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지구보다는 인질들에 대한 우려 … 이스라엘서 커지는 종전 여론
가자 전쟁이 시작되고 20개월간 아미트 할레비는 거리에서 침을 맞고, 고함을 듣고, 돌과 달걀 세례를 겪어야 했다. 단지 평화를 외쳤기 때문이었다.
할레비는 "우리는 그저 흰옷을 입고 모여 히브리어, 아랍어, 영어로 '연민, 평화, 영양 안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조용히 앉아 있던 여성들이었다"며 말을 꺼냈다.
"저희는 '과연 누가 평화에 반대하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마치 점령 중단이나 가자 지구 해방을 요구하는 것처럼 비난과 증오가 쏟아졌습니다. 한번은 텔아비브에서 평화 시위를 벌이고 있는데, 한 남성이 다가오더니 우리가 가자 지구에서 강간당하길 바란다고 소리쳤습니다. 우리는 그저 '사랑'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조용히 앉아 있었을 뿐입니다."
BBC는 전쟁이 벌어진 초기에 할레비를 처음 만났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손녀인 그는 당시 가자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가족들과 이야기를 하며 분노와 좌절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할레비는 이스라엘의 행동은 "나치화"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족 내 무언가가 변한 것 같다고 했다.
할레비는 "아버지가 전에는 하지 않으셨을 법한 말을 한다. 그게 내 마음을 가라앉힌다"면서 "아버지가 '그럼 하마스 (제거)는 어쩌고?'와 같은 말씀을 하시면 이에 나는 '아버지, 만약 지난밤 어린이 80명이 숨졌다면, 그런 건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특히 유대인으로서 아버지는 이러한 일이 멈추길 원하셔야죠'라고 말한다. 그럼 아버지도 이해하신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 내에서도 가자 지구 주민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긴 하나, 할레비와 같은 의견을 내는 이들은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다.
'이스라엘 민주주의 연구소(IDI)'는 지난달 자국민들을 대상으로 가자 지구 내 민간인들의 고통이 이스라엘 정부의 전쟁 결정에 영향을 미쳐야 하는지 물었다. 그 결과 응답자의 다수인 67%가 정부가 이를 무시하거나, "아주 조금만" 고려해야 한다고 답했다. 유대계 이스라엘인 중에서는 이렇게 답한 비율이 3분의 2를 넘었다.
많은 이스라엘인들이 1년 반 이상 이어진 전쟁에 환멸을 느끼며 이제는 종전을 원한다. 그러나 그 이유는 대부분 가자 지구 주민들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 하마스에 여전히 억류된 것으로 추정되는 자국민 54명(수치는 달라질 수 있다)에 대한 걱정에서 대부분 비롯된다.
'부정의 벽'
이번 가자 전쟁은 지난 2023년 10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해 약 1200명을 살해하고 251명을 인질로 납치하며 시작되었다.
가자 지구 내 하마스가 관리하는 보건부에 따르면 그 이후로 팔레스타인인 최소 5만4607명이 사망했다. UN은 이중 어린이가 25% 이상일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 이스라엘이 올해 3월 최신 휴전 합의를 위반한 이후, 동료 시민운동가들은 침묵시위 현장에 가자 지구에서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어린이들의 사진을 들고 나섰다.
해당 시위를 조직한 이들 중 하나인 알마 벡은 "우리는 수많은 분노, 공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면서 "그러나 사람들은 우리에게 이 아이들이 누구이며, 이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물어왔다. 정말 순수하게 궁금해하고, 걱정하는 모습이라 놀랐다"고 했다."
벡은 이스라엘 국민들이 가자 지구 내 벌어지는 고통에 대해 제대로 접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와 언론이 국민들이 가자 지구 내 상황을 알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는 매우 강력하고 공고한 부정의 벽"이라는 설명이다.
"(이번 시위는) 사상자 수에 인간적 얼굴과 이야기를 부여한 최초의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건 외면하기 어렵죠."
하마스의 공격 이후 이스라엘인들은 공포와 분노로 똘똘 뭉쳐 군사 작전에 대해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갈등이 길어지며 피로감 또한 증가하고 있다.
