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푸틴의 주장과 득실… 올해 주요 사건 5가지
2024년의 끝이 다가오는 가운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올해도 모스크바에서 연례 마라톤 기자회견을 열고 '블라디미르 푸틴과 함께하는 올해의 결과'를 설명했다.
이번 기자회견 내용을 듣다 보니 푸틴 대통령이 빠뜨린 사항이 몇 가지 있었다. 그의 한 해에 영향을 미쳤던 5가지 주요 사건을 되돌아봤다.
지난 19일(현지시간) 세심하게 연출된 이번 행사에서 푸틴 대통령은 국내 경제, 출산율 감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이스라엘-가자 지구 전쟁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해 연설했다.
그러나 4시간 30분간 이어진 대국민 행사의 대부분은 러시아의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발언으로 채워졌다.
전쟁 발발 3주년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이번 12개월도 전반적으로 성공적이었다는 느낌을 풍기고 싶어 했다.
푸틴 대통령은 자국 군인들이 "영토를 차지 … 하고 탈환"하고 있으며, "매일" 최전선에서 전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군인들은 "영웅"이며 자신은 러시아의 주권을 수호했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모든 휴전 조건을 거부한 상태이지만, 자신은 전쟁을 끝내기 위한" 타협에 열려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어떠한 조건으로 타협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사항은 불분명했다.
또한 우크라이나와의 조건 없는 협상에 응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현 대통령이 합법적인 지도자가 아니라는 자신의 주장을 또 한 번 반복했다.
그렇다면 푸틴이 이번 대국민 연설에서 간과하거나, 전혀 언급하지 않은 5가지 주요 사건은 무엇이며, 그 영향은 무엇일까.
알렉세이 나발니의 죽음
우선 올해 2월 16일, 가장 유명한 야권 지도자인 알렉세이 나발니가 러시아 북부 카르프 소재 제3교도소에서 숨을 거뒀다. 나발니 주변 인물들이 사망 경위에 대해 계속 조사하고 있긴 하나, 러시아 내에서도 이 야권 지도자가 푸틴 대통령의 명에 의해 살해당했음을 의심하는 이는 거의 없다. 이전에도 나발니는 독성 신경작용제인 노비촉을 통한 암살 시도에서 살아남은 바 있다.
그 당시 러시아는 유럽과 대규모 수감자 교환을 논의 중이었다. 실제 교환은 올해 8월 1일 이루어졌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이후부터 어떠한 형태로든 전쟁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한 모든 자국민을 체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발니는 정기적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던 인물로, 그가 투옥된 이후에도 그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달됐다.
그의 죽음은 러시아 전역의 수만 명에게 슬픈 날이었다.
당시에는 전쟁 2주년이 다가오고 있었고, 이미 군인 수만 명의 병사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주요 정적이 여전히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간단히 제거해버린 것으로 보인다.
- 푸틴 정적 나발니, '교도소에서 사망'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모스크바 공연장 총격 사건'을 뒤집어씌우려 하는 이유
- '상황은 통제되고 있다' … 러 언론은 '우크라이나의 자국 본토 침공'을 어떻게 보도하나
모스크바 외곽 크로커스 시청 공연장 공격
한편 군인 모집, 신형 무기 개발 등 모든 관심을 우크라이나에 집중하는 동안 러시아 당국이 놓친 게 있으니 바로 중앙아시아와 북캅카스 연방관구 내 공화국에서 성장하고 있는 이슬람 극단주의 정서이다.
지난해 10월에는 마하치칼라 우이타시 공항에서 갑작스럽게 반유대주의 테러가 발생했으며, 올해 3월 22일에는 수도 모스크바 외곽에서 러시아 역사상 최악의 테러 공격 중 하나가 발생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이 크로커스 시청 공연장을 공격해 145명이 숨지고 551명이 부상당한 것이다. 20년 전 발생한 베슬란 학교 인질극 이후 가장 사상자가 많았던 공격 중 하나다.
아프가니스탄의 '호라산(ISIS-K)' 단체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나섰으나, 러시아 당국과 푸틴 대통령은 비난의 화살을 우크라이나로 돌렸다. 범인들이 이번 범행 후 "월경을 위한 창구"가 마련된 것으로 알려진 우크라이나로 도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말까지 이를 뒷받침할 증거는 단 하나도 제시된 바 없으며, 우크라이나 특수부대 개입설도 입증된 바 없다.
범인들은 벨라루스로 이동한 뒤 도주를 이어가려고 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러시아 당국은 계속해서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우크라이나라고 말한다.
이번 대통령의 연말 연설에서 이번 사건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러시아를 한 방 먹인 시리아의 상황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은 러시아 군의 무력을 바탕으로 9년간 더 이어갈 수 있었다. 2015년 말 러시아가 처음 시리아에 모습을 드러냈고, 알 아사드 정권은 살아남아 정권을 유지했다.
러시아에서는 금지된 조직인 이슬람국가(IS)에 대한 승리는 크렘린궁의 주요 외교 정책적 승리로 선전됐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에 모든 자원을 쏟아부은 지금, 러시아는 시리아 혹은 알 아사드 대통령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그 결과, '하야트타흐리트알샴(HTS)'가 이끄는 반정부 세력은 10일 만에 수도 다마스쿠스를 점령하며 정권을 무너뜨렸고, 알 아사드 대통령은 빅토르 야누코비치와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황급히 러시아로 도망쳤다.
