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 '내부 싸움' 언급하며 9년 집권 끝 사임 표명
집권 자유당 내 사퇴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6일(현지시간) 9년간 수행해 온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트뤼도 총리는 자유당이 새 대표직을 선출할 때까지 총리직을 유지하겠다고 설명했으며, 캐나다 의회는 오는 3월 24일까지 정회한다고 밝혔다.
이날 오타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뤼도 총리는 "이 나라는 다음 선거에서 진정한 선택을 할 자격이 있다"면서 "만약 내부 싸움을 해야 한다면 내가 선거에서 최선의 선택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느끼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올해 말 연방 선거를 앞두고 트뤼도 총리의 낮은 지지율은 점점 더 자유당의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트뤼도 총리는 "어젯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자녀들에게도 오늘 여러분께 말씀드린 내 결정을 이야기했다"면서 "당이 철저한 전국적인 경쟁을 통해 차기 당대표를 선출하면 당 대표직과 총리직에서 내려오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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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칫 메흐라 자유당 총재는 이번 주 당 지도부 회의를 열고 새 대표 선출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메흐라 총재는 성명을 통해 "캐나다의 자유당원들은 10년 넘게 이 당과 국가를 이끌어온 트뤼도 총리에게 대단히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메흐라 총재는 "총리로서 그의 비전은 캐나다인들에게 혁신적인 발전을 안겨다 주었다"면서 트뤼도 내각이 실시한 자녀 양육 수당 및 치과 비용 지원, 일부 의약품에 대한 약국 보험 적용 등을 언급했다.
한편 보수당의 피에르 포일리에브 당대표는 트뤼도 총리가 사임한 이후에도 "바뀌는 것은 없다"고 지적했다.
포일리에브 대표는 "모든 자유당 의원들과 지도부는 지난 9년간 트뤼도 총리가 한 모든 일들을 지지했고, 트뤼도 총리가 그랬듯 앞으로 4년간 또 캐나다 국민들에게서 계속 뜯어내고자 당의 얼굴만 바꿔 유권자들을 속이려 들고 있다"고 일갈했다.
올해 53세인 트뤼도 총리는 자유당 내에서도 커지는 사퇴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지난해 부총리이자 오랜 동지였던 크리스티아 프릴랜드가 갑자기 사임하면서 사퇴 압박은 더욱 커졌다.
프릴랜드 전 부총리는 공개 사임 서한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캐나다산 제품에 대한 관세 위협을 언급하며 트뤼도 총리가 트럼프의 이 같은 조치가 끼칠 "심각한 위험"에 대해 제대로 조치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6일 기자회견에서 트뤼도 총리는 프릴랜드가 계속 부총리로 남아주길 바랐으나, 프릴랜드가 "다른 선택을 했다"고 언급했다.
앞서 트럼프는 캐나다가 접경 지역 보안 강화에 힘쓰지 않을 경우 캐나다산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조치가 캐나다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러한 트럼프의 발언 이후 캐나다 당국은 미국과의 국경 지역에 전면적인 새로운 보안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한편 트럼프 당선인은 온라인 게시물을 통해 자신의 관세 압박이 트뤼도 총리의 사임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하며,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면 된다"는 발언을 반복했다.
"캐나다가 미국과 합병하면 관세는 없어지고 세금이 훨씬 낮아질 것이며, 주변을 둘러싼 러시아와 중국 선박의 지속되는 위협으로부터 완!전!히! 안전할 것"이라는 것이다.
한편 캐나다의 자유당은 지난 2019년부터 소수 여당이다.
프릴랜드 부총리의 사임 이후 트뤼도 총리는 좌파 성향의 신민주당과 퀘벡 민족주의 정당인 블로크 케베쿠아당 등 여당과 연대하며 과거 자유당의 집권을 도왔던 정당들의 지지 기반을 상실했다.
현재 제1야당인 보수당은 지난 수개월간의 여론 조사에서 계속 자유당을 두 자릿수로 크게 앞서고 있어 지금 당장 총선을 치를 경우 자유당이 대패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제 자유당은 10월 20일 혹은 그 이전에 치러질 선거에서 자신들을 이끌 새 대표를 선출해야 한다.
내각 고위 관계자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공개적인 경선을 통해 당대표를 선출하게 될 것이라면서, 총리실은 이 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오직 자유당 당원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블로크 케베쿠아당의 이브-프랑수아 블랑셰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유당이 새 대표를 선출하는 대로 조기 총선을 원한다는 뜻을 밝혔다.
트뤼도 시대의 끝
트뤼도는 1970년대, 80년대에 캐나다 정치계를 장악했던 피에르 트뤼도 전 캐나다 총리의 아들이다.
아들 트뤼도는 지난 2015년 새롭고 진보적인 '햇볕 정책'을 약속했고, 자유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며 총리로 집권하게 된다.
트뤼도는 내각의 50%를 여성으로 구성하는 등 성평등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캐나다 원주민들과 화해하고자 노력했으며, 국가 차원의 탄소세를 도입했고, 가계를 위한 면세 혜택을 받는 자녀 양육 수당을 도입했으며, 기호용 대마초를 합법화했다.
총리의 사임 발표 이후 '퍼스트 네이션스(캐나다 원주민)' 대표인 신디 우드하우스는 성명을 통해 트뤼도 총리가 "퍼스트 네이션스에게 중요한 이슈 해결을 위해 의미 있는 조치를 했다"면서 총리의 원주민 관련 업적을 기렸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지만, 이러한 조치들은 앞으로 들어설 내각을 위한 기반을 다졌습니다."
한편 최근 몇 년간 트뤼도 내각은 부패 혐의에 직면한 자국 기업과의 거래 논란, 피부색이 어두운 인종처럼 분장한 총리의 과거 사진 공개 등 여러 스캔들을 겪으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백신 의무화 및 기타 제한 조치도 일부 캐나다인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고, 2022년 초 일명 '자유 호송대' 트럭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당시 트뤼도 총리는 전례 없는 조치를 감행하며 공권력을 동원해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후 팬데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캐나다에서는 주택 및 식료품 가격이 치솟았고, 공공 서비스 정책에 부담을 느낀 정부는 야심 차게 발표했던 이민 목표를 철회하게 된다.
한 여론조사 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트뤼도 총리의 지지율은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캐나다인은 22%에 불과했다.
사임 발표 이후 오타와에서는 소수의 시위대가 모여 국회의사당 밖에서 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그러나 캐나다 서부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출신인 한 시민은 트뤼도 총리 시기가 전반적으로 괜찮았다고 했다.
하메스 가마라라는 이름의 이 남성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목수"라면서 "나는 내 일에 신경 쓰고, 임금을 받고, 청구서를 지불한다. 삶은 괜찮았다"고 했다.
또 다른 시민 마리즈 캐시비는 한 시대의 끝처럼 느껴진다면서도 혹시 슬프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답했다.
"이건 옳은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