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 남은 상처'... 성적 차별, 여성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 뿌리내린 미묘한 성차별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기 쉽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성차별은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두뇌의 일부 영역을 '얇아지게' 만드는 것도 그중 하나다.
한밤중 길거리에서 성희롱을 당해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로 인한 스트레스 반응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예컨대 몸이 떨리거나 정신적인 혼란을 느끼는 것이다.
내 주변의 여성 친구들은 모두 이런 경험을 했다. 많은 여성들이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며 열쇠를 꽉 쥔 채 귀가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려고 대학 시절 가라테(공수도) 동아리에 들어가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을 반복적으로 연습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의사에 반하는 성적 관심이 즉각적인 위협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는 흔히 무시되거나 별것 아닌 듯 여겨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일상에 깊게 스며든 성차별 또한 신체적·정신적, 나아가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여성 인권 운동은 지난 세기 동안 많은 진전을 이뤘다. 오늘날 많은 국가가 임금 등에서의 성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세 명의 여성 총리가 배출됐고, 여성 노동자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점점 더 많이 볼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영국뿐 아니라, 많은 지역에서 성평등이 정체되거나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성별 임금 격차는 여전하며, 어린 여성을 포함한 여성 대상 폭력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전 세계적 통계는 충격적이다. 여성 세 명 중 한 명이 신체적 또는 성적 폭력, 혹은 둘 다를 경험했다고 말한다. 여기에 여성에게 우월 의식을 드러내거나 여성을 깎아내리는 등 일상적인 미묘한 차별도 존재한다. 겉으로는 칭찬처럼 보이지만 "여성은 본질적으로 더 친절하다", "여성은 감성적이고 남성은 이성적이다", "남성은 지배적이다"와 같은 고정관념에 기반한 '온정적 성차별'도 있다. 이러한 인식은 여성의 종속적인 지위를 강화하는 성 고정관념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여성의 역량 확대를 어렵게 만든다.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사회학자 패트리샤 호먼 등이 의학 저널 '랜싯'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정부 웹사이트에서 여성 건강과 관련된 정보가 삭제되거나 수정된 사례가 있다. 보고서는 "추가된 정보가 남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인식을 강화하고, 여성의 신체를 취약하고 보호가 필요한 대상으로 규정하는 한편 트랜스젠더를 위협으로 묘사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모성과 생식 건강 관리와 관련된 내용이 웹사이트에서 사라졌다. 예컨대 약물 사용, 피임, 응급 치료, 낙태 시술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던 사이트(reproductiverights.gov)로 연결되는 링크가 삭제된 것이다.
나는 이에 대해 미국 보건복지부에 논평을 요청했지만, 이 기사의 보도 시점까지 답변을 받지 못했다.
이 모든 사례들은 "구조적 성차별"이라 불리는 현상으로 귀결된다. 호먼은 구조적 성차별을 사회 제도 속에 내재된 권력과 자원에 대한 체계적인 성적 불평등이라고 정의한다. "구조적 성차별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 실제로 권력, 지위, 자원이 불균형하게 분배되는 방식을 말합니다."
뇌에 남은 '상처'
성차별은 여성의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그 영향이 항상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29개국에서 수집된 7800건 이상의 뇌 스캔 자료를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사회 전반의 성적 불평등은 여성의 뇌를 물리적으로 변화시킨다. 성 불평등이 심한 국가의 여성들은 감정 조절, 회복탄력성, 우울증 및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관련된 뇌 영역의 피질이 더 얇은 것으로 나타났다.
칠레 가톨릭대 정신과 의사 니콜라스 크로스리는 여성들이 겪는 불평등이 "뇌에 상처를 남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뇌는 경험과 학습에 따라 변화하고 적응하는 '가소성'을 갖고 있다. 예컨대 저글링 같은 간단한 기술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뇌는 변한다. 크로스리는 "저글링으로도 변하는 뇌라면, 자신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경험 역시 뇌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성평등한 국가에서는 이러한 뇌 변화가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불평등이 큰 국가에서는 남성의 뇌에서도 변화가 관찰됐지만, 여성만큼 크지는 않았다. 크로스리는 "따라서 성적 불평등을 개선하면 여성의 건강이 나아질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부담하는 비용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성차별이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다른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영국의 한 연구는 약 3000명의 여성을 수년에 걸쳐 추적 조사했다. 대상자의 5명 중 1명은 공공장소에서의 불안감, 모욕, 신체적 공격 등 다양한 형태의 성차별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4년 후 심리적 고통을 호소할 가능성이 세 배 더 높았으며 삶의 만족도도 더 낮았다.
주 저자인 런던 킹스칼리지 건강심리학자 루스 해킷은 "스트레스 경험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신체 손상이 발생할 수 있고, 이러한 생물학적 변화는 결국 정신 건강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크로스리가 관찰한 결과와도 맞닿아 있다.
