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의 석유 매장량은 얼마나 되고, 미국에 갚아야 할 빚이 있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국군이 지난 3일(현지시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한 지 몇 시간 뒤, 베네수엘라의 석유 매장량을 활용하겠다고 공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일 기자회견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우리 미국 석유 기업들이 들어가 수십억달러를 투자하고, 심각하게 망가진 석유 인프라를 복구한 뒤 국가를 위한 수익을 창출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글로벌 석유 시장이 공급 과잉에 직면한 시점에 나왔다. 현재 유가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며, 전 세계적인 전기차로의 전환으로 인해 장기적인 석유 수요 전망 역시 갈수록 불안정하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매장량은 얼마나 크나
석유 매장량이 약 3030억 배럴에 달하는 베네수엘라는 전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BBC '머니 앤드 워크'의 기디언 롱 기자에 따르면 "이는 전 세계 총 매장량의 약 17%에" 해당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따르면 2위는 사우디아라비아(2672억 배럴)가 차지하고 있으며, 그 뒤를 이란(2086억 배럴), 이라크(1450억 배럴)로 잇고 있다. 이들 4개국의 매장량만 합쳐도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절반 이상이다.
이렇듯 막대한 석유 매장량에 비해 베네수엘라의 현재 산유량은 미미한 수준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최근 발표한 석유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베네수엘라는 하루 평균 약 86만 배럴을 생산했다. 이는 10년 전 산유량의 3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수준이며, 전 세계 석유 소비량의 1% 미만에 해당한다.
반면 '미국 에너지관리청(EIA)'에 따르면 미국의 하루 평균 산유량은 약 1300만 배럴에 달한다.
베네수엘라의 매장량은 대부분 이른바 '중질의 고유황 원유'이다. 점도가 낮고 불순물이 적은 경질유에 비해 정제가 까다롭지만, 디젤과 아스팔트 생산에 흔히 사용된다.
롱 기자는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의 결정적인 문제는 유전의 주로 국토 동부에 자리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라며 "이 지역은 대부분 정글이라 시추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중질유는 매우 무거운 원유다. 베네수엘라는 막대한 매장량을 자랑하나, 최상급 품질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 전 세계에서 이를 정제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곳은 몇 군데 없다"고 설명하며 그중 일부 시설이 미 텍사스에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전문가들에 따르면 종류를 막론하고 석유를 연소하는 행위 자체가 기후 변화에 영향을 미치지만, 베네수엘라산 원유는 특히 시추 및 정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출량이 많아 지구 온난화 측면에서 보면 "가장 더러운 원유 중 하나"로 평가된다.
매장량에 비해 산유량이 적은 이유는?
베네수엘라의 석유 생산량은 2000년대 초반 이후 급격히 감소했다. 마두로의 전임자이자 멘토인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정권 및 이후 들어선 마두로 정권이 국영 석유회사 PDVSA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면서 노련한 직원들이 대거 이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2015년, 인권 침해 의혹을 이유로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미 정부가 처음 도입한 제재 역시 베네수엘라의 투자 및 필요한 부품 확보를 가로막았다.
영국-남아프리카의 국제 금융 및 자산 관리 그룹인 '인베스텍'의 원자재 부문 책임자인 캘럼 맥퍼슨은 "베네수엘라의 진짜 문제는 바로 인프라"라고 지적했다.
'옥스퍼드 에너지 연구소'의 빌 패런 프라이스 선임연구원 또한 BBC와의 인터뷰에서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은 "수십 년 전 전성기를 누리다가 지난 20년간 급격히 쇠퇴해왔다"고 설명하며 "(석유 관련) 복잡한 공급망과 인프라의 상당 부분이 약탈당한 뒤 분해돼 팔려나갔다"고 덧붙였다.
한편 한때 미국은 베네수엘라 석유의 주요 시장이었으나, 마두로 정권이 들어선 이후 지난 10년간 중국이 1위로 올라섰다.
롱 기자는 "과거 미국은 매년 베네수엘라가 생산하는 석유의 약 40%를 구매했다. 멕시코만에 정제 시설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사실 환상의 궁합이었다. 미국으로서는 저 멀리 중동이나 러시아까지 갈 필요 없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베네수엘라에서 중질유를 확보할 수 있었다. 양국 모두가 만족했던 상황"이라고 묘사했다.
베네수엘라에서 활동 중인 석유 회사는?
여전히 베네수엘라에서 운영 중인 서방 기업들도 일부 있다. 그 중 유일한 미국 업체는 '셰브론'이다.
