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사로잡은 중국의 '1분 드라마'
틱톡의 등장과 함께 사람들이 짧은 영상 콘텐츠에 빠져들게 된 이후, 또 하나의 파격적인 중국발 영상 트렌드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1~2분 사이의 방송분 수십 개로 구성된 일명 '마이크로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들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엔터테인먼트 앱 다운로드 상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마이크로 드라마 콘텐츠는 전개 속도가 빠르고, 내용이 자극적이며, 때로는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재벌 남편의 이중생활', '금지된 알파와의 운명적 사랑'과 같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예술성을 표방하지 않는다.
100시간 분량의 텔레노벨라(주로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는 중남미 국가의 일일 연속극)를 빨리 감기로 몰아보듯,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시청자들은 각종 자극적인 상황과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한 시청자는 마이크로 드라마에 대해 "정말 좋다"면서 "등장인물들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시작하자마자 입을 맞춘다"고 했다.
전 세계 다운로드 수억 회
시장 조사 기관 '센서 타워'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마이크로 드라마 앱은 전 세계적으로 약 9억5000만 회 다운로드되었다.
벨기에 소재 싱크탱크 '브뤼겔'의 선임 연구원인 알리시아 가르시아-에레로는 "이러한 마이크로 드라마는 접근성이 좋고, 이동하며 보기 간편할 뿐만 아니라, 빠르고 중독적"이라고 설명했다.
상위 마이크로 드라마 앱을 소유한 기업들은 대부분 미국이나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있으나, 그 뿌리는 중국에 두고 있다.
일부 마이크로 드라마는 중국에서 촬영되어 영어로 더빙 작업을 거친다. 그러나 영국이나 미국에서 아예 영어로 제작되는 드라마들도 등장하는 추세다.
런던에서 제작자로 활동하며 지난해 초 마이크로 드라마 제작사를 설립한 리우 산산은 다양한 플랫폼에 납품할 시리즈물 15개를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리우에 따르면 한 시리즈당 평균적으로 40~50회차로 구성되며, 7~10일이면 촬영이 끝난다고 한다. 배우는 영국인들이나, 제작진은 영국인과 중국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최근 제작한 시리즈 중 하나로는 58부작 로맨스물인 '내 비밀 귀족 연인'을 꼽을 수 있다.
주인공 '우즈버리 공작' 역은 영국 리얼리티 TV쇼 '메이드 인 첼시'로 이름을 알린 딕비 에글리가 맡았다. 에글리는 마이크로 드라마를 통해 배우로서 경력을 시작할 기회를 얻었다.
에글리는 "(마이크로 드라마 출연이) 배우들에게는 훌륭한 연습의 기회라고 생각한다"면서 "속도가 매우, 매우 빠르다"고 설명했다.
중국 내 마이크로 드라마 제작 속도는 이보다 훨씬 더 빠르다. 중국 국영 '펑파이 뉴스(더 페이퍼)'에 따르면 일주일 만에 100회분을 촬영하기도 한다.
'중국 인터넷 방송 서비스 협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중국에서는 마이크로 드라마 3만 개 이상이 제작되었다. 총 수익은 504억위안(약 9조원)을 기록하며 425억위안인 중국 영화 흥행 수익을 넘어섰다.
중국에서 강화되고 있는 '검열'
그러나 마이크로 드라마 산업은 점점 더 철저한 감시를 받고 있다.
올해 2월에는 중국판 틱톡인 '도우인' 등 중국 국내 앱에서 마이크로 드라마 시리즈 1200개 이상이 삭제되었다.
중국에서 언론 감독 업무를 맡고 있는 '국가광파전시총국(NRTA)'은 마이크로 드라마는 "주류 가치관을 확산하고 발전시키는 새로운 통로"로서 기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음란하거나 폭력적인" 콘텐츠가 금지되는 것뿐 아니라, "저속하고 품위 없는" 내용도 시정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저속하다"는 기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으나, 억만장자 CEO가 청소 직원과 사랑에 빠지거나 고부 갈등 관련 줄거리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영국 켄트 대학교의 오스카 저우 교수는 중국 당국이 마이크로 드라마의 급속한 성장에 뒤늦게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너무나도 새로운 산업이기에 검열 시스템 전체가 뒤처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틱톡에서 삭제된 시리즈물 중 하나인 '세계 1위 부자는 내 아버지'는 "물질주의를 조장하고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생활 방식을 보여준다"는 이유로 비난받았다.
그러나 줄거리가 거의 유사한 '억만장자의 이혼한 손녀'는 여전히 중국 내에서 시청 가능하다. 해당 시리즈물은 2023년 중국에서 처음 공개된 이후 영어 더빙 작업을 거쳐 유튜브에서 조회수 400만 회를 돌파했다.
매우 인기가 높아 해당 시리즈물을 제작한 '쇼트맥스'사는 새로운 시장을 공략하고자 지난해 일본어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쇼트맥스'의 리우 진롱 CEO에 따르면 일본 외에도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등지에서도 현지화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또 다른 마이크로 드라마 제작사인 '릴쇼트'는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 출신 배우들을 동원해 스페인어로 된 시리즈 여러 편을 제작했다. 그 중 '마지막으로 키스해주세요'의 경우 예고 영상 조회수가 틱톡과 인스타그램에서 수백만 회를 기록했다.
'센서 타워'에 따르면 가장 수익성이 높은 시장은 미국이나, 2025년 1분기 라틴아메리카에서도 다운로드 회수가 1억 회 가까이 되었으며, 동남아시아에서는 8700만 회를 기록했다.
중국의 데이터 연구소 '데이터아이'는 관련 기업들이 지속적인 확장을 위해 현재는 중동과 아프리카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카메룬 출신으로, 마이크로 드라마 팬임을 자청하는 쿰 샌디는 2023년 SNS에 올라온 예고 영상을 보고 중국 마이크로 드라마를 처음 시청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는 '약혼자', '네 아빠와 결혼했어', '메이드의 복수' 등 시리즈물 60개 이상을 시청했다고 한다.
"전 그야말로 중독됐다고 말할 수 있죠."
추가 보도: 잭 라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