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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 우크라이나 대출 계획 앞두고 러 국유자산 '무기한 동결' 합의

4시간 전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왼쪽)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파란색과 노란 별이 그려진 유럽연합(EU) 깃발 앞을 함께 걷고 있다.
Thierry Monasse/Getty Images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 동결 자산이 자국 재건에 사용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유럽연합(EU) 각국 정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이후 EU 내에서 동결돼 온 최대 2100억 유로(약 363조 6570억 원) 규모의 러시아 자산을 무기한 동결하기로 합의했다.

러시아 자금의 대부분은 벨기에 금융기관 유로클리어(Euroclear)에 보관돼 있으며, 유럽 정상들은 다음 주 열리는 중대 EU 정상회의에서 이 자금을 활용해 우크라이나의 군사·경제를 지원하기 위한 대출 재원으로 사용하는 방안에 합의하길 기대하고 있다.

러시아의 전면전이 시작된 지 거의 4년이 지나면서 우크라이나는 자금이 고갈되고 있으며, 향후 2년간 1357억 유로(약 234조 9,000억 원)가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유럽이 약 3분의 2를 부담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러시아 정부는 EU의 이러한 움직임을 '절도'라고 비난하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EU의 대출 계획에 대응해 벨기에 은행 유로클리어를 상대로 모스크바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고 지난 12일(현지시간) 밝혔다.

러시아 자산을 사용하는 것이 '공정하다'

러시아의 자산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 침공이 시작된 지 며칠 만에 EU 내에서 동결됐으며, 이 가운데 1850억 유로(약 320조 3600억 원)는 벨기에 금융기관 유로클리어에 보관돼 있다.

EU와 우크라이나는 이 자금이 러시아가 파괴한 것을 재건하는 데 사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벨기에 측은 이를 '배상 대출(reparations loan)'이라고 부르며, 우크라이나 경제를 900억 유로(약 155조 8500억 원) 규모로 떠받치기 위한 계획을 내놨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동결 자산을 러시아가 파괴한 것을 재건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공정하다"며 "그 돈은 결국 우리의 것이 된다"고 말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이 자산이 "우크라이나가 향후 러시아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의 소송 제기는 벨기에에서도 예상된 일이었다. EU 경제 담당 집행위원인 발디스 돔브로우스키스는 12일(현지시간), EU 금융기관들이 법적 절차로부터 "완전히 보호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만 불만이 있는 게 아니다.

벨기에는 이 계획이 실패할 경우 막대한 비용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유로클리어의 최고경영자 발레리 우르뱅은 이 자금을 사용하는 것이 "국제 금융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로클리어는 러시아 내에서도 160억~170억 유로(약 27조 7100억~29조 4400억 원) 규모의 자산이 동결돼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바르트 더베버르 벨기에 총리는 배상 대출 계획을 수용하기에 앞서 EU에 대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정당한 조건들"을 제시했으며, 이 계획이 자국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경우"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어두운 색상의 쓰리피스 정장을 입은 바르트 더베버르 벨기에 총리(왼쪽)가 런던 다우닝가 10번지를 방문해 자주색 넥타이를 맨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EPA/Shutterstock
바르트 더베버르 벨기에 총리는 12일(현지시간)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유럽의 러시아 동결 자산 활용 계획을 논의했다.

EU의 계획은 무엇인가?

EU는 다음 주 18일(현지시간) 열리는 정상회의를 앞두고, 벨기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막판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EU는 그동안 러시아 자산 원금 자체를 직접 건드리는 것은 피했지만, 지난해부터는 이 자산에서 발생한 이른바 '예상치 못한 이익(windfall profits)'을 우크라이나에 지급해 왔다. 2024년에 지급된 금액은 37억 유로(약 6조 4060억 원)에 달한다. 러시아가 제재 대상에 올라 있는 만큼 자산에서 발생한 이자를 사용하는 것은 법적으로 안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해당 수익은 러시아의 국가 자산으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5년에 들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국제 군사 지원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이후 미국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사실상 중단하기로 결정하면서 생긴 공백을 유럽이 메우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EU에는 우크라이나의 재정 수요 가운데 3분의 2를 충당하기 위해 900억 유로(약 155조 8500억 원)를 지원하는 두 가지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첫 번째는 EU 예산을 보증으로 삼아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이는 벨기에가 선호하는 안이지만, EU 정상들의 만장일치가 필요해 헝가리와 슬로바키아가 우크라이나의 군사 지원에 반대하는 상황에서는 합의가 쉽지 않다.

남은 방안은 러시아 자산을 활용해 우크라이나에 대출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자산은 원래 유가증권 형태였으나 현재는 대부분 현금화됐으며, 유럽중앙은행(ECB)에 보관된 유로클리어 소유 자금이다.