그러나 미국이 마두로 정권의 핵심 돈줄을 억제하고자 제재 수위를 높이고, 석유수출을 정조준하면서 셰브론의 운영 규모는 크게 줄어들었다.
자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셰브론사는 지난 2022년 조 바이든 대통령 재임 당시 베네수엘라 내 운영 허가를 받았다.
현재 베네수엘라 산유량의 약 5분의 1을 생산하는 셰브론은 자사 직원들의 안전에 집중하며 "모든 관련 법규를 준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베네수엘라는 미국에 갚아야 할 빚이 있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을 건설했으나 사회주의 정권이 "훔쳐갔다"고 비난했다.
"우리 미국의 재능, 추진력, 기술을 동원해 베네수엘라의 석유 산업을 건설했으나, 사회주의 정권이 그것을 훔쳐갔다"는 설명이다.
이어 "그들은 무력을 동원해 빼앗아갔다. 이는 우리 국가 역사상 최대 규모의 미국 자산 절도 사건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과거 베네수엘라 정권들이 석유 생산을 국유화한 일을 가리킨다.
국제법에 따르면 베네수엘라가 자국 석유 매장지에 대한 주권을 보유하기에, 미국은 이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할 법적 근거가 없다.
UN 승인한 '천연자원에 대한 영구적 주권의 원칙'에 따르면, 주권 국가들은 자국 영토 내 자원을 통제 및 개발할 권리를 지닌다.
그러나 외국 기업들은 자산을 도용당할 경우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2007년 차베스 정부가 일부 석유 산업을 국유화한 이유 미국의 석유 대기업 '엑슨모빌'과 '코노코필립스'는 국제 중재를 신청해 수십억달러의 배상금을 인정받았다. 다만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에 이의를 제기하며 판결을 무시했다.
미국 싱크탱크 '베이커 연구소'의 중남미 에너지 프로그램 책임자인 프란시스코 모날디는 "차베스의 국유화 조치는 졸속으로 진행됐고, 현재 베네수엘라가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베네수엘라산 석유가 미국 기업의 소유라는 뜻은 아니다. 그런 적은 한번도 없었으며, 그들에게 주어졌던 건 석유 개발 허가권이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유가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데이터 제공 기업 '케플러'의 원자재 부문 호마윤 팔락샤히 선임연구원은 베네수엘라의 매장량을 개발하려는 석유 기업들이 직면한 주요 장애물은 법적, 정치적 요소라고 설명했다.
팔락샤히 연구원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기업들은 개발 전 정부와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마두로의 후임자가 정해지기 전까지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향후 베네수엘라 정부의 안정성에도 기업들은 수십억 달러를 걸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결국 정치적 상황이 안정되더라도, 그 과정에 수개월이 걸린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계획을 활용하려는 기업들은 베네수엘라 인프라에 투자하고 확장하기 전 새 정부와 계약을 맺어야 한다.
분석가들은 베네수엘라가 과거 산유량을 회복하는 데 최대 수백억 달러의 자금과10년의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시장 조사 업체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닐 시어링 선임경제학자는 트럼프의 이번 계획이 현재 전 세계 원유 공급과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극복해야할 장애물도 무수히 많고, 상황이 진전되기까지는 앞으로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그는 2026년 원유 가격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봤다.
그러면서 베네수엘라에 안정적인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기업들이 선뜻 뛰어들지 않을 것이며, 이 석유 개발 프로젝트가 성과를 내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의 "문제는 바로 지난 수년간 이어진 투자 부족, 관리 부족 및 높은 원유 시추 비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베네수엘라가 하루 약 300만 배럴에 달하던 과거 산유량 수준을 회복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세계 10위권 밖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OPEC+ 국가들의 산유량이 높고, 현재 전 세계적으로 "석유가 부족해 고통받는 상황이 아닌" 점도 지적했다.
영국 석유 회사 BP의 존 브라운 전 CEO 또한 BBC와의 인터뷰에서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 부흥은 "매우 장기적인 프로젝트"라고 평가했다.
"사람들은 일이 완성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과소 평가하곤 합니다. 특히 모든 자원, 물자, 인력을 동원하는 데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죠."
이어 그는 산유량 일부가 "빠르게 회복" 될 수는 있으나, 산업 전반을 개혁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감소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브라운 전 CEO는 "세계 여러 곳에서 사업을 할 수 있는 선택지 확보는 좋은 일"이라며 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길 원하는 기업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업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 가능한 한 빨리 참여하고 싶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