해킷은 이후 52세 이상 여성을 대상으로 후속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에서도 성희롱이나 성차별을 경험한 여성들은 6년 뒤 정신 건강이 악화됐을 뿐 아니라 더 큰 외로움을 느꼈고 삶의 만족도와 삶의 질도 낮아졌다. 성차별이 지속적인 피해를 남긴다는 또 다른 증거다.
별도의 연구에서는 성평등 수준이 높은 사회의 여성들이 우울증 발병률이 낮다는 결과도 확인됐다.
정신 건강 문제만이 아니다. 성차별은 불평등한 의료 서비스로도 이어진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의료 현장에서 여성의 신체적 문제는 상대적으로 덜 심각하게 다뤄진다. 2024년 발표된 다른 연구는 통증을 호소하는 정도가 같아도 여성이 남성보다 진통제를 적게 처방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연구진은 "이는 통증 관리에서 구조적인 성별 격차가 존재함을 보여준다"며 "응급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옮겨진 여성 환자는 남성보다 통증을 호소했을 때 치료를 받을 가능성이 현저히 낮았다"고 밝혔다.
구조적 성차별의 피해 고리
패트리샤 호먼은 구조적 성차별이 여성의 복지 증진에 필수적인 자원, 예컨대 공정한 임금과 자율성에 대한 접근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가정폭력, 위험한 노동 환경, 만성 스트레스 같은 유해한 경험에 여성이 노출될 가능성을 높인다고 말한다.
남성 역시 구조적 성차별에서 자유롭지 않다. 표면적으로는 더 높은 임금을 받고 가사노동 부담이 적다는 이점이 있지만, 동시에 위험 감수, 폭력, 약물 남용, 의료 회피 등을 조장하는 '해로운 남성성' 규범도 강화되기 때문이다.
1만 9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메타분석에서도 여성에 대한 지배, 지위 추구, 성적 문란함 같은 전통적 남성성 규범을 내면화하는 남성은 정신 건강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연구진은 "성차별은 단지 사회적 불의가 아니라, 그러한 태도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도 정신 건강에 해로운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한다.
즉, 남성이 성차별에 근거한 성 역할 규범을 내면화할수록 그것은 오히려 남성의 건강에도 장기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남성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구조는 남성들로 하여금 비현실적인 남성성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압박을 만들어내고,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정신 건강이 악화될 수 있는것이다.
남성이 이런 고정된 남성성 기준에 부합하는 권력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그 좌절은 다시 여성에게 부정적인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한 연구에서는 남성에게 기대되는 권력·지위 욕구가 성희롱 증가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몇몇 실험에서는 과거 무력감을 경험한 남성이 일시적으로 권력을 얻었을 때 성희롱에 가담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
변화를 위해서
변화를 위해 시도해볼 수 있는 개인적·사회적 차원의 해결책이 있다.
보호자들은 어린 세대에게 적절한 행동 기준을 일찍부터 교육할 수 있다. 성 고정관념과 성차별적 인식은 생후 3개월부터 형성될 수 있다. 때문에 부모는 자녀가 어릴 때부터 가정 내 성차별적 인식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돕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남성이 여성에게 적대감을 보이는 '적대적 남성성'이 여성 대상 폭력 증가와 관련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노력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
정책적 해결책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남녀 구분 없이 모든 근로자에게 유급 가족 돌봄 휴가를 제공하는 제도다. 여러 북유럽 국가는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되는' 유급 육아휴직 제도를 도입했고, 이로 인해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이 크게 늘었다. 이는 돌봄 활동을 정상적이고 가치 있는 일로 인식하게 해주고,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강화해 경제적 손실을 줄여준다. 남성이 돌봄 역할에 적극 참여하면 남성성 개념도 달라질 수 있다. 심지어 '돌보는 남성성(caring masculinities)'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할 수도 있다.
호먼은 여성의 권한이 강화되면 사회 전체가 혜택을 얻는다고 말했다. 권력을 갖게 된 여성은 의료, 공중보건, 교육, 복지 및 사회안전 분야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투자는 결국 더 많은 사람의 건강 증진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구조적 성차별이 심해질수록 이 분야에 대한 공공투자는 줄어들어 남성을 포함한 모든 구성원에게 해가 된다.
성차별이 초래한 피해를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 또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원치 않는 차별 경험을 공유하면 더 많은 지지를 얻을 수 있고, 정신 건강에도 유익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러나 성차별이 구조적으로 만연해 있는 만큼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여러 연구가 보여주는 현실은, 여성들이 안전하다고 느끼며 구조적 성차별로 인한 건강 피해 없이 살아가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위협하는 문제들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변화의 가능성 역시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