알 아사드 정권의 몰락은 크렘린궁에는 나쁜 소식이었으나, 더 나쁜 소식은 러시아가 시리아 라타키아와 타르투스에 보유한 군사 기지 두 곳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두 기지를 잃게 된다면 러시아가 현재 아프리카에서 벌이고 있는 활동에 제약이 있을 것이며, 중동에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지난 수년간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를 다시 '초강대국'의 지위로 되돌려 놓겠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가 일으킨 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는 기껏해야 지역 강국 정도 위치를 차지했으며, 심지어 그조차도 대다수 주변 국가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피하고 있다.
그럼에도 푸틴 대통령은 이번 대국민 연설에서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패한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러시아는 시리아에서 목표를 달성했고, 이슬람주의 국가의 탄생을 막았다고 주장하면서도 이곳에서의 상황이 "복잡하다"는 점은 인정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달 초 반군이 다마스쿠스 가까이 진전하자 모스크바로 도망친 알 아사드 대통령과는 아직 이야기해보지 않았다면서, 곧 이야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중해 연안의 이 군사 기지 2곳을 유지하고자 시리아의 새 지도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면서, 이 두 기지를 인도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가능성도 고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슈퍼 무기' 오레시니크 미사일 발사… 핵무기에는 못 미쳐
우크라이나와 동맹국들이 거의 매일 러시아 측이 주장하는 '레드라인'을 넘나들고 있던 올해 말, 크렘린궁은 핵폭탄을 굳이 꺼내지 않고도 주변 국가들을 위협할 방법을 생각해 냈다. 러시아의 이 '슈퍼 무기'는 바로 오레시니크 미사일이었다.
지금까지 오레시니크 미사일이 사용된 사례는 단 1번뿐으로, 올해 11월 하반기 우크라이나 드니프로에서였다. 러시아는 자국 영토에서 서방의 장거리 미사일이 사용된 것에 대한 대응이라고 주장했다.
그 이후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선전 매체는 줄곧 오레시니크의 위력을 칭찬하고 있다.
이번 TV 기자회견에서도 푸틴 대통령은 오레시니크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향해 오레시니크를 발사하고, 미국의 지원품을 사용하는 우크라이나 방공 시스템이 이를 격추하며 누가 더 우월한지 "결투"를 벌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오레시니크가 처음 발사된 이후 푸틴 대통령은 모든 연설이나 기자회견에서 어김없이 이 미사일을 언급했다. 심지어 러시아 두마(의회) 의원들은 오레시니크 관련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회의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적어도 크렘린이 핵폭탄이 아닌 다른 무기를 휘두르며 위협한다는 점에서 대립의 정도가 어느 정도 감소했다고도 볼 수 있다.
반면, 결국 모든 이들이 오레시니크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고 비웃게 되면 크렘린궁은 다시 핵 위협 카드를 꺼내 들 수도 있다. 위협은 마치 푸틴 대통령의 습관처럼 보인다.
김정은과의 우정
지난해 말 크렘린궁은 가장 권위주의적인 독재 국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북한과 군사 협력을 맺었다. 과거 러시아는 다른 안전보장이사회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UN 제재를 찬성한 바 있다.
처음에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포탄과 탄도 미사일이 부족했기에 북한으로부터 포탄과 탄도 미사일을 공급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북한은 국제 사회의 제재를 우회해 북한에 석유를 공급했다.
그리고 올해 6월, 푸틴 대통령은 직접 평양으로 건너가 김정은 북한 지도자를 만났다. 푸틴의 마지막 방북 시기는 2000년으로, 당시에는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이 지도자였다. 그 동안 러시아에서는 푸틴 단 한 사람이 권력을 쥐고 있었다.
서방 언론이 '왕따'라고 부르는 두 지도자의 만남 이후 북한과 러시아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에 서명했다. 무엇보다도 "어느 한 나라가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할 경우" 다른 한쪽이 군사 지원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실제로 올 가을, 북한군은 우크라이나 최전선에 모습을 드러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 병력이 약 1만2000명 정도일 것으로 추정하며, 우크라이나의 추정치도 비슷하다.
북한과 러시아 모두 처음에는 북한군 파병설을 부인했다.
그러던 지난 10월 말,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탄약뿐만 아니라 인력 지원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두고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우리의 일"이라고 일축했다.
그리고 이 '일'의 일환으로 북한 군인들은 지난 8월 우크라이나가 점령한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 영토 탈환 작전에 투입됐다. 올해 12월까지 이미 북한군인 수백 명이 전장에서 숨지거나 부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도 이들은 최근 들어서야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소식 자체를 들었을 것이다. 북한 내 현지 언론은 전쟁 발발 첫해에는 전쟁에 대해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한편 NATO는 북한의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을 명백한 확전으로 간주한다. 러시아가 무력 분쟁에 직접 제3자를 개입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NATO의 어느 고위 소식통은 이러한 북-러 관계가 우크라이나 전장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고 지적했다.
미국 국무부는 러시아의 또 다른 중요한 파트너인 중국은 북-러 밀착에 대해 그리 탐탁지 않아 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