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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가 떼창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OST, 글로벌 차트를 뚫다

12시간 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이 스포티파이, 공연, 클럽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대담한 후크(반복적인 리듬이나 가사로 귀를 사로잡는 부분)와 강렬한 감성으로 젊은 층을 매료시킨 것이다.

약 2만 명의 열광적인 팬들이 여름밤 런던 O2 아레나를 가득 채웠다. 번쩍이는 응원봉이 허공에서 흔들리는 가운데, 무대에 오른 J팝 디바 아도(그림자 실루엣으로 등장했다)가 노래로 공연의 문을 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시리즈 '스파이×패밀리'에 등장하는 '쿠라 쿠라'라는 노래로, 관중들에게 매우 익숙한 곡이었다.

1960년대 스타일의 팝 그루브, 재즈 리프, 극적인 록 오페라를 넘나드는 변화무쌍한 스타일로 청중을 단숨에 사로잡은 이 곡은 오늘날 애니메이션 음악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음악이 애니메이션을 넘어 독자적인 생명력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역사는 20세기 초부터 이어져 왔다. 해적, 공상과학 전쟁, 마법, 스포츠, 무협, 애절한 로맨스 등 일본 애니메이션은 무한한 이야기와 스타일을 자랑해왔다. 애니메이션에 사용된 OST 역시 과감하고 다양했다(애니메이션 음악은 종종 한 곡 안에서도 형태를 바꾸기도 한다).

종류는 다양하지만 이러한 애니메이션 음악은 공통적으로 시각적 요소를 돋보이게 하고 우리를 이야기와 더욱 긴밀하게 연결시킨다. 게다가 디지털로 작품을 보는 시대가 되자, '원피스', '귀멸의 칼날', '주술회전', '드래곤볼 Z', '카우보이 비밥', '진격의 거인', '나루토' 등 내로라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시리즈에서 음악이 작품의 흥행에 큰 역할을 하게 됐다. 강력한 테마로 이야기의 생동감을 더해준 것이다. 이와 함께 애니메이션 음악, 즉 애니송은 이제 젊은 층이 향유하는 주요 음악 분야로 떠올랐다.

애니메이션 스트리밍 플랫폼 크런치롤과 내셔널 리서치 그룹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Z세대 중 54%가 애니메이션 팬이라고 한다. 애니메이션이 비욘세만큼이나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뜻이다.

스포티파이 역시 2021년과 2024년 사이 애니메이션 음악 스트리밍이 전 세계적으로 395% 증가했고, 이용자들이 만든 애니메이션 재생 목록은 기사 작성 시점 기준 720만 개에 달한다고 밝혔다. 스포티파이 대변인은 전 세계 애니메이션 음악 소비의 약 70%가 29세 미만 이용자에게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스포티파이의 글로벌 에디토리얼 총괄 설리나 옹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애니메이션 음악은 글로벌 문화로 발전했으며, 그 중심에는 Z세대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팬들이 화면을 넘어서 음악과 연결되는 것을 목도했습니다. 음악 청취자들은 애니메이션을 통해 다른 방법으로는 발견하지 못했을 음악의 스타일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애니메이션 음악 팬들은 애니메이션에서 영감을 받은 다양한 사운드를 향유할 수 있는 플레이리스트도 만들었습니다. 이 공간에서 더 많은 아티스트가 영향을 받으면서, 사운드는 대담하고 예상을 뛰어넘는 형태로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음악의 세계적 인기는 21세기에 제작된 작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디지털의 발전으로 대중이 방대한 컬렉션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기타다니 히로시가 부른 해적 판타지 '원피스'의 오리지널 테마곡 '위 아'(We Are!)와 같은 수십 년 된 음악도 새로운 팬덤을 쌓고 있다. 애니메이션 음악의 후크는 지속적인 생명력을 지향한다.

멜로디와 가사(온라인에서 쉽게 번역되거나 다국어 버전으로 출시)는 캐릭터나 내러티브와의 친밀감, 아드레날린, 일탈, 향수 등 다양한 감각을 자극한다. 크런치롤의 음악 구매 담당 이사 우토 사토시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프닝과 엔딩 크레딧 음악은 팬들이 애니메이션과 정서적으로 연결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애니메이션 시리즈 '귀멸의 칼날'의 인트로 음악 '홍련화'는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끈 애니메이션 음악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 곡은 일본 싱어송라이터 리사가 2019년에 발표했다. 폭발적인 록 사운드와 결합된 우아한 발라드 곡으로, 영국 피아니스트 조 젠킨스는 물론 틱톡 인플루언서나 2020 도쿄 올림픽 폐막식(기악 교향곡으로 편곡) 등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리사는 빌보드 재팬과의 인터뷰에서 이 곡을 애니메이션 속 인물에 초점을 둔 곡이라 설명했다.

"비극적인 과거에도 불구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인기 급등한 이유

코로나19 팬데믹은 애니메이션 음악이 주목받고 주류로 진입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어쩌면 애니메이션 특유의 무제한적인 주제와 정서적 강렬함, 자유로운 사운드가 봉쇄가 주는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 역할을 했을지도 모른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2022년 기사에서, 2020년과 2022년 사이 애니메이션 콘텐츠에 대한 전 세계 수요가 118%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를 언급하며 "애니메이션은 세계에서 코로나에 가장 강력하게 저항한 인기 엔터테인먼트일지도 모른다"고 평가했다.

