구조 신호를 보냈지만, 항공기는 곧장 의대생과 의사들이 지내는 숙소 건물로 추락해 폭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두 조종사는 "비행 전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앞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사고 원인으로 조류 충돌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보고서는 비행경로 근처에서 "유의미한 조류 활동 관찰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현재 조사 단계에서 B787-8 및 GE GEnx-1B 엔진 운영사나 제조사에 권고할 조치는 없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미국 연방항공청(FAA)이 2019년 일부 보잉 737 항공기에 연료 제어 스위치 잠금장치가 해제된 채 설치된 사례를 '특별 감항성 정보회보'(Special Airworthiness Information Bulletin)를 통해 경고한 바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는 법적으로 강제되는 '감항성 개선지시'(Airworthiness Directive)가 아닌 권고사항이었다.
이번에 추락한 에어인디아 VT-ANB 기종에도 동일한 스위치 설계가 적용됐다. 하지만 권고사항이었기 때문에, 항공사는 별도의 점검을 하지 않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이후 VT-ANB 항공기에서 연료 제어 스위치 관련 결함은 보고되지 않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설계가 사고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에어인디아 대변인은 예비 조사 보고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AAIB와 다른 조사 기관에 전적으로 협조하겠다"라며 "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으며, 모든 문의는 AAIB로 전달해달라"고 덧붙였다.
보잉 역시 성명을 통해 유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규정에 따라 정보 제공은 AAIB가 담당한다고 설명하고, 앞으로도 조사에 협력하고 고객사인 에어인디아를 계속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성명에서 인도 당국의 협력에 감사를 표했고, 보고서에 보잉 787 항공기나 GE 엔진 운영사에 대한 별도 권고사항이 포함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이번 예비 조사를 통해 어떠한 결론도 내려지지 않았고 조사도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조종사들의 행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고는 최근 항공 역사상 가장 큰 참사 중 하나로 꼽히며, AAIB를 중심으로 보잉과 엔진 제조사 GE, 에어인디아, 인도·영국·미국 항공 당국이 공동으로 조사에 참여하고 있다.
ICAO 규정에 따르면 예비 보고서는 사고 발생 30일 이내에 제출돼야 하지만, 공개는 의무 사항이 아니다.
이번 사고는 2011년 787-8 드림라이너가 도입된 뒤 처음으로 인명 피해가 발생한 추락사고다.
추락 직후 고성능 비행기록장치(EAFR)라고도 불리는 블랙박스 두 개가 비행기 잔해에서 회수돼 사고 당시 마지막 순간을 재구성하는 데 결정적 단서가 됐다.
블랙박스는 조종사 무전 통화부터 주변 조종석 사운드까지 광범위한 비행 데이터와 조종석 내부 음성을 기록한다.
이번 추락 사고는 민영화 이후 사업 전환이 한창인 에어인디아에 큰 타격을 입혔다. 2022년 타타그룹은 인도 정부로부터 에어인디아를 인수했다.
에어인디아는 사고 이후 일부 대형 항공기의 국제선 운항을 줄이며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
이번 참사는 인도 항공 안전 실태에도 다시금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달 초, 인도 민간 항공 규제 기관은 에어인디아가 보유한 드림라이너 33대 중 26대에 대해 강화된 안전 점검을 완료했다. 큰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번 주 BBC와의 인터뷰에서 인도 항공 안전 규제 기관인 민간항공국(DGCA) 국장은 대형 사고가 발생한 두 해를 제외하고는 2010년부터 2024년까지 인도의 연간 항공사고 건수가 매년 세계 평균보다 꾸준히 낮은 숫자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몇 주간 정비 관리 부실과 훈련 부족 등을 지적하는 불안한 보고들이 잇따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