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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대 지도와 고대 사원… 태국-캄보디아 분쟁의 역사적 배경

1일 전
파괴된 건물 근처에서 경계를 서는 캄보디아 군인의 모습
Getty Images

태국과 캄보디아 간 끓어오르던 긴장이 국경 지역에서 또 한 번 폭발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재 이후 유지되던 위태로운 휴전이 끝이 났다.

양측 당국에 따르면 지난 8일(현지시간) 이후 이어진 이번 교전으로 태국 군인 최소 5명, 캄보디아 민간인 9명이 숨졌으며, 수십 명이 부상당했다.

이번 사태는 수십 명이 사망한 이후인 지난 7월 양측이 휴전에 합의한 이후 발생한 가장 심각한 사건이다.

양국 간 분쟁의 역사는 프랑스가 캄보디아를 점령한 뒤 국경이 설정되던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몇백 년간 이어진 문화적 경쟁도 자리한다.

이번 국경 분쟁의 중심에는 프레야 비헤아르 사원이 있다. 이 11세기 힌두 사원은 양국의 국경을 이루는 당렉 산맥 절벽 위에 자리하고 있다.

문화적 경쟁

수 세기 동안 동남아시아의 권력 구도는 제국의 흥망성쇠에 따라 달라졌다.

9~15세기, 오늘날 캄보디아에 해당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한 크메르 제국은 현대 태국, 라오스, 베트남의 상당 부분을 포함해 넓은 일대를 지배했다.

그러나 크메르 제국이 쇠퇴하면서 새로운 세력들이 등장했다.

1431년 아유타야 왕국(현대 태국과 시암 왕국의 전신)은 크메르 제국의 수도 앙코르를 침공해 점령했고, 이후 캄보디아 서부 지역을 점령해나갔다.

이후 몇백 년간 캄보디아는 야심 넘치는 아웃 국가들 사이에 끼어 때때로 주권을 위협받았다.

그러던 19세기, 프랑스라는 새로운 외부 세력이 이 지역에 등장했다.

이미 남부 베트남을 장악한 상태였던 프랑스는 1863년 캄보디아에 보호국 지위를 강요했다.

20세기 초, 프랑스는 1904년과 1907년 시암 왕국과 2차례 조약을 체결하며 역내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했다. 광대한 영토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넘긴다는 내용의 조약이었다.

이 조약들을 통해 당렉 산맥 동부 구간에서는 분수령을 따라 국경을 획정한다는 원칙이 확립됐다.

그러나 프랑스 측 측량사들이 지도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모호한 부분이 있었고, 특히 분수령 경계와 매우 인접한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일대가 쟁점으로 남았다.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Getty Images
이번 국경 분쟁의 중심에는 프레야 비헤아르 사원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태국은 1907년 조약으로 잃었던 일부 영토를 되찾았는데, 여기에는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도 포함됐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태국은 이 영토들을 다시 프랑스에 돌려주어야 했으나, 1947년 태국군은 프레아 비헤아르 인근 지역에 재진입했다.

6년 뒤인 1953년, 캄보디아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했고, 1959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에 대한 자국의 영토주권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ICJ 사건의 핵심은 국경에 대한 2가지 엇갈린 해석이다.

캄보디아는 1904년과 1907년 조약을 근거로 한 프랑스 식민지 지도를 제시하며, 이에 따르면 해당 사원이 자국 영토에 속한다는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태국은 자신들은 이 같은 지도를 단 한 번도 받아들인 적 없으며, 설령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표시된 경계가 실제 분수령이라고 잘못 믿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1962년 ICJ는 양국이 수십 년 동안 사실상 기존 경계를 인정하고 사용해 왔다는 점을 근거로 캄보디아의 주장을 인용했다.

태국-캄보디아의 국경 지도
BBC
태국-캄보디아의 국경 지도

캄보디아 내전과 크메르루주 정권 기간 이 사원은 접근이 거의 불가능했으며, 1990년대 들어서야 다시 개방됐다.

그러던 2008년, 캄보디아가 이 사원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성공하면서 긴장이 다시 고조되기 시작한다.

태국은 자국의 주권에 영향을 미친다고 항의했고, 2008~2011년 국경 지역에서 몇 차례 무력 충돌이 발생하며 최소 20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피난길에 올랐다.

캄보디아는 1962년 내린 판결을 다시 한번 명확히 해달라며 ICJ에 또 한 번 제소했다.

이에 ICJ는 2012년 병력 철수를 명령했으며, 2013년에는 사원과 그 인근 지역이 캄보디아 영토임을 재확인했다.

대피에 나선 주민들

태국과 캄보디아가 최근 폭력사태가 발생한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하는 가운데 양측 국경 지역 주민 수십만 명은 대피에 나섰다.

아누틴 찬위라꾼 태국 총리는 자신들은 "절대 폭력을 원치 않았으나" 자국의 "주권을 지키고자 필요한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는 태국 측 "침략자들"이 보복을 유발했다고 비난했다.

지난 9일 트럼프 대통령은 "강한 두 나라 간 전쟁을 막고자" 자신이 "전화하겠다"고 밝혔다.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과거에도 양국은 심한 교전을 벌였으나, 비교적 빠르게 진정됐다.

지난 7월 분쟁 당시만 해도 조나단 헤드 BBC 특파원은 이번 사태도 과거와 비슷한 흐름으로 전개될 것으로 내다봤지만, 현재로선 양국 모두 이 대립에서 물러설 만큼의 힘과 자신감을 지닌 지도력이 부재한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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