이미 분쟁에 대한 지지는 1년 전부터 약화하기 시작했다. IDI에 따르면 라파에서의 새로운 군사 행동 전개에 지지한다는 이들은 3분의 1 미만이었으며, 3분의 2 가까이 되는 응답자들이 하마스와의 협상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올해 여러 다른 유명 기관들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인질 협상에 중점을 둔 휴전 협상을 지지한다는 이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커지는 환멸
이번 달 예루살렘에서 '프라이드' 행진 현장에는 인질들의 얼굴과 함께 '전쟁을 멈춰라'라는 슬로건 또한 무지개 깃발 사이사이 눈에 띄었다.
프라이드 행진에 남자친구와 참석했다는 이트츠하크 지터는 비록 현재 이스라엘 예비군 소속이지만, 이번 전쟁은 더 이상 싸울 가치가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지터는 "우리는 전쟁의 목표에 한 걸음도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불과 1년 전만 해도 이런 의견을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은 특히 군대에서 매우 불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이 전쟁에 피로감을 느끼고, 싫어하고, 끝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질들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러한 의견에 수긍하는 이들은 더 많아진다"고 했다.
실제로 하마스에 붙잡힌 인질들의 귀환은 지금까지 이스라엘 국민들이 종전을 원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이스라엘에서 매주 열리는 반전 시위에서도 가자 지구 주민들의 상황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지터는 "10월 7일 학살에 환호한 이들에게 공감을 보내는 이들은 거의 없다"면서 "(가자 지구 주민들은) 지난 2006년 하마스에 표를 던졌고, 그 이후 그들을 몰아내고자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가자 지구에서 만약 대규모 (반 하마스) 시위가 벌어졌다면 오늘날 우리는 전혀 다른 대화를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가자 지구에서의 군사 작전이 남아 있는 인질 구출에 중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군의 구출 작전을 통해 풀려난 생존 인질은 8명이며, 하마스와의 협상을 통해 풀려난 이들은 140명 이상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군사적 압박을 통해 하마스를 이 같은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총리 관저나 텔아비브의 인질 광장에서 시위 중인 많은 이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발달 심리학자로, 인질 가족들을 위한 시위에 참여한 마얀 엘리아후 이프하르는 "그런 식으로는 이들을 데려올 수 없다"면서 "이건 끔찍한 실수다. 전쟁이 그들을 죽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생각은 인질 가족들 사이에서도 확산하고 있다. 이들은 전쟁이 길어질수록 끌려간 가족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숨지거나,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한 네타냐후 총리의 또 다른 전쟁 목표인 '군사 및 통치 세력으로서의 하마스 궤멸'이 과연 달성 가능한지에 대한 환멸도 커지고 있다.
'정치적 싸움'
전쟁이 20개월간 이어지면서 피로감은 이스라엘 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긴 전쟁으로 인해 일부 예비군은 벌써 3, 4번째 소집되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윤리적인 이유도 있지만 건강, 재정 상황, 가족 관련 부담 등으로 인해 복무를 거부하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이렇듯 거리, 징병 센터에서도, 심지어 자신의 내각 안에서도 종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나 네타냐후 총리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IDI의 타마르 허먼 교수는 그 이유 중 하나로, 종전을 요구하는 이들 대부분이 원래 네타냐후 총리에게 투표하지 않을 사람들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허먼 교수는 "(이스라엘인) 대부분이 이번 전쟁을 정치적 싸움으로 보고 있다"면서 "(이스라엘에서는) 정부를 지지한다면, 정부가 무엇을 하든 정부를 지지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정부에 반대하면, 정말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을 반대한다는 뜻이다. 흑백 논리다. 그리고 이 전쟁은 그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고 했다.
하마스 재결집에 대한 우려
네타냐후 총리 지지자들의 전쟁에 대한 생각을 듣고자 취재진은 네타냐후 지지 집회 현장을 찾았다.
크네세트(이스라엘의 국회)로 이어지는 거리마다 파란색과 흰색의 이스라엘 국기가 넘실거렸고, 길가에 설치된 거대한 스피커에서는 귀가 아플 정도로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부분이 보수적인 유대교 규범에 따른 복장 차림인 참가자 곁으로 강화 유리 창문을 단 버스들이 지나갔다. 이스라엘이 점령한 서안 지역에서 온 정착민들을 실어 나른 차들이다. 어깨에 M16 소총을 메고 있는 청년 남성들도 많았다.
취재진은 입구 근처에서 이스라엘과 그의 아내를 만났다.
이스라엘은 "(지금) 전쟁을 끝낼 순 없다"며 말을 꺼냈다.