EU 행정부인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벨기에의 우려가 정당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관련 문제를 충분히 해결했다고 자신하고 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벨기에는 EU 내에 동결된 2100억 유로(약 363조 6600억 원) 규모의 러시아 자산 전체를 포괄하는 보증을 받게 된다.

만약 유로클리어가 러시아 내에 보유한 자체 자산에서 손실을 입을 경우, EU 집행위원회 관계자는 그 손실이 EU 내에 있는 러시아의 청산기관 자산으로 상계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가 벨기에 정부 자체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하더라도, 러시아 법원의 판결은 EU 내에서 인정되지 않는다.

중요한 진전으로 EU 대사들은 유럽에 보관된 러시아 중앙은행 자산을 무기한 동결하기로 합의했다.

그동안 이 자산 동결은 6개월마다 만장일치로 연장해야 했으며, 이는 벨기에에 반복적인 위험 요인이 될 수 있었다.

EU 대사들은 EU 조약 제122조의 긴급 조항을 적용해, EU의 경제적 이익에 대한 '즉각적인 위협'이 지속되는 동안 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전쟁 배상금을 전액 지급할 때까지 자산 동결이 유지되도록 했다.

엘리자베스 스반테손 스웨덴 재무장관은 이번 결정을 "우크라이나에 대한 추가 지원을 가능하게 하고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중요한 단계"라고 평가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왼쪽)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의 환영을 받고 있다.
Thierry Monasse/Getty Images
독일 총리(왼쪽)는 EU의 계획이 우크라이나가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왜 벨기에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나

벨기에는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확고한 동맹국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이번 계획에 법적 위험이 있다고 보고 사태가 잘못될 경우 후폭풍을 홀로 감당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통상 분열돼 있는 벨기에의 정치권도 이번 사안에서는 바르트 더베버 총리 뒤로 결집했다. 더베버 총리는 현재 유럽 각국 동료들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다.

그는 12일(현지시간) 런던에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회담한 자리에서, 다음 주 EU에서 "매우 중요한 결정들"이 내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벨기에와 영국이 "우크라이나가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주권적인 국가로 남을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다는 확실성을 확보하기 위해 함께 협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U는 대출 자체에 대해서는 충분한 보증을 마련할 수 있다고 보고 있지만, 벨기에는 추가적인 손해나 제재에 노출될 위험이 남아 있다고 우려한다.

루뱅 가톨릭대의 비를레 콜라르트 금융법 교수는

"벨기에는 작은 경제다. 벨기에의 국내총생산(GDP)은 약 5650억 유로(약 978조 4200억 원)인데, 만약 1850억 유로(약 320조 3600억 원)의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면 상상해 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유로클리어가 EU에 대출을 제공하도록 요구받는 것은 EU의 은행 규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본다.

"은행은 자본과 유동성 요건을 충족해야 하고, 모든 자원을 한 곳에 몰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 EU는 유로클리어에 바로 그런 일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왜 이런 은행 규칙이 있겠는가. 은행의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만약 문제가 발생하면 유로클리어를 구제하는 책임은 벨기에에 돌아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벨기에가 유로클리어를 위한 빈틈없는 보증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다."

유럽, 사방에서 거세지는 압박

러시아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발트 3국과 핀란드, 폴란드 등을 포함한 EU 회원국 7개국은 "지체할 시간이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들은 러시아 동결 자산 활용 계획이 "재정적으로 가장 실행 가능하고 정치적으로도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보고 있다.

독일의 보수 성향 중진 의원인 노르베르트 뢰트겐은 "우리에게는 운명이 걸린 문제"라며 "만약 실패한다면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주일 안에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자국의 자금이 사용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강하게 고수하고 있지만, 유럽 내에서는 미국이 러시아의 동결 자산을 자국의 평화 구상에 따라 다르게 활용하려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유럽과 미국이 재건 기금을 놓고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동시에 미국이 러시아와 향후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는 점도 인식하고 있다.

미국의 평화 구상 초기 초안에는 러시아의 동결 자산 1천억 달러(약 147조 원)를 미국이 재건에 사용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었으며, 이 경우 미국이 수익의 50%를 가져가고 유럽이 추가로 1천억 달러(약 147조 원)를 부담하는 내용이 담겼던 것으로 전해졌다. 남은 자산은 미국과 러시아의 공동 투자 프로젝트에 활용되는 구상이었다.

EU 소식통은 러시아 자산 무기한 동결 표결이 이 자금을 다른 쪽으로 가져가려는 시도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그러한 계획을 추진하려면 막대한 재정적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EU 회원국 다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EU 내에서 러시아와 가장 가까운 파트너로 여겨지는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유럽 지도자들이 "규칙 위에 군림하고 있다"며, 법치주의를 관료들의 지배로 대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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