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구축함 진수 사고, '기술력 결핍이 부른 예고된 참사?'

북한 함경북도 청진조선소에서 5000톤(t)급 신형 구축함 진수식 중 발생한 사고는 기술력 부족과 무리한 개발 지시가 불러온 예고된 인재로 분석된다.
배를 건조하는 조선 능력이 매우 부족한 상황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무리한 군사력 증강을 지시하면서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1일 청진조선소에서는 새로 건조된 5000톤급 구축함이 진수 과정에서 크게 파손되는 중대 사고가 발생했다.
구축함이 진수대에서 균형을 잃고 바다에 일부 침수되는 이번 사고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현장에서 직접 참관한 가운데 발생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해당 사고를 "도저히 있을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는 범죄적 행위"라고 주장하며, 전원회의 전까지 완전 복원을 지시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미숙한 지휘와 조작상 부주의로 인하여 대차이동의 평행성을 보장하지 못한 결과 함미부분의 진수썰매가 먼저 이탈되어 좌주되고 일부 구간의 선저 파공으로 함의 균형이 파괴되었으며 함수부분이 선대에서 이탈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번 사고는 단순한 부주의나 기술적 실수 이상의 문제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대형 군함 건조 경험이 매우 부족한 상황에서 김 위원장 독촉에 무리하게 건조에 속도를 내면서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3000톤급 함정도 건조해본 경험이 없었던 북한이, 지난해부터 갑자기 5000톤급 대형 구축함을 단기간에 완성하려다 사고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의욕만 앞서는 무기개발
북한은 최근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 강화를 통해 군사력 현대화를 추진 중이다.
파병과 군수 지원을 제공한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군사기술을 일부 이전받고 있고, 북한은 이를 통해 ICBM, 인공위성 개발, 최신식 장갑차 및 탱크 개발을 병행하고 있다.
인공위성 발사나 자폭형 무인기 역시 김정은이 대량 생산을 지시한 대표적인 최신 무기 중 하나다. 하지만 이는 자원과 기술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북한 실정과는 거리가 멀다.
아산정책연구원의 양욱 국방전문 연구위원은 BBC와 통화에서 이번 진수 사고에 대해 "북한은 이번에 이른바 사이드 런칭, 즉 측면 진수 방식을 택했는데, 5000톤급이 넘는 배는 사이드 런칭 잘 안 한다"며 "기술력 부족으로 옛날 방식으로 진수를 시도했다"고 분석했다.
일반적으로 5000톤급 이상의 군함은, 선박을 건조하고 띄울 수 있는 플로팅 독(Floating Dock)에서 만들고 진수하는데, 이러한 현대적인 플로팅 독 설비를 갖추지 못한 북한이 옛날 방식으로 함정을 진수하려다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실패 사실 신속 공개 이유
북한이 신형 5000톤급 구축함 진수 실패 사실을 사고 발생 하루 만에 신속히 공개한 배경에는 대외적 현실과 내부적 계산이 동시에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선진국이 고성능 정찰위성으로 청진조선소 일대를 정밀 감시 중인 상황에서, 수천 톤급 구축함이 전복된 장면은 은폐 자체가 불가능했을 가능성이 높은 상태였다.
더구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참관한 행사였고, 현장에는 수많은 군과 조선소 인력이 동원돼 있었던 상황이라 관련 사실이 언제든지 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선제적 공개를 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실패 보도와 동시에 사고를 '용납할 수 없는 범죄적 행위'로 규정하고, 관계자 처벌을 예고했다.
무리한 진수 일정을 지시한 건 김정은 위원장이지만, 실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내부 기강을 다잡으려는 시도에 나선 셈이다.
무리한 개발 계속될 듯
기술력 부족에도 불구, 북한의 군사 개발 드라이브는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최근 수년간 전투기, 군함, 잠수함, 무인기 등 재래식 무기뿐 아니라 전략무기 개발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내부 결속을 위한 수단이자, 대외적으로는 군사적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개발이 기술 수준을 뛰어넘는 무리한 속도전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부작용이 동반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한다.
사고 함정은 북한이 지난달 25일 서해안 남포조선소에서 진수한 5000t급 '최현'호와 동급으로 추정된다.
최근 북한은 최현호 사진을 공개하며 동해에 각각 배치해 해군력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했었다.
최현호는 외형적으로는 한국의 최신 구축함과 매우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으나, 함정을 운항할 수 있는 엔진을 제대로 달았는지, 장착된 무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에 상당한 의문이 제기된 상태였다.
북한은 이런 지적을 의식한 듯 지난달 30일 최현호에서 무기를 발사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당시 최현호는 바다 한가운데 떠 있기는 했지만 정지된 상태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군함 시험사격은 보통 함정 이동 중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전문가들 사이에선 최현호를 움직일 수 있는 엔진이 제대로 장착된 게 맞는지 의문스럽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양욱 연구위원은 "함정의 무기 시험발사는 저속이라도 항진하면서 발사하는데 당시 북한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배가 정지한 상태에서 발사한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추진체가 제대로 완성 안 된 채로 바다에 내보낸 건 아닌지 알 수 없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조선 능력이 없는 북한은 이런 5000톤급 함정을 1년도 안되는 시기에 건조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사실 이런 대형 선박은 조선 능력이 세계 최대, 최고 수준인 한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가 건조를 해도 빨라야 1년 이상 걸린다"고 지적했다.