"하마스가 완전히 패배하고, (이들과 관련된) 모든 시설이 완전히 파괴된 이후에야 전쟁이 끝나야 한다. 지금 철수하면 그들은 결국 모든 걸 재건할 것이고, 3~4년 뒤 상황은 또 한 번 반복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시민처럼 그 또한 인질 귀환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고려해야 할 다른 요소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일정한 조건이 있어야 한다"면서 "지금 몇 명을 구해서 2~3년 후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나면 수천 명이 더 죽을 것이다. 그건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시위 참가자인 아비그도르 바르길 또한 이번 전쟁은 "하마스가 무릎을 꿇어야" 끝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가자 지구 주민들을 인도네시아, 프랑스, 영국 등 외국으로 이주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왜 가자 지구 주민들을 이주시켜야 하는지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바르길은 "거긴 그들의 집이 아니다. 그들이 빼앗은 곳"이라면서 "여긴 우리 땅이다. 토라(경전)에 기록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땅"이라고 답했다.
- 하마스 인질 석방 3일째 … 미국 국적 4살 소녀도 포함
- 하마스 공격 후 어린 딸을 두고 실종된 아내, ‘먹지도 자지도 못한다’는 남편의 이야기
- 하마스, 인질 석방 약속…미국의 가자지구 휴전안에 수정 요구
합병의 꿈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하기 위한 이 같은 종교적 정당화는 이번 전쟁 이전부터 이미 네타냐후 연정 내 극우 민족주의 정당들이 줄곧 내세웠던 이야기이다.
베자렐 스모트리치 재무장관 등 내각 인사들은 오랫동안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 지역을 공식적으로 합병하거나, 그가 표현한 대로 "주권"을 주장해야 한다고 촉구해왔다.
그러다 가자 지구 전쟁이 발발하고, 이에 대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입장 등으로 인해 가자 지구마저도 합병할 수 있다는 희망이 움트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반드시 연정을 유지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그렇지 못할 경우 조기 총선을 치러야 한다.
미국의 유력 여론조사 기관인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가자 주민들을 추방하자는 방안은 세속주의자들을 포함해 이스라엘 내부에서 압도적인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종전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일부 보수 유권자들도 있으나, 여론조사 결과를 잘 들여다보면 전쟁에 대한 분열은 여전히 정치적 성향에 따라 뚜렷하게 나뉜다.
지난주 IDI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우파 성향 국민 중에는 약 절반이 여전히 이번 전쟁을 통해 인질을 돌려받거나, 하마스를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으나, 좌파 성향 응답자 중에는 같은 의견을 내놓은 이들이 6%에 불과했다.
하마스 공격 직후 이스라엘 여론은 잠시 단결하는 듯했으나, 오래된 정치적 분열이 다시 한번 시작되어 그 어느 때보다도 깊어지고 있다.
이프하르는 전쟁에 대한 견해차가 우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저는 가자 지구에 떨어지는 폭탄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찢어집니다. 하지만 그 폭탄 소리를 듣고도 '저들은 당할 만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제 친구들 중에도 있습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눈을 바라보기 힘들거든요."
'그곳은 제 고향, 조국입니다'
한편 몇 달 전 할레비는 결국 고국을 떠나 미국으로 향했다. 같은 민족인 사람들과 일상적으로 대립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또다시 고립감을 느끼고 있다.
미국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에 참석했는데, 다른 참가자들에게 자신의 국적을 밝히니 심지어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이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할레비는 "나는 그들 편에 서 있다고 말했고, 이스라엘에서도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에 참가했다고 항변했다"며 말을 이었다.
"그러자 한 소녀가 제게 '당신의 친구들도 대학살을 지지하냐' 같은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을 멈추기 위한 모든 행동을 지지하지만, 이런 시위들이 얼마나 증오에 가득 차 있는지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유럽, 미국 내 일부 팔레스타인 지지 운동은 반유대주의 의혹에 휩싸이며 할레비와 같은 이스라엘인들은 더욱 복잡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지금 저만큼 이스라엘을 미워하는 이도 없을 겁니다. 너무나도 배신당한 기분입니다. 거긴 제게 고향이자, 조국이자, 모국어의 나라이고, 저와 같은 민족과 친구들이 있는 곳입니다."
"이스라엘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팔레스타인인들뿐 아니라, 이스라엘인들과 유대인들에게도 최악입니다. 이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끔찍한 오점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