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권 쓴 '양곡법 개정안'은 무엇?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야당이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두고 대립하고 있다.
지난 19일 한 권한대행은 국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농어업재해보험법, 농어업재해대책법 개정안 등 농업 관련 법안 4건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러자 다음 날인 2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오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를 "거부권 남발"로 규정하며, "국회 입법권을 무시하고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양곡관리법'이 뭐길래
그렇다면 대체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뭘까.
이는 야당이 발의한 법안으로 쌀 매입과 더불어 주요 곡물의 가격의 정부 개입을 명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남는 쌀을 정부가 매입하고 양곡 가격이 평년 가격 미만으로 하락하면 차액을 정부가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존 양곡관리법은 역사가 오래된 법이다.
국가가 수급 조절을 통해 쌀 가격을 관리한다는 내용으로 1950년 2월 법률로 제정됐다.
당시 쌀은 식량 안보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이 반영됐다.
국가는 농산물의 수급균형과 가격 안정을 도모해 농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헌법 123조의 취지도 있다.
양곡법 개정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첫 번째 논란은 지난 2022년 쌀값 폭락으로 인해 시작됐다.
풍작으로 산지 쌀값은 2021년 10월부터 내림세를 보였고, 수확기를 앞둔 2022년 9월 20% 넘게 급락했다. 관련 통계 작성 45년 만에 최대 하락 폭이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국회에서는 양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쌀 초과 생산량이 3∼5% 이상이거나 가격이 5∼8% 이상 떨어지면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수매해 쌀 가격을 안정화한다'라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3월, 이 양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지만, 그다음 달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폐기됐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 개정안을 '표퓰리즘 법안'이라고 불렀다. 양곡법 개정안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첫 법안이기도 했다.
이후 민주당은 내용을 수정한 양곡법 개정안과 함께 주요 농산물 가격이 적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일부를 보전해 준다는 내용을 담아 농안법 개정안을 함께 발의했다.
예상 생산량을 초과하는 물량을 의무적으로 '매입하게 해야 한다'는 조항 대신 '대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로 바꿔 표현을 좀 더 완화한 것.
그러나 여야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두 법안은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고,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번에 다시 나온 양곡법 개정안은 남는 쌀을 정부가 매입하고 양곡 가격이 평년 가격 미만으로 떨어지면 차액을 정부가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공급과잉 vs. 가격 안정...양당 입장은?
야당은 양곡법 개정안의 주요 목표가 농민의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고 식량 안보를 유지하기 위한 것인만큼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앞서 대책을 마련해 추진해 왔으나, 쌀값 하락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산지 쌀값은 지난 15일 80㎏에 18만5552원으로, 정부 목표치인 20만 원에 못 미친다.
반면 정부와 여당은 재정 부담만 늘릴 뿐 쌀값 지지 효과는 없다고 맞서고 있다.
식생활변화 등으로 쌀 소비량이 지속적으로 감소세를 보이며 별다른 가격 상승 요인이 없다는 분석을 내놓는 중이다.실제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은 56.4㎏로, 30년 전인 1993년(110.2㎏)의 절반 수준이다.
한 권한대행은 특히 양곡법 개정안에 담긴 '양곡가격안정제'에 대해 "고질적인 쌀 공급과잉 구조를 고착화해 쌀값 하락을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쌀 생산 확대로 시장 기능 작동이 곤란해져 정부의 과도한 개입과 막대한 재정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재정 문제도 거론했다.
그는 "정부의 한정된 재정 상황을 고려했을 때 쌀 의무매입 제도와 양곡가격안정제 시행에 막대한 재정이 투입된다면 스마트팜 확대, 청년 농업인 육성 등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농업농촌 투자를 매우 어렵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 100여 명은 19일 오전 트랙터 20여 대와 화물차 60여 대를 몰고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양곡관리법 등 농업 4법 개정안에 대한 한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하원오 전농 의장은 결의대회에서 "윤석열이 물러나고 한덕수 체제가 들어선 뒤 가장 먼저 한 것이 양곡관리법 등 농민 관련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라며 "농민을 죽이는 거부권은 절대 안 된다고 호소했음에도 이 정부가 또다시 농민을 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회를 개혁하고 농민이 제대로 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트랙터의 시동을 절대 끄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으로 어떻게 되나
이제 한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로 해당 개정안은 국회로 되돌아오게 됐다.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이를 다시 표결에 부칠 수 있다. 그러나 이 법안들이 다시 통과하려면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있어야 한다.
이 경우 한 권한대행은 법안을 다시 거부할 수 없고 법률로 공포해야 한다. 부결되거나 국회 회기가 끝날 때까지 법안이 다시 의결되지 않으면 법안은 폐기된다.
민주당은 법안 통과를 강력히 추진하는 동시에 한 권한대행이 앞으로 대통령 거부권을 남발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한 권한대행이 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한 '내란 일반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에도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탄핵소추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