일본 싱어송라이터 리사는 애니메이션 시리즈 ‘귀멸의 칼날’ 오프닝 테마 ‘홍련화’로 큰 인기를 끌었다
Getty Images
일본 싱어송라이터 리사는 애니메이션 시리즈 '귀멸의 칼날' 오프닝 테마 '홍련화'로 큰 인기를 끌었다

영국영화연구소에서 펴낸 『애니메: 역사』 등 여러 책을 저술한 조너선 클레멘츠는 "온라인 플랫폼의 증가로 인해 새로운 팬들이 애니메이션을 접할 수 있는 기회와 시청 시간이 빠르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자, 많은 어린 팬들이 여전히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면서도 소비력을 갖춘 10대가 되었습니다."

젊은 팬들에게 애니메이션 음악은 일본 대중문화, 그리고 그 너머 세계와 이어주는 관문이다. 애니메이션을 통해 새로운 스타가 전 세계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만화를 각색한 '최애의 아이'(영문명 Oshi no Ko)의 2023년 OST '아이돌'로 애니메이션 최초로 빌보드 글로벌 차트 1위를 차지한 J팝 듀오 요아소비가 그 예다.

힙합 그룹 크리피 너츠는 빠른 랩과 라틴풍 연주가 어우러진 초현실적 팝 '블링-뱅-뱅-본'(애니메이션 '마슐'의 오프닝 테마)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신카이 마코토의 판타지 드라마('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스즈메의 문단속')에 삽입된 멜로딕 록커 래드윔프스의 노래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애니메이션 테마곡으로 사랑받는 스타로는 아도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원피스 필름 레드'에서 우타 역을 맡아 신나는 일렉트로 팝 뱅어 '뉴 제네시스'를 불렀고, 이는 그가 세계로 도약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아도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뉴 제네시스' 데모를 처음 들었을 때 세상이 열리고 따뜻한 빛이 비추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우타라는 캐릭터는 좋은 의미로 인간적인 감성이 충만하다"며, 이 곡이 주인공의 복합적인 감정을 매끄럽게 담아낸다고 설명했다.

"우타는 기쁨과 행복뿐만 아니라 분노, 증오, 슬픔도 매우 단순하면서 공감할 수 있게 표현하는 캐릭터입니다."

오늘날 애니메이션 음악은 다양한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대담한 후크, 매력적인 스토리텔링, 설득력 있는 향수를 통해 다양한 세대를 다른 음악보다 더욱 강하게 이어주는 점이 눈에 띈다.

X세대 여성인 나 역시 알파세대 아들과 함께 이를 경험했다. 클레멘츠는 "애니메이션 음악에서 주목해야 할 사람은 (애니메이션 OST 작곡가) 우시오 켄스케"라며 "그의 디테일과 사실주의는 정말 놀랍다"고 말했다. "2024년에 공개된 성장 드라마 '너의 색'에서 그는 영화 속 아마추어 밴드의 사운드를 만들었습니다. 굉장히 섬세하게 '뉴 오더'의 초창기 시절에서 영감을 받은 일렉트로닉 팝을 만들었어요. 화면 리허설 장면에 적합한 실내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일본 교회당에서 실제 배경음을 녹음했을 정도입니다."

라이브 공연장 속 애니메이션 음악

이제 애니메이션 음악은 화면 속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까지 들어왔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영화 음악으로 유명한 거장 히사이시 조와 같은 베테랑 작곡가나 아도, 요아소비 등 인기 아티스트들이 전 세계에서 콘서트를 열고 있다. 영국의 다양성을 중심에 둔 애니메이션 및 게임 모임인 '애니메 앤드 칠'이 주최하는 모임과 행사에서도 애니메이션 음악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애니메 앤드 칠의 설립자 에네니 밤바라-압반은 "Z세대는 애니메이션 음악을 특히 다르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이들은 글로벌 인터넷 문화에서 성장한 세대입니다. 이들에게는 J팝과 K팝, 애니메이션 뮤직 비디오(AMV) 모두 하나의 온라인 생태계의 일부입니다."

"틱톡이나 유튜브 같은 플랫폼은 애니메이션 음악에 또 다른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클립이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이를 리믹스하면서 애니메이션에 삽입된 음악이 갑자기 세계적 유행으로 떠오르곤 합니다. 저희 행사에서도 관객들이 가사를 다 알고 후렴구를 따라 부르며 감동하는 모습을 항상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음악의 "정서적 각인"을 강조했다. "애니메이션 음악은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작품의) 심장 박동입니다."

서양 뮤지션들이 애니메이션 문화에 동참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2003년, 프랑스의 일렉트로닉 듀오 다프트 펑크는 자신들의 디스커버리 앨범을 '인터스텔라 5555'(전설적인 아티스트 마츠모토 레이지가 감독)라는 애니메이션으로 재해석했다. 당시만 해도 이러한 시도는 기발한 호기심에 불과해 보였다.

하지만 요즘에는 릴 우지 버트나 메건 더 스탤리언 같은 미국 힙합 스타들, 혹은 얼터너티브 팝의 히로인 빌리 아일리시가 가사와 노래 제목에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인용하는 등 많은 서양 뮤지션들이 자신의 음악 활동에 애니메이션을 활용하고 있다. 유명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바탕으로 작곡을 하는 런던의 인디 래퍼 샤오 다우(Shao Dow)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저는 애니메이션을 제 삶 안에서 아이디어를 탐구하는 수단으로 사용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원피스의 10대 캡틴 루피가 자신의 초기 창작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했다.

"해적왕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소리치는 이 캐릭터를 보면 사람들은 비웃지만, 루피는 계속 그렇게 했어요. 비록 이것은 만화지만, 꿈을 향해 나아가는 루피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저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애니메이션 음악의 근원적 힘일지도 모른다. 이 음악은 우리와 함께 나이를 먹을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이 음악을